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박사박 싱그러운 소리와는 다르게 마음이 무거웠다. 나를 옥죄이는 죄책감과 귀를 때리는 심장 소리가 괴로웠다. 그를 보고 싶었으나 보고 싶지 않았다. 그냥 돌아갈까, 우뚝 선 걸음에 가지가 발을 타고 올라오는 듯 했고 머리가 어질어질했다. 맑게 퍼진 빛이 한순간에 사라졌다.
매서운 바람을 타고 온 나뭇잎들이 뺨을 할퀴고 앞으로 가라 등을 떠밀었다.
그가 기다리고 있어.
바람에 이리저리 흔들리는 가지들이 화음을 내며 말했다. 몇 발자국만 걸으면 그가 있다. 그가 나를 기다리고 있다. 그가 나를···.
힘겹게 발을 내딛고 마주한 푸른 잎들 사이에 그가 자리했다. 잎이 저들끼리 부딛히며 만들어내는 소리가 시야에 가득했고 손가락이 떨렸다.
"늦었네."
야윈 목소리에 고개를 들 수 없었다. 더러운 눈으로 그를 감히 담을 수 없었다. 흐려오는 시야에 꼭 감은 눈 너머로 가느다란 손이 내 얼굴을 그러쥐었다.
나 좀 봐, 응? 애가 타는 목소리에 입술을 깨물었다. 내가 지금 너를 무슨 마음으로 보러왔는지 알기나 할까. 한 발짝 물러나 울컥하는 마음을 삼켰다. 공중에 뜬 손이 멋쩍게 공기를 그러쥐고는 다시 제자리로 돌아갔다.
"보고 싶었어."
물기 가득한 목소리가 숲 전체를 울렸다. 턱 끝까지 차오른 말을 깨물었다. 돌아오는 대답은 바람소리 뿐이었다. 희미하게 웃던 그가 입술을 뗐다.
"이제 나를 죽여줘."
네 손으로. 순간 팔을 잡는 악력에 소리를 지를 뻔 했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뜨끈한 것이 손바닥 사이를 채우고 초록잎들이 빨갛게 물들어가고 있었다. 푸욱- 소름끼치는 소리가 몇 번이고 들려왔다. 이게 아니야. 덜덜 떨리는 손으로 그의 가슴을 막았다. 울컥 올라오는 것들이 나오려고 기를 쓰고 그는 아프다며 얼굴을 찌푸렸다.
크리스마스네. 그는 바닥을 내려다보며 그렇게 말했다. 아직 여름인데, 하며 하하 웃었다.
손 아래로 느리게 뛰던 심장이 미세한 움직임을 멈췄다. 춥다며 말하던 입술도 조잘거림을 멈췄다. 덜덜 떨리는 손이 그제서야 그의 얼굴을 어루만졌다. 이게 아니야. 이게 아니야, 이게···.
퍼렇게 변한 얼굴은 내가 알던 그가 아니었다. 그래, 이건 그가 아니다. 그가 살아있어. 그는 살아있다.
자박이는 소리에 눈을 돌렸다. 총을 든 그가 긴장한 표정으로 서있었다. 밝은 표정으로 그에게 다가가는 순간, 배에 엄청난 고통이 일었다. 새들이 숲을 떠나고 하늘이 함께 누웠다.
"나도 보고 싶었어. 많이, 많이."
그의 말에 끝을 지었다. 힘겹게 손을 더듬어 그의 손을 잡고는 차갑게 변한 입술에 입을 맞추었다. 그의 말대로 아직 여름이었는데 이가 딱딱거릴 정도로 추웠다. 너무 추우니까 좀 자야겠다. 자고 나면 언제나 그랬듯 그가 웃어줄 것이었다. 이제 일어났느냐고. 자고나면 그를 볼 수 있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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