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아이들 놀이는 똑같다
1590년 네덜란드의 화가 피터르 브뤼헐(Pieter Bruegel)이 그린 <어린이 놀이>라는 작품은 놀이에 관심 있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일반인에게도 많이 알려진 그림입니다. 이 작품은 등장인물 250여 명에 놀이 종류가 180여 가지가 됩니다. 피터르 브뤼헐은 당시 아이들의 놀이를 죄다 모아 한 폭의 화폭에 담은 거 같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놀라운 건, 무려 430여 전 작품으로 이역만리 떨어진 서양의 네덜란드 아이들의 노는 모습을 그려놨는데 현재 우리나라 아이들이 노는 놀이와 유사한 게 너무 많다는 것입니다. 이런 놀이를 우리나라에서 전해줬을 리 만무하고 반대로 네덜란드에서 건너온 놀이라고 볼 수도 없습니다. 왜냐면 네덜란드와 조선은 교류 자체가 없던 시대였기 때문입니다. 이웃 나라인 중국이나 일본이라면 놀이가 전파되었을 거라는데 어느 정도 수긍할 것입니다.
먼저, 유사한 놀이를 살펴보겠습니다. 화가는 그림을 그릴 때 당시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고 유행하는 놀이를 화폭의 전면에 배치했을 것입니다. 먼저 <굴렁쇠> 놀이가 눈에 확 들어옵니다. 그 오른쪽 옆으로 <말뚝박기> 놀이를 하는 아이들이 보입니다. 그리고 굴렁쇠에서 왼쪽으로 보면 <가마태우기> 놀이와 왼쪽 맨 아래에선 <공기> 놀이를 하고 있습니다. 그 뒤 건물 벽 아래에서는 <까막잡기> 놀이를 하고 있습니다. 굴렁쇠 뒤쪽으로 가면 운동회 때 하던 <기마전>과 비슷한 놀이가 펼쳐지며 그 외 <등 타고 넘기> <팽이치기> <술래 알아맞히기> <바람개비> <매달리기> <헤엄치기> <나무타기> <죽마 타기> <빗자루 세우기> <물구나무서기> <가위바위보> <꼬리잡기> 등 헤아리기가 어려울 정도로 많습니다. 그럼 이렇게 시대와 장소가 전혀 다른데도 불구하고 아이들 놀이가 비슷한 양상을 보이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아이들 놀이의 특징은 언제 누가 만들었는지 모른다는 것입니다. 아이들이 모여서 이렇게 저렇게 놀다가 놀이의 형태가 갖춰지고 이름이 부여되며 규칙이 생긴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동서고금을 넘어 아이들 놀이가 비슷비슷하다는 것입니다. 왜일까요? 놀이인문학자를 자처하는 제가 정리한 건 두 가지 이유 때문입니다. 첫째, ‘보편 심리설’입니다. 아이들의 가장 큰 특징은 세상의 모든 걸 놀이로 생각하는 심리가 작동한다는 것입니다. 즉, 놀이 본성을 타고났다는 것입니다. 굴렁쇠 놀이는 아마 그 뒤에 있는 포도주 저장용 오크통을 얽어맸던 동테로 추정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선 예전에 물통이나 똥통을 얽어맸던 대나무 동테를 이용하여 굴렁쇠 놀이를 하였습니다. 아이들은 둥그런 물체를 보면 굴리고 싶은 놀이 본성이 작동하여 놀이가 탄생합니다. 아이들은 돌멩이를 보면 그걸로 놀 수 있는 게 뭘까 궁리하다가 놀이를 만듭니다. 크고 납작한 돌로는 사방치기나 비사치기를 만들고 작은 돌멩이로는 공기놀이를 만듭니다. 세계 어디 가도 이런 놀이가 있습니다. 여기 그림에서 공기놀이는 돌보다 꽤 크게 보이는데 ‘오슬레 놀이’로 양의 관절뼈를 다듬어서 사용했기 때문입니다. 유목 사회에선 동물의 뼈를 이용한 놀이가 많습니다.
그다음 두 번째는, ‘평균 지능설’입니다. 인류의 지능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서양이나 동양이나 미국 어린이 한국 어린이, 아프리카 유럽 아이들 막론하고 지능이 비슷비슷합니다. 둥그런 동테를 보면 굴리고 놀 만한 지능이 있다는 것입니다. 원시 부족 사회를 현재까지 유지하고 있는 발린카족 아이들도 굴렁쇠 놀잇감을 만들어 놀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막대기가 있으면 아이들은 동서고금을 불문하고 칼싸움 놀이를 할 만한 지능이 되며 더 나아가 긴 막대와 작은 막대를 이용하여 자치기 놀이를 만들 줄 압니다. 지능이 비슷하지 않았다면 놀이 양태는 다르게 나타났을 것입니다. 나라나 민족에 따라 놀이 종목이 풍성하기도 하고 빈약하기도 한 이유는 해당 아이들이 처한 환경이나 문화에 따라 차이가 날 수는 있겠습니다. 한국에 유난히 놀이 종목이 풍부하고 다른 나라에 없는 놀이도 있는 건 한국문화의 독창성입니다.
마지막으로 위 그림에서 무슨 놀이인지 모르는 놀이가 있을 텐데요, 한두 가지만 이야기해볼게요. 굴렁쇠 오른쪽에서 뭔가 불고 있는데 저것은 ‘돼지 오줌보’로 풍선이나 공을 만들어 놀려고 바람을 넣고 있습니다. 그리고 굴렁쇠 왼쪽 옆을 보면 한 명은 북과 피리를 갖고 놀고 있고 한 아이가 뭔가 막대기로 휘젓고 있는 '희귀한' 그림이 있는데 도대체 무슨 놀이일까요? 그건 바로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똥”입니다. 똥을 가지고도 놀았다고요? 아이들에게는 먹는 음식은 물론 배설물도 놀잇감입니다. 필자의 경험에 의하면 밥 먹다가 밥그릇을 돌리다가 야단맞기도 하고 밖에 나가 놀다가 똥이라도 발견하게 되면 가장 재밌는 놀이로 ‘똥 휘젓기’를 하던가 ‘똥 튕기기’ 놀이를 하였습니다. 부모만 모를 뿐 아이들은 밖에 나가면 상상 이상의 놀이를 하며 놉니다. 동서고금 아이들은 “똥”을 무지 좋아합니다. 그래서 어린이 책을 보면 똥 관련 책이 생각 이상으로 많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