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방

by 놀닻



눈을 뜨니 그곳은 온통 하얀 곳이었다.


머릿속이 물음표로 가득 찼다. 분명히 집이었는데 분명히……. 팔다리는 자유로웠다. 어디 다친 곳은 없는지 온몸을 살펴봐도 상처도 아픈 곳도 없었다. 이게 대체 무슨. 당황스럽다. 어젯밤에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과 기분 좋게 한 잔 했고 별 일 없이 헤어져 무사히 집에 도착했고 씻고 침대에 누워 잠자기 직전까지, 모든 게 기억이 나는데 눈을 떠보니 이상한 하얀 방이라니. 혹시 아직 꿈에서 덜 깬 건 아닐까 양 손을 올려 뺨을 때리려다 그만두었다. 꿈속이어도 아픈 건 똑같을 것 같다.


여기로 옮겨지는 동안 어떻게 깨지 않을 수 있었을까? 바닥을 짚고 일어나 폴짝폴짝 뛰었다. 발목도 괜찮고 걷는 것도 뛰는 것도 문제없다. 신체 건장한 남자를 아무런 문제없이 이런 곳에 데려오는 사람은 대체 누구인가? 27년간 누군가에 원한을 산 적이 있었나, 아무리 생각해봐도 짚이는 구석이 없다. 나름대로 착하게 살았는데 누군가에겐 아니었을 수도……. 자조적인 생각까지 닿았다 다시 돌아왔다. 어쨌든 이곳을 나가야 한다.


이곳을 뭐라고 불러야할지 모르겠다. 온통 하얀색이다. 그러고 보니 내가 입고 있는 옷도 하얀 색이었다. 옷까지 갈아입힌 건가. 이젠 별로 놀랍지도 않다. 내 그림자 이외에 다른 색을 찾아 볼 수가 없다. 넓은 곳인지 작은 방만큼 좁은 곳인지 가늠 할 수 없다. 내달리다보면 끝이 어딘지 알 수 있지 않을까? 그러다 어디론가 빠지게 되면? 생각보다 좁은 곳이었다면? …끝이 나지 않으면 그 땐 어쩌지?


패닉에 빠지기 바로 직전, 철컥하고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문? 나갈 수 있는 방법이 있다. 소리가 난 곳에는 파란색 정장을 정갈하게 차려입은 남자가 서 있었다. 센 조명 탓에 얼굴이 잘 보이지 않아 얼른 남자에게로 달려갔다.


“여기가 어디죠? 당신은 누구고 어떻게, 어떻게 하면 나갈 수 있어? 대체 왜 날 여기로 데려온 거야!”


의문으로 시작해 분노를 쏟아내는 말에 남자는 곤란한 웃음을 지었다. 답답해 미칠 것 같아. 어디선가 사람이 하얀색만 보면 미치게 된다는 글을 봤었다. 그 사람 말이 맞았다. 불안하고 답답하고 곧 미쳐버릴 것 같다. 말없이 웃음만 짓고 있는 남자를 보며 멱살을 잡고 흔들었다. 이 상황에 웃음이 나와? 말이나 해보라고. 불안한 얼굴을 보고 한 번 더 웃음을 터트린 남자가 입을 열었다.


“안녕하세요. 저 처음 보시죠? 보기보다 말씀이 많으시네요. 표정도 훨씬 다양하시고.”


실제로 보니 좋네요. 대답은 들은 적도 없다는 듯 무시하고 자기 말만 마친 남자는 싱긋 웃었다. 말의 조합이 잘 안 된다. 어딘지도 모를 곳에서 인사부터 시작해 이상한 말들까지. 정신이 아득해지고 가슴은 무언가에 눌리는 것 같다. 자연스레 손에 힘이 풀린 순간 남자는 내 손을 떼어 놓았다. 구겨진 옷깃을 정리하며 담담한 목소리를 다시금 꺼낸다.


“울 것 같은 표정도 좋은데,”


넥타이를 느슨하게 하고 맨 윗 단추도 푼다. 남자는 살짝 찡그린 표정을 금세 풀고


“난 웃는 게 좋아요. 웃어줘.”


미친 소리를 지껄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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