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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화 낯선 것이 두려워

<달콤한 간택일지 2>

by 노란까치


꿀밤이가 중성화 수술을 한 뒤로 우리 집에는 손님이 방문하지 않았다.


수술 뒤 고양이들 성격이나 행동 변화가 바뀔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것 같다. 혹시라도 스트레스를 받게 될까 봐 방문을 최소화했고, 일정이 있다면 내가 밖에 나가 밥을 먹었던 것 같다.


여전히 꿀복이랑 꿀밤이는 잘 지내고 있었고, 투닥투닥 몸의 대화도 많이 하면서 둘이 우다닥 놀이를 가장 즐겨하는 것 같다.

꿀복이가 힘으로 제압하면, 꿀밤이는 그대로 제압을 당했는데 요즘 덩치가 점점 커지면서 꿀복이를 이겨 먹으려 했다.

서로 냥냥펀치를 날리며 쨉을 날리는데 승자 없는 게임이 시작된다. 꿀복이가 꿀밤이를 참교육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스피드가 빠른 꿀밤이가 날렵하게 꿀복이를 때리고 도망가서 잡히지 않아서 약이 바짝 오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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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꿀 형제들이 몸의 대화를 하며 잘 지내고 있는 한가로운 일요일 어느 날이었다.

친한 지인 부부가 화성에 볼일이 있어 왔다가 잠깐 우리 집에 놀러 오게 되었다. 돌이 지난 생후 24개월 된 아기 손님도 함께 말이다.

새로운 뉴비를 가장 좋아하는 꿀복이는 가장 먼저 마중 나와 손님들에게 인사를 했다.

꿀밤이는 사람에 대한 경계심이나 이런 게 별로 없던 고양이였는데, 이날 따라 꿀밤이가 안방에 나오려고 하지 않자 남편은 꿀밤이를 안고 나왔다. 그러고 아기 손님에게 인사를 시켜주었는데 극도로 긴장하며 싫은 티를 팍팍 내고 저항했다.


순간적으로 나도 남편을 제지하고

"꿀밤이가 싫은가 봐. 만지지 말고 혼자 있게 두어."


하고 꿀밤이를 놓아주라고 했다.

꿀밤이는 안방 침대 구석으로 들어가 나오지 않았다.

그 사이 꿀복이는 낯선 사람들과 교감하며 애교를 부리며 간식을 받아먹고 있었다.

나는 꿀 형제가 둘이 성격이 조금은 비슷하다고 생각했는데, 이 시점을 계기로 꿀밤이는 아예 다른 성격으로 변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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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심성이 많아지고, 소심해지고 낯선 것에 대한 거부감이 커졌다. 보통의 고양이들과 같은 모습이었다.

확실히 중성화 수술을 하고 난 다음 성격이 변한 느낌이 들었다. 호기심 많고 장난꾸러기 같던 녀석이 하루아침에 달라진 느낌이 들어 조금은 서운한 마음도 있었다.

마치 사춘기를 겪는 사람처럼 외형적인 고양이에서 내형적인 고양이로 변해버렸다.


꿀밤이나 꿀복이는 구석에 숨거나 우리들 시야에 가려지는 경우가 거의 없었고, 항상 높은 곳이나 우리가 잘 보이는 위치를 선점해서 서로를 감시 감독했는데, 꿀밤이는 이제 창문 쪽에 앉아서 사색을 하거나 구석에서 있는 걸 좋아했다.

옷방 구석에 작은 공간이 있는데, 자신의 영역으로 생각하고 그 공간에서 낮잠을 자거나 자신만의 시간을 갖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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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밤이는 그렇게 냥춘기의 시절을 맞이한 것 같다.

'이 냥춘기는 언제 끝나려나?'

그 과정에서 또 달라진 변화가 있다면 꿀밤이는 슬슬 남편을 피하기 시작했다.

어느 날 남편이 나한테 이야길 했다.


"있지, 꿀밤이가 계속 나를 피해!"

"엥? 그게 무슨 소리야?"


"꿀밤이가 내가 퇴근해서 오면 나인 거 확인하고 확 돌아서 간다거나, 내가 거실에 있으면 나를 피해서 다른 방향으로 돌아가더라고."


나는 전혀 그런 상황을 몰랐고, 남편은 서운함이 가득한 표정이었다.


"아니야, 꿀밤이가 왜 그러겠어. 여보가 너무 예민하게 생각하는 거 아냐?"

"아냐, 달라졌어. 나를 싫어하는 느낌이 강해."


그 말을 한 뒤로 나는 꿀밤이 행동을 관찰해 보기 시작했다.

정말로 남편의 목소리가 들리거나 남편이 있으면 굳이 돌아서 가기 시작했고, 꿀밤이가 가장 좋아하는 최애 장소가 있는데 남편이 있으면 오지 않았다.

남편이 쓰담을 하려고 하면 도망가기 바빴고 둘은 내가 모르는 사이 서로 외로운 싸움을 하고 있었던 것 같다. 남편의 말처럼 꿀밤이가 예전과는 달리 남편에게 거리감을 두는 모습이 확실히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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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미묘하게도 나한테도 그런 모습이 약간 있긴 했다.

가족끼리 해외여행을 5일간 다녀온 적이 있었다. 그 시기에 다행히 앞동 언니가 매일 우리 집으로 와서 케어를 해주시긴 했지만, 늘 있던 가족이 없으니 외로울 만했을 것이다.


5일 만에 집으로 돌아왔을 때

꿀복이 먼저 안아주고 꿀밤이를 안아주려고 하자 꿀밤이가 내 손길을 피했다.

그리고 코 인사도 안 해주고 불러도 대답도 안 해주고 눈도 마주치지 않았다. 어딘가 모르게 나를 낯설게 대하는 느낌이 있었고, 약간 삐진 것 같기도 하고 그랬다.


그래서 나는 그럴 수 있지 하는 생각에 내 할 일 하며 빨래도 돌리고 씻고 하면서 꿀밤이가 나한테 기분이 풀릴 수 있도록 거리를 두며 굳이 먼저 가까이 가지 않았다.

그랬더니 샤워할 때 화장실로 따라 들어와 유리문 밖에서 나를 쳐다보며 기다리고 있었다.

그 이후 1시간 뒤에는 완전히 무릎으로 올라오기도 하고 아는 척해서 쓰담도 해주고 밀린 털도 밀어주며 예뻐해 주었다.


이런 고양이의 미묘한 행동에 남편은 나처럼 디테일하게 알아차릴 수 없는 모양이다. 고양이와 밀땅을 하는 법도 알아야 할 텐데, 여전히 서운해만 하고 있다.

꿀밤이의 달라진 성격을 그냥 이해하고 받아들이려는 모습으로 대했다.

낯선 것이 두렵고 무서운 고양이는 이제는 집 초인종 소리만 들려도 낯선 이가 방문한다는 것이 인식되어 극도로 긴장하는 모습을 보였다.


집에 실링팬 설치를 위해 기사님이 방문하셨던 일이다.

꿀복이는 아저씨를 졸졸 따라다니며 관심을 보였고, 꿀밤이는 어디론가 자취를 숨긴 상태였다.

실링팬 설치가 바로 끝나는 것은 아니었어서 30분 넘게 집에 머물며 봐주셨는데, 기사님이 가신 뒤에 꿀밤이를 도통 찾을 수가 없었다.


간식통 소리만 들려도 달려오던 꿀밤이가 어떠한 반응도 없었고, 늘 숨던 곳에도 꿀밤이가 없었다. 그런데 꿀복이도 꿀밤이를 찾고 있는 것 같았다. 계속 하울링 하며 꿀밤이를 찾았다. 혹시나 아저씨가 나갔을 때 문이 열렸나 하고 밖에도 나가봤지만 없었다. 분명 집 어딘가에 숨어 있을 텐데 두려움에 나올 생각이 없어 보였다.

꿀복이와 나는 거실에서 계속 꿀밤이를 불렀고, 갑자기 꿀복이가 소리를 지르며 옷방으로 뛰어갔다. 꿀밤이가 있는 곳을 알아낸 것 같았다.

옷방 실외기를 두는 베란다가 있는데, 꿀복이가 그곳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그곳에도 꿀밤이는 보이지 않았는데, 자세히 보니 실외기 밑에 작은 공간이 보였다. 거기 틈에 쪼그려 앉아 있었는 걸 발견했다. 아주 작은 소리로 울고 있던 것 같은데 그걸 꿀복이가 들은 것 같았다.


너무 애잔한 마음이 들었고, 꿀밤이를 안심시켜 주며

"아저씨 갔어~"

하고 끌어안아주고 토닥여 줬다. 꿀밤이는 서러운지 울기 시작하더니 내 품에 안겨 골골거렸다.

실외기 구석 먼지를 뒤집어써서 털을 대충 닦아주고, 소파 가장 좋아하는 자리에 앉혀주었다. 좋아하는 간식도 먹여주면서 안심하게 했더니 안정을 찾아가는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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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도 공포스러웠을까?'


낯선 모든 것에 두려움을 느껴하는 모습이 너무 안타까웠다.

이 사건 이후 집에 손님 방문을 많이 제한 두었고, 초인종도 누르지 않도록 방문객에 주의를 기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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