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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 골골송 ASMR

<달콤한 간택일지 2>

by 노란까치



"골골고루 로로롱로로롱 오옹 드르르러러러렁 드르러러렁"



골골송


꿀밤이의 골골송과 함께 아침을 맞았다. 꿀밤이는 우리 집에 온 지 3일째 되는 날이었다. 1~2일째에는 침대에 올라오지 않더니, 3일째부터는 슬며시 올라오기 시작했다.

골골거리는 소리에 놀라 잠이 깨긴 했지만, 내 가슴 위로 올라와 얼굴과 코에 비비며 애교를 부릴 때는 괜히 기분이 좋아졌다. 마치 아기가 엄마에게 잠투정을 부리는 듯한 느낌이었고, 그 칭얼거림이 이상하리만치 귀여웠다.


꿀복이는 내가 안 일어나면 얼굴을 톡톡 건드리거나 발을 깨무는 다소 격한 스킨십을 보였는데, 꿀밤이는 아기처럼 칭얼대며 모성애를 자극했다.


1700305978154.jpg 엄마 껌딱지 꿀밤이


3일째 되는 날, 이미 마음은 기울어져 있었다. 아니, 어쩌면 첫 만남부터 그랬는지도 모른다.

샤워를 마친 후 꿀밤이를 꼭 끌어안았을 때, 품속에서 울려 퍼졌던 첫 골골송. 그 우렁찬 소리가 너무 강렬해서 잊을 수가 없다. 부비부비하며 품에 안기려는 꿀밤이와, 그런 꿀밤이를 꼭 끌어안아주던 내 모습. 말은 없었지만, 우리는 많은 교감을 나눴던 것 같다.

그냥 내 가슴에 파고들기 시작했는데, 속수무책이었다.
드라마 <도깨비>의 대사가 떠올랐다.


지구보다 더 큰 질량으로 나를 끌어당긴다.
순간, 나는
뉴턴의 사과처럼
사정없이 그녀에게로 굴러 떨어졌다
쿵 소리를 내며, 쿵쿵 소리를 내며
심장이 하늘에서 땅까지
아찔한 진자 운동을 계속하였다
첫사랑이었다.
— 『사랑의 물리학』 / 김인육


그렇게 꿀복이와는 또 다른 생명체, 꿀밤이를 이해하기 위한 또 다른 관찰이 시작되었다.

꿀밤이는 4개월 된 아기 고양이라 그런지 얼굴만 보면 성별 구분이 어려웠다. 여자아이처럼 동그란 두상을 가지고 있어 처음엔 암컷이라 생각했지만, 땅콩을 달고 있는 걸 보니 수컷이었다. 게다가 턱드름이 있어 마치 턱수염이 난 것 같은 느낌까지 있었다.

4개월 동안 어떤 삶을 살았을까? 고양이가 단체 생활을 하면 여러 질병에 노출되기 쉽다고 하는데, 다행히 꿀밤이는 귀에도 이물질이 적고 큰 병 없이 깨끗했다. 아마도 무리보다는 개인 생활을 해왔던 게 아닐까, 그렇게 추측해 보았다.

눈에 눈곱이 끼기 시작해 안약도 넣어주기 시작했는데, 난이도가 낮아 크게 부담스럽지 않았다.


꿀밤이는 골골송을 정말 많이 한다. 처음에는 나를 좋아해서 내는 소리인 줄 알았지만, 점차 불안감이 올라올 때 스스로 해소하려는 방식이라는 생각이 들어 조금 애잔한 마음이 들었다.

소파나 침대에 누워 있으면 내 목 아래 명치 쪽에 자리를 잡고 앉아 그루밍을 하곤 한다. 그때 온몸에 전율이 느껴질 정도로 골골송이 울려 퍼지는데,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다.


나도 모르게 잠이 오고, 마치 ASMR처럼 마음이 차분해진다. 꿀밤이가 내는 이 소리가 너무 듣기 좋아 함께 잠이 드는 경우도 많다. 정말 마법 같은 소리다. 골골송을 들으면 나도 안정감을 느끼게 되는데, 이게 단순한 기분 탓인지 궁금해져 전문가의 의견도 찾아보았다.

실제로 골골송은 ‘치유 능력’을 가졌다고 한다. 통증을 완화할 뿐 아니라, 특정 진동수에 의해 뼈 회복과 강화, 염증 완화에도 도움이 된다고 하니, 정말이지 천연 만병통치약이 아닐 수 없다.

게다가 고양이를 키우는 사람은 심장 질환 위험이 40%나 낮아진다는 연구 결과도 있을 뿐 아니라, 무엇보다도 스트레스 완화 효과가 크다고 한다. 골골송을 들으며 마음이 편안해지고 나른해져 잠이 오는 건 지극히 자연스러운 반응이었다.

꿀밤이는 나의 전용 수면제였다. 나도 숙면을 잘 취하게 되었고, 두 마리를 키우면 고생이 두 배일 거라 생각했지만, 오히려 행복이 두 배가 되는 기분이었다.


3일간 꿀복이와 잘 지내는지 유심히 살펴봤는데, 꿀복이는 꿀밤이를 마치 자식처럼 밀착 케어하고 있었다.

식탐이 많은 고양이인데도 꿀밤이에게 거의 모든 걸 양보하는 걸 보고 정말 놀랐다.

꿀밤이는 스피드가 빨라 자동 급식기에서 나오는 밥을 먼저 차지하고 있었는데, 꿀복이는 그걸 말리지도 않고 조용히 양보했다. 사료도 서로 다른 걸 먹이기 위해 꿀밤이는 당분간 자율 배식을 다른 방에서 하도록 했지만, 형아 밥을 먹으려 해 제지했을 때에도 꿀복이는 자기 밥그릇을 지키려 들지 않았다.


참 신기했다. 모든 영역을 침범하고 다니며 깡패처럼 행동해도 꿀밤이가 마냥 예쁜가 보다. 화장실에 다녀오면 똥꼬를 핥아주고, 온몸을 꼼꼼히 그루밍해 주며 매일 정성스럽게 보살펴준다.


“이 녀석, 째깐이에서 이름도 꿀밤이라고 생기고, 신분이 달라졌네! 엄마, 아빠, 형도 생기고...”


20231029_171413.jpg 아무 데서나 머리만 닿으면 잘 자는 꿀밤이


또 다른 차이점은 꿀밤이는 잠투정이 있다는 점이다. 내가 어디론가 이동하거나, 잠시 화장실만 가도

“끄아앙” 하며 자다가 눈도 못 뜬 채 따라온다.


꿀복이는 독립적이고 주도적이며 마이웨이가 강한 고양이라 나와 붙어 있으려 하지 않았는데, 꿀밤이는 완전히 다른 스타일이었다. 꿀복이가 친구 같은 존재였다면, 꿀밤이는 자식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내가 자식을 낳아본 적은 없지만, 생명을 케어하고 키워가다 보니 나만 아는 시그널이 생기기 시작했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외출 후 돌아오면 꿀밤이는 여전히 골골골 소리를 내며 내게 안긴다. 본인도 안정감을 찾고 있는 것 같았고, 나 역시 지친 하루를 보상받는 기분이었다.

마법의 소리, 골골송.
만병통치약 같은 존재, 우리 꿀밤이.
우리의 인연이 오래도록 무탈하게 이어지기를, 오늘도 조용히 기도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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