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간택일지 2 >
우리 집 고양이들의 하루 일과를 보면, 낮잠이 가장 높은 순위를 차지하고 그다음이 그루밍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꿀복이가 처음 집에 왔을 때 루틴을 보면, 자기 전 그루밍을 열심히 하고 단잠에 빠져든다.
그런데 꿀밤이도 똑같이 자기 전엔 필수적으로 한참을 그루밍하는 습관이 있다.
잠들기 전에 자신의 체취를 모두 감추고, 자신의 존재를 들키지 않으며 편안한 숙면을 취해야 하는 본능적 특성인 것 같다.
일단 반복적인 모습으로 핥기 시작하는데, 눈이 거의 반쯤 감긴 채로 거의 이성을 잃은 듯 그루밍을 하기 시작한다.
이곳저곳 자세를 바꿔가며 자기가 할 수 있는 모든 곳을 혀로 핥아 그루밍한다.
특히 젤리(육구) 쪽, 발톱 사이사이를 하나하나 꼼꼼하게 그루밍한다.
그리고는 암모나이트 자세를 하며 잠이 들기 시작한다. 그 과정을 지켜보면 나도 같이 잠이 쏟아져 버린다.
꿀밤이가 째깐이였던 시절을 떠올리면, 꿀복이는 꿀밤이를 보자마자
첫 만남에서 꿀밤이의 모든 곳을 다 그루밍해 주었다.
공장 주변에서 있던 녀석이라 온몸에 기름때가 많았는데, 아무리 씻겨도 닦아지지 않았다.
그런데 꿀복이가 이틀 정도 케어해 주니 털에 윤기가 나고, 기름때는 싹 지워져 있었다.
꿀복이는 꿀밤이 얼굴을 엄청 핥아주는데, 거의 엄마가 자식을 세수시키는 것처럼 얼굴에 많은 공을 들여주고, 항상 똥꼬도 냄새를 맡고 핥아주며 청결하게 관리해 줬다.
한참을 꿀복이의 침으로 범벅이 되면 둘이 부둥켜안고 함께 잠이 들곤 했는데,
꿀밤이가 덩치가 커지면서 이제는 잠을 따로 자기 시작했다.
낮잠을 잘 때도 항상 형아 껌딱지처럼 쫓아다니며 그 사이를 파고들어 같이 자곤 했는데,
이제는 꿀밤이도 독립적인 모습이 강해지면서 각자 좋아하는 위치가 달라진 것 같다.
자신만의 아지트에서 잠을 자는 게 가장 편한가 보다.
고양이는 서열이 낮은 고양이에게 그루밍을 해준다고 들었던 것 같은데,
꿀밤이가 생후 8개월 정도 되었을 때부터 본인도 형아를 그루밍해 주기 시작했다.
보면 꿀복이가 자고 있을 때 옆에 와서 한 발로 꿀복이 어깨 쪽을 누르며 얼굴 전체를 그루밍해 주기 시작한다.
꿀복이는 별로 달가워하진 않는데, 꿀밤이는 진심을 다해 그루밍을 해주는 것 같다.
혹시 꿀밤이가 본인이 더 높은 서열임을 과시하려고 저러는 건지, 꿀복이를 기를 쓰고 그루밍해주는 걸 계속 목격하게 된다.
그루밍을 해줄 때는 다양한 해석이 존재하는데, 반가워서 친밀감을 표시할 때도 하고,
서열을 확인하기 위해서도 할 때가 있다고 한다.
가끔 꿀복이나 꿀밤이가 나에게 그루밍을 해줄 때가 있는데, 내가 서열이 낮은 집사라서가 아니라 가족의 한 구성원으로서 신뢰하고 있고 애정의 표현으로 해주는 것 같다. (그렇게 믿을 예정)
확실한 건, 고양이들은 관심 있어하는 대상이 아니면 그렇게까지 애정을 쏟는 행동을 하지 않는다.
서로 간에 그루밍을 한다는 것은 어쨌든 관심이 있고 애정이 있기에 하는 행위 중 하나인 것 같다.
꿀밤이가 어린 시절 형아의 사랑을 듬뿍 받은 것을 배웠기 때문에 그 행동을 따라 하는 것 같고,
꿀밤이의 모든 사회화는 꿀복이의 영향을 받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다.
서열을 과시하기 위해 형을 그루밍해 준다고 생각하면 꿀밤이의 하극상이 맞지만,
형을 애정하고 관심 있어 하는 마음이 담긴 그루밍이라면, 그렇게 사랑스러울 수가 없다.
어떻게 해석하든 두 고양이의 케미는 가끔 눈꼴 시릴 정도로 애틋해 보인다.
사람이 관여할 수 없는 둘만의 세계가 존재한다.
내가 가르쳐줄 수 없는 것을 꿀복이가 꿀밤이에게 채워주고, 꿀복이 역시 내가 채워줄 수 없는 부분을
꿀밤이로 하여금 채워가는 부분이 있는 것 같다.
가장 재미있어 보이는 것은, 둘이 맨날 우다닥 놀이를 하는 것인데 서로 숨었다가 나왔다가
숨바꼭질하듯 사냥놀이를 한다.
손톱이 자라나는 것을 아무도 모르는 것처럼, 우리들 모르게 꿀형제는 서로를 가족으로 인정하고,
애틋하게 대하는 것 같다.
서로를 의지하는 우정이 아름답게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