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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화 스테이크 절도냥 by.꾀도꿀밤

<달콤한 간택일지 2>

by 노란까치



꿀밤이가 우리 집에 온 뒤로 지인들이 종종 놀러 왔다.


두 마리의 치즈테비 고양이를 보고 싶은 마음에 츄르나 간식 등을 사 들고 방문했지만,

사실 고양이들은 낯선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데 우리 집 첫째 꿀복이는 인싸 고양이였던 덕분인지, 처음 본 사람을 가장 좋아한다.

심지어 인터넷 기사님, 정수기 설치 기사님 등 집에 오는 낯선 방문객에게도 호기심이 많고 애교와 잔망을 부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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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밤이도 낯선 사람에 대한 경계심이 크지 않은 듯했다. 조금만 사냥놀이를 해주면 금세 마음을 열고, 신나게 놀며 가까이 와서 냄새도 맡고 간식도 잘 받아먹는다.

이 정도면 두 마리 모두 개냥이 재질이라 손님들 앞에서 재롱도 부리고, 엄마가 잘 안 주는 츄르도 받아먹으니 오히려 반가울 수도 있겠다 싶었다.


꿀밤이는 아직 새끼 고양이라 그런지 에너지가 넘친다.


진짜 "도도도도!" 소리를 내며 빠른 속도로 여기저기 뛰어다니고, 작아서인지 소파 밑, 책상 밑, 침대 밑도 슉슉 돌파하며 신나게 논다. 그 텐션을 어찌할 수가 없다.

생후 4개월이 지난 터라 성묘용 사료를 먹일 수 없어 따로 키튼 사료를 줬는데, 어느 날 보니 두 녀석이 서로의 사료를 바꿔 먹고 있었다. 꿀복이는 꿀밤이 사료를 미친 듯이 먹어치우고, 꿀밤이는 꿀복이 사료를 자동 급식기 앞에서 받아먹고 있었다.


‘하…’


정말 내 마음대로 고양이들은 통제가 되지 않으니, 일정한 루틴을 반복시켜 주는 수밖에 없었다.

자동 급식기를 하나 더 구매해 같은 시각에 사료가 나오도록 설정했고,

서로 다른 위치에 급식기를 설치했다. 첫날은 꿀복이와 꿀밤이를 각자 급식기 위치에 직접 데려다 놓고 하루 정도 반복 훈련을 했다.


다행히 자리가 잡히기 시작했고, 시간이 되면 각자 알아서 달려가는 모습이 익숙해졌다.

그렇게 3일쯤 지났을까. 사료 나오는 시간이 되어 거실에 나갔는데, 순간 내 눈을 의심했다.


꿀복이 급식기 옆에 꿀밤이가 껴 있었고, 꿀복이가 먹는 사료를 방해하면서 앞발로 한 톨씩 쳐내 야금야금 먹고 있었다. 꿀복이가 거슬렸는지 꿀밤이 자리로 가서 꿀밤이 밥을 먹었다.

꿀밤이는 형아 밥도 빼앗아 먹고 자기 밥도 먹고 싶었던 듯하다. 그런데 꿀복이도 먹는 데 진심이었는지, 결국 꿀밤이 사료를 다 먹어치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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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정도 지켜보니 꿀밤이는 왔다 갔다 하며 두 급식기 밥을 탐내고 있었고, 오히려 너무 왔다 갔다 하느라 정작 자기 몫을 잘 못 먹는 듯했다. 수혜자는 꿀복이였다.


이 모습을 본 남편은

“꾀부리다가 하나도 못 먹네! 꾀밤이야, 꾀밤이!” 하며 꿀밤이에게 ‘꾀밤’이라는 별명을 붙여줬다.

그 별명, 묘하게 찰떡이었다. 꿀밤이는 꾀밤이라는 이름처럼 ‘냥아치’ 같은 행동을 계속했다.

꿀복이는 먹는 것에 진심이긴 해도 육류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다. 생선류가 아니면 고기를 구워도 별로 기웃거리지 않았다.


그런데 꿀밤이는 달랐다. 모든 것에 호기심이 많았다.

어느 날 삼겹살을 구워 식탁 위에 올려둔 적이 있다. 그 순간 꿀밤이 가 어디선가 달려와 고기 한 점을 입에 물고 쏜살같이 도망갔다.


“안 돼, 꿀밤아!”

나는 놀라서 외쳤고, 고기를 빼앗기 위해 달려갔지만 꿀밤이는 이미 소파 구석으로 도망친 상태였다. 내가 손을 뻗자, 고기를 문 채로 “으르르릉” 소리를 냈다.


‘아니 고양이가 왜 으르렁거려…’

자기가 사냥한 사냥감이라고 생각한 걸까. 내가 빼앗으려 하자 위협하는 척하며 고기 한 점을 혼자 다 먹어치웠다.

그리고는 소파 위로 올라와 느긋하게 그루밍을 하며 단잠에 빠졌다. 꾀밤의 만행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그날 이후, 그는 ‘절도냥’으로 본색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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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은 친구 두 명이 우리 집에 와 크리스마스 파티를 하던 날이었다. 토마호크, 샐러드, 파스타까지 정성껏 준비했고, 하루 전날 시즈닝한 토마호크 스테이크를 40분 넘게 오븐에 구웠다.


음식 세팅을 하고 와인 잔을 준비하려던 찰나, 앉아 있던 친구가 “안 돼!” 하고 소리쳤다.

꿀밤이가 친구 접시 위의 스테이크 한 점을 입에 물고 도망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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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초 만의 사건이었다. 나는 시즈닝 된 염분이 있는 고기를 먹이면 안 되기에 필사적으로 꿀밤이를 쫓아갔다. 하지만 그는 손이 닿지 않는 깊은 곳으로 숨어버렸고, 내가 가까이 가면 더 깊이 숨었다.


“꿀밤아, 그거 내놔. 다른 거 줄게. 그건 먹지 마.”

말을 해도 들을 고양이가 아니었다.

그 녀석은 다시 “으르렁” 소리를 내며, 고기를 단단히 문 채 절대 놓지 않았다.
결국 파리채까지 들고 찾았지만, 그는 완벽히 약탈에 성공했다.

100g 정도 되는 고기를 들고 어디선가 혼자 승리를 즐기고 있을 꾀밤이... 얄밉고, 한 대 때려주고 싶었다.

친구는 남은 스테이크를 조금 먹고, 토마호크 뼈에 붙은 살을 뜯었으며 각자 조금씩 나눠 먹었다.
그런데 셋 다 너무 어이가 없어서, 밥을 먹는 내내 꿀밤이 얘기만 했다.


나는 사람이 먹는 짠 고기를 먹어 혹시 잘못될까 봐 걱정이 컸다.
하지만 이미 벌어진 일이었고, 꿀밤이 가 활개 치지 못하도록 더 철저한 감시가 필요하다는 교훈만 남았다.

다 먹고 나온 꿀밤이는 거실 한가운데서 배를 빵빵하게 부풀린 채, 보란 듯이 그루밍을 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그날은 꿀밤이의 ‘치팅데이’였던 것 같다.

그날의 사건을 남편에게 이야기하니,


“뭐? 꿀밤이 가 스테이크를 입에 물고 도망갔다고? 허허, 이제 꾀밤이 아니라 대도네. ‘꾀도 꿀밤’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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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이후 꾀밤의 호는 ‘꾀도 꿀밤’으로 승격(?)되었다.

다음 날 꿀밤이 상태를 살펴봤는데, 똥도 잘 싸고 잘 놀고 아무 탈도 없었다.
잘 먹고 잘 소화한 듯했다.


스테이크 절도 사건 이후에도 꾀도꿀밤이는 꿀복이 밥도, 간식도 약탈했고,
사냥놀이를 할 때는 빠른 동체 시력을 이용해 재빠르게 낚아채며 일상의 한복판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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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은 남편과 동대문역사문화공원 쪽 전시회를 보러 간 적이 있다.


워너브라더스 100주년 기념 전시였는데, 남편은 배트맨 덕후였고 나는 트위티와 해리포터, 반지의 제왕의 팬이었다. 마지막 굿즈 코너에서 카카오프렌즈와 콜라보한 인형이 있었는데, 춘식이가 배트맨 가면을 쓰고 있는 인형이었다.


평소 이런 거 절대 사지 않던 내가 그걸 보자마자 말했다.

“이거… 우리 꾀도 꿀밤이다!”


그리고 망설임 없이 인형을 사서 집에 돌아와 꿀밤이 옆에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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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 때마다 웃음이 난다. 꾀도 꿀밤.
이 녀석의 약탈 업적을 생각하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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