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는 바야흐로 400여 년 전인 조선시대였겠다. 인조가 궁녀들이랑 술래잡기 놀이를 하다가 급기야 잡히고 말았다. 임금에게 벌칙을 줘야 하는데 감히 임금에게 군밤을 때릴 수도 팔을 때리기에도 마땅치 않아 난감했던가 보더라. 하여 가마에 태워 소나무를 한 바퀴 돌아오기로 하였는데 앞선 궁녀가 그만 발을 접질려 고꾸라지고 말았다. 이통에 인조는 두세 번 땅을 굴러 이마엔 혹이 나고 어깨를 크게 다쳐 의원에게 대침을 맞아야 하는 고통을 당했다는 숨겨진 얘기가 전해져 온다. 술래잡기 놀이는 임금도 좋아할 만큼 중독성이 강한 재밌는 놀이였던가 보더라.
술래잡기와는 다르지만 숨바꼭질 놀이를 한 번이라도 안 해본 사람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마치 성장하면서 거쳐야 하는 통과의례 같은 놀이로 인류 공통의 놀이입니다. “숨바꼭질할 사람 여기 붙어라” 하며 팔을 높이 들어 동참자를 부르면 아이들이 몰려들어 숨바꼭질이 시작됩니다. ‘가위 바위 보’로 술래를 정하고, 술래가 손으로 두 눈을 가리고 대문이나 전봇대 기둥에 머리를 박은 뒤에, 하나부터 열까지 셉니다. 이것을 곧이곧대로 세는 게 아니라 ‘한놈 두식이 석삼 너구리 오징어 육개장 칠뜨기 팔뜨기 구구단 십자가!’라고 외치는데 아이들이 아는 수준의 단어를 최대한 동원했던 기억이 납니다. 지금은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를 서너 번 반복하는 걸로 단순화되었습니다.
유네스코 등재위해 숨바꼭질 국가무형문화재로
아이들이 골목에서 놀던 숨바꼭질 놀이를 국가무형유산으로 등재했다면 믿으시겠습니까? 국가유산으로 등재했다는 얘기는 곧 유네스코에 등재할 준비를 끝냈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세계유산’이나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하기 위해서는 해당 국가에서 법적으로 보호하고 있는 문화재만 가능하기 때문에 각국에서는 문화재보호법을 만들어 시행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선 24년 5월 17일 기존의 문화재보호법을 <문화유산법>으로 법률명을 바꿔 시행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무형유산 중 유네스코에 등재된 것은 엄청 많습니다. 2001년 종묘제례악부터 시작하여 판소리, 남사당놀이, 강강술래, 아리랑, 농악, 줄다리기, 씨름 등 20여 종목이 넘습니다. 그중 씨름은 남북이 공동으로 유네스코에 등재한 무형유산입니다.
“북한 로동신문은 1월 5일 북한 민족유산보호국이 6개 대상을 국가 및 지방비물질문화유산으로 새로 등록했다고 보도했다”는 기사가 2020년 벽두에 나왔습니다. 위 기사 중 비물질문화유산은 무형유산을 말하는데, 그중 눈에 띄는 것은 <바줄당기기, 줄넘기, 숨박곡질>이 새로 등록됐다는 대목입니다. 로동신문의 이어진 설명을 보면, “줄을 돌리거나 고정시켜 놓고 그것을 넘으면서 노는 놀이인 줄넘기와 여러 명의 아이가 몸을 숨기면 한 아이가 숨은 아이들을 찾아내는 숨박곡질은 오래전부터 이어져온 대표적인 민속놀이들로서 오늘도 우리의 생활에 민족적 향취를 더해주고 있다”고 소개하는데 현재 우리 아이들이 놀고 있는 바로 그 놀이입니다. 바줄(밧줄)당기기는 줄다리기로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민속놀이로 캄보디아, 베트남, 필리핀과 함께 유네스코에 2015년에 등재되어 있으니 국가무형유산으로 등재할만합니다. 그런데 그 뒤에 나오는 줄넘기나 숨바꼭질(숨박곡질)은 아이들이 골목에서 놀던 전래놀이인데 이게 어떻게 국가무형유산으로 등재될 수 있었을까 매우 궁금해졌습니다.
궁금한 건 못 참지!
필자는 관련 기사가 있는지 뒤져보다가 2022년에 게재된 「북한의 문화재 보호관리기관 연구(남보라)」라는 논문을 발견하였습니다. 북한의 2021년 국가비물질문화유산의 등록 현황을 보면 <씨름, 태권도, 바둑, 연띄우기, 그네뛰기, 윷놀이, 활쏘기, 조선장기, 썰매타기, 제기차기, 바줄당기기, 줄넘기, 숨박곡질> 등 총 13종목이나 됩니다. 이걸 보면 북한은 민속놀이로 칭하는 전래놀이를 정책적으로 국가 차원에서 보호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북한은 1998년에 '유네스코 세계유산협약'에 가입하고 2004년에 <고구려벽화무덤>을 첫 세계유산으로 등재하였습니다. 민속놀이나 민속경기 진흥을 위해 2008년부터 모든 고급중학교(남한의 고등학교)와 초급중학교(증학교), 그리고 소학교(초등학교)들이 매주 토요일을 ‘민속놀이 운영의 날’로 정해 놓고, 민속놀이 도구들을 갖추는 사업들을 추진하고 있다고 선전한 바 있습니다. 실제로 북한은 각종 명절이나 경축일, 기념일에 진행하는 체육 경기, 유희·오락 경기에 씨름, 활쏘기, 바둑 등 각종 민속경기와 민속놀이를 포함시키고 있습니다. “설 명절날의 민속놀이로 윷놀이와 널뛰기, 연띄우기 등을 꼽고, 이외에도 아이들이 즐겨한 설 명절놀이에는 썰매타기, 팽이치기, 바람개비놀이 등이 있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숨바꼭질 등 전래놀이가 유네스코에 등재될 수 있을지 미지수지만 아이들이 세대를 거듭하여 놀아온 놀이는 인류의 소중한 자산이기에 보호하고 다음 세대에게 전승할 가치가 있다는 생각입니다.
남과 북이 헤어진 지 내년으로 80년이 되어갑니다. 최근 관계가 악화되고 있지만 남과 북에서 가장 변하지 않고 고스란히 남아 있는 걸 꼽으라면 바로 <어린이놀이>입니다. 필자가 연구해 본 바로는 90% 이상 놀이가 같고 놀이 이름이나 방법에 약간씩 차이가 날 뿐입니다. 예를 들어 달팽이집 놀이를 북한에선 돌아잡이라고 하며, 닭싸움은 무릎싸움, 공기놀이는 자갈잡기, 구슬치기는 알치기라고 하며 술래는 범이라고 부르고 가위바위보를 그들은 돌가위보라고 하는데, 놀다 보면 금방 익숙해질 단어들입니다. 남북이 화합하고 통일을 향해 가는데 놀이만큼 가까워질 수 있는 게 없다는 생각입니다. 아이를 키우면서 아이 친구를 통해 엄마끼리 친구가 되듯 통일도 그렇게 가는 게 가장 빠른 길이 아닐까요?
한국에서 케이팝 등 케이컬처가 전 세계에 바람을 일으키고 있는 상황인지라 별 관심도 두지 않았던 북한에서 아이러니하게도 숨바꼭질 등 우리 고유의 전래놀이를 국가무형유산으로 등재하여 유네스코에 등재할 준비를 먼저 하였다는 사실을 접하니 감정이 복잡해지는 게 솔직한 심정입니다. 무형문화유산은 지리적 역사적 사회적 환경에 적응해 온 우리 민족의 집단적인 삶의 지혜와 재창조의 원동력이 되기 때문에 매우 중요합니다. 깜빡 한 세대만 무형문화재를 방치하면 순간적으로 사라져 버릴 수도 있는 게 무형문화재입니다. 무형문화재는 유형문화재를 낳게 해 준 모태이자 민족공동체의 총역량이기에 고려청자나 숭례문 이상으로 보호하고 보전할 가치가 있습니다. 놀이로 설명하면 모든 놀이는 무형문화재에 해당되고 윷놀이판이라든가 굴렁쇠 등 놀잇감은 유형문화재에 해당됩니다. 윷놀이판도 굴렁쇠도 놀이의 주체인 사람이 만들기에 무형문화재가 중요하다는 얘기입니다. 그러나 우리나라 문화재 정책은 이와는 거꾸로인 거 같습니다. 2020년 들어 문화재청(문화유산국) 예산이 1조 원을 넘어섰습니다. 그러나 무형문화재 예산은 고작 1,628억 원으로 5%대에 불과하여 유형문화재 중심으로 예산이 편중되어 있습니다. 눈에 보이는 건축물이나 물건은 귀하게 여기고 사람(인간문화재)에 대한 투자는 별 가치 없이 여기고 있는 건 아니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