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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지마 Nov 14. 2020

바르니아밴드 후기

나를 묶고 가둔다면 척추도 묶인 채 기립근 묶인 채

소제목은 트위터 친구 오세요 로스쿨 님의 트윗에서 가져왔습니다. 써도 되지?



로스쿨을 졸업하면 별의별 지병 기타 등등을 다 얻게 된다. 몸과 마음의 병을 고루고루… 학교 단톡에 제일 자주 올라오는 것은 학교 주변 정형외과 어디로 가면 되나요, 한의원 좋은 곳 있나요 같은 것들이었다. 당연히 나도 한의원 가서 침 맞고 손목운동 배우고 응급실 실려가고 난리도 아니었고.


졸업하고 나니 병원에 갈 일이 줄긴 했다. 손목도 별로 아프지 않았고, 더이상 쓰러지지도 않았고. 그런데 로3때 운동을 잘 하질 않았다보니(그리고 코로나 핑계로 변시 후에도 나가서 운동을 하질 않았다보니(???)) 몸의 여기저기가 무너져 버렸다. 그리고 어느 순간 깨달았다. 회사에서 항상 몸을 수그리고 다리를 꼰 채 곧 거북이가 될 것 같은 자세로 일을 하고 있었다는 것을……. 


로스쿨 때부터 예견된 미래이긴 했다. 로스쿨생이 하는 일이라고는 열람실에 앉아서 공부하는 것뿐인데, 열람실에서도 하루종일 이쪽저쪽으로 이렇게 저렇게 다리를 하도 꼬아대고 있긴 했다. 한번은 더이상 이렇게 살았다가는 온몸이 무너지고 말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집에 있던 검은색 밴드(그냥 허벅지 한 바퀴 둘러서 찍찍이로 붙이는 밴드)를 감아보기도 했는데, 이것도 다리를 꼬지 않는 데에는 효과가 있었지만 그렇다 한들 책상에 엎어지려 드는 나의 몸을 막아주기에는 터무니없이 부족했다.



그렇게 온몸이 무너진 채 회사에서 무너진 몸을 지탱하지 못해 흐느적거리던 어느 날, 트친이 에르고바디 바르니아밴드 후기를 올렸다. 대체 무슨 원리인지는 모르겠는데 허리부터 무릎까지 묶어놓으면 다리를 안 꼬게 된다는 것이다. 이거라도 한번 써봐 말어 하는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바르니아밴드 착용 전 이미지. 다리 꼬고 상체가 앞으로 쏟아지고 난리도 아니다. 누가 제 모습 찍었어욧!!!


(이미지는 바르니아밴드 공홈에서 캡쳐한 것. 원래 공홈 이미지도 함부로 퍼 오면 안 되는데 지금은 집이고 밴드는 회사에 있어서; 양해 부탁드립니다...)


저런 식으로 자세가 좋아진다 하니 뭐… 음… 스스로도 이렇게 살면 안 된다고 느껴질 정도인데 한 번 써봐도… 그리고 나는 이제 직장인. 갑자기 지르기에 싼 값은 아니지만 이정도는 한 번 사볼 수 있는 게 아닌가! 하는 마음이 들었다. 그런데 허리부터 무릎까지 묶어주는 제품의 특성상, 그리고 아무때나 쳐들어와서 거 로지마변호사 잠깐 회의좀 하시지요. 그건 어떻게 어떻게 하시고. 응. 하시는 (전) 고용주님 앞에서 어 억 잠시만욧 하고 밴드를 풀고 나갈 자신이 없었다. 그런 생각을 하다 수습 때 다니던 직장을 퇴사했다.


그리고 이직. 이제… 더는… 미루면 안 된다… 이러다 산재신청을 하게 되겠구나… 받아들여지진 않겠지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친구한테 물어보니 가끔 다리에 피가 안 통해서 잘 안 쓰고 있다고 해서 이 친구한테 중고로 살까? 하는 생각을 하던 찰나, 당근마켓에 떴다고 엄마가 사오셨다ㅋㅋㅋㅋㅋㅋㅋㅋ


바르니아밴드 착용 후 이미지. 허리에 넓은 부분을 대고 무릎을 작은 부분으로 감싸서 묶어놓으니 자세가 좋아진다.


바르니아밴드를 잠근 상태로 보면 가방처럼 생겼는데, 가방을 열면 밴드가 나오고 가방은 따로 어따 둬야 하는 방식인 줄 알았더니 그게 아니었다. 가방을 열면 사진상의 무릎에 대는 부분이 나오고 가방처럼 생긴 부분은 허리에 대는 것. 안그래도 사무실 작고 누추해서 가방 둘 곳도 없었는데 잘됐다. 


이제 허리에 대고 무릎을 감싸보려면 길이조절을 해야 한다. 나는 중고로 사서 그런가 손만 대면 길이조절이 후루룩! 될 정도로 느슨하고 편하긴 하다(앉아있을 때도 풀리는 정도는 아님). 첫날은 기합이 팍 들어서(?) 아주 딴딴하게 허리와 무릎을 묶어놨는데, 그랬더니 두어 시간 후에는 무릎이 저렸다ㅋㅋㅋㅋㅋㅋ 다음날부터는 그냥 느슨하게 허리와 무릎에 대어 놓기만 하는 정도로 해놨는데, 그래도 충분히 허리 펴고 다리 안 꼬고 앉아있을 수 있다. 신기하다. 이게 뭐라고 진짜로 다리를 못 꼬게 되는거지. 느슨하게 해 두면 다리를 꼬고 싶은 욕망은 생기긴 하는데 어쨌거나 밴드를 하고 있어서 꼴 수는 없다. 


솔직히 하루 종일 하고 있을 수는 없다. 하루종일 다리를 꼬고 몸이 무너지고 싶은 욕망을 참아낼 수는 없으니까(일도 힘들어 죽겠는데 흑흑). 공홈에서도 처음부터 하루종일 장시간 쓰라고 하지도 않는다. 그리고 이직한 회사도 갑자기 누가 들어오고 갑자기 밥 먹으러 가자고 하는 건 똑같고(ㅠㅠ) 화장실 다녀올 때마다, 회의 다녀올 때마다 후루룩 딱딱 하는 소리를 내기엔 주변 사람들한테 민망하니까. 다만 생각보다는 밴드의 해체에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고(그냥 무릎 사이에 버클이 있어서 그거 풀고 조용히 내던지고(?) 나가면 됨), 지금 회사 자리는 남들에게 내 무릎과 허리를 공개하지 않을 수 있는 구조라서 좀 더 편한 정도. 


그리고 첫날 너무 세게 조였는지, 아니면 내가 너무 무너져 있었던 건지(?) 허리가 살짝 아팠다. 로스쿨 다니는 동안에도 허리가 신경쓰인 적은 별로 없었는데(안 아픈 건 아니고 그냥 한두 시간에 한 번 일어나서 아이고!! 하고 허리 돌린 정도? 허리 때문에 병원 간 적도 없고) 많이 아픈 건 아니고 몇 시간 정도 쿡쿡 찌르는 느낌이 있었다. 다음날 느슨하게 해 두니까 별 일 없었다.


물론 밴드가 영원한 해법은 아니고 운동 기타등등으로 몸을 건강하게 유지하는 것이 더 좋겠지만 현대인들(특히 시험 준비하는 사람들, 야근이 잦은 직장인들)이 항상 아름다운 해법을 찾아나갈 수는 없으니 이거라도 써볼 수 있다는 것이다. 낑낑.


(그리고 지금 보니 이 회사 제품 중 유명한 건 일자목 사람들을 위한 목을 잡아주는 제품인가본데 혹시나 이 글 보시면 부탁드립니다(농담))




사족: 왜 별의별 아이템 놔두고 이것만 단독으로 후기를 썼냐면, 요즘 블로그에 글 쓸 게 없어서 아무거나 쓰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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