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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놀자선생 Oct 29. 2024

여성건강 필수템이 널뛰기였다고?

처녀가 널을 뛰지 않으면 시집가서 아이를 못 낳는다

널뛰기는 여성 전용 놀이였다    


    널뛰기의 옛말은 널뒤기였습니다. 옛 문헌인 『물보(物譜)』, 『해동죽지(海東竹枝)』, 『경도잡지(京都雜志)』, 『송경지(松京誌)』 등에 두루 소개되고 있으며 널뛰기는 이름 그대로 널(판) 위에서 뛴다는 뜻입니다. 최영년은 『해동죽지』에서 널뛰기에 대해 “옛 풍속에 정월 초하루부터 젊은 부녀들이 쌍으로 널을 뛰었다. 이는 고려시대부터 이어왔다.”고 적은 다음, 그 광경을 아래와 같이 읊조렸습니다.    

 

봄날 덜컥덜컥 널뛰는 소리

붉은 단장 젊은 여인 힘드는 줄 모르네.

비단 치마 쌍 날개처럼 펄럭이는데

제비 한 마리 내려오면 또 한 마리 올라간다(「판도희(板跳戱)」)     


 『송경지』에도 “정월 초하루에 여자 어린이들이 널을 뛴다[축판희(蹴板戱)].”고 기록하고 있으며(「풍속조」), 경상북도 안동지방의 널뛰기 민요에도 널뛰기가 부녀자의 대표적인 놀이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규중 생장 우리 몸은

설 놀음이 널뛰기라.

널뛰기를 만친 후에

떡국놀이 가자세라.

(후렴) 널뛰자 널 뛰자.

새해 맞이 널뛰자.     


   『경도잡지』의 기사를 보면, “부녀자들이 흰 널판을 짚단 위에 가로 올려놓고 양 끝에 서서 굴러 뛴다. 서너 자 높이에 이를 때마다 패물이 쟁쟁하게 울린다. 지쳐 떨어져 나가는 것으로 재미를 삼으며, 이를 초판희라 한다”(『동아시아의 놀이』 2004. 김광언)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위에서 나열한 널뛰기에 등장하는 인물의 특징은 모두 ‘여성’이라는 것입니다. 여성 중에서도 시집가기 전의 처녀나 젊은 아낙이라는 것을 보면 전통시대에 널뛰기는 여성의 임신이나 출산과 관련된 놀이였던 거 같습니다.      


여성건강 필수템이었던 널뛰기


     ‘처녀가 널을 뛰지 않으면 시집가서 아이를 못 낳는다.’는 옛 속담까지 있는 걸 보면 널뛰기는 분명 여성과 깊은 연관이 있다는 생각에 미치게 됩니다. 널뛰기는 다리 힘과 폐활량을 키워줄 뿐만 아니라 발바닥을 자극해 주어 심장을 건강하게 해 줍니다. 또한 여성건강과 관련이 깊다는 주장을 하는 사람이 있어 여성질환이 많은 현대 여성들에게 관심을 끌고 있습니다. 아래 인용글은 약초박사로 소개되며 방송에도 출연했던 <최진규약초학교> 블로그에 올라온 내용입니다. 꽤 장황한 내용인데 흥미로운 몇 가지만 추려보겠습니다.    

  

"널뛰기는 남자들은 절대로 하지 않고 여자들만 하는 놀이다. 널뛰기는 여자들을 건강하게 하는데 가장 좋은 운동이다. 널뛰기나 그네타기 같은 민속놀이에는 조상들의 뛰어난 의료지혜가 깃들어 있다. 여자들한테 자궁염이나 질염이 생기는 이유는 패혈(敗血), 곧 죽은 피가 밖으로 제대로 빠져나오지 못하기 때문이다. 여자들은 월경을 하고 나서 탁한 피가 잘 빠져나오지 않아서 온갖 질병이 생긴다. 그래서 탁한 피가 몸 밖으로 잘 빠져나오게 하기 위해서 우리 조상들은 뒷마당에 널판지로 널을 만들어 두고 널뛰기를 하게 했다. 남자들은 아무도 널을 뛰지 않았다. 여자들이 월경이 끝나고 나서 3일 동안 날마다 널을 뛰게 했다."      


“옛날에는 여자를 내쫓을 수 있는 이유가 되는 칠거지악(七去之惡)으로 자식을 못 낳는 것, 고질병, 바람난 것, 투기하는 것 등이 있었다. 그중에서 자식을 못 낳는 것이 제일 큰 죄악이었다. 여자는 제일 먼저 자식을 잘 낳아야 한다. 그래서 우리 조상들은 여자가 자식을 잘 낳을 수 있게 하는 것에 신경을 제일 많이 썼다.”

“옛날에는 계집아이가 열네 살이 되어 생리가 시작되면 널뛰는 연습을 시켰다. 집안이 가난하여 널판을 만들 널판지가 없어서 널을 뛸 수 없으면 나무로 만든 뒤주 위에 올라가서 밑에 지푸라기 같은 것을 깔아놓고 뛰어내리게 했다. 널뛰기를 하거나 그네 타기를 할 형편이 안 되면 뒤주 위에 올라가서 하루에 21번씩 뛰어내리게 했다. 요즘 여자들이 옛날 여자들보다 몸이 약하고 병이 훨씬 많은 것은 널뛰기나 그네타기 같은 민속놀이를 전혀 안 하면서 살기 때문이다.”      

    1895년에 미국의 인류학자인 스튜어트 컬린이 쓴 『한국의 놀이』에서도 ‘줄넘기는 오직 남자들만이 하는 놀이’로 소개하고 있고 널뛰기에 대해서는 “특히 여자아이들이 하며, 심지어는 열아홉이나 스무 살 된 여자들도 한다.”고 기술하고 있습니다. 지금이야 성별 차이가 많이 없어졌지만, 전통시대엔 남자와 여자가 해야 할 일이 뚜렷이 구별되었습니다. 심지어는 놀이에서도 남아놀이 여아놀이로 구분되어 여자들은 공기놀이, 사방치기, 널뛰기 등을, 남자아이들은 구슬치기, 자치기, 오징어게임 등을 하며 놀았습니다.

 여성 건강과 관련된 최진규님의 주장글이 일리가 있다는 생각입니다.  좌우지간 전통시대에 여성건강 필수템 놀이인 널뛰기는 우리나라에만 있는 고유한 놀이입니다.

“중국에는 널뛰기가 없다. 고유 놀이로, 중국 문헌에도 ‘조선족 놀이’로 올라 있다.”(『동아시아의 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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