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빼빼로데이가 되면 점잖아 보이는 어르신들께서늘 그렇듯이못마땅한 표정으로 '유감'을 많이 표합니다. 하지만, 당신도 11월 11일 11시 11분 11초에 빼빼로를 드시면 빼빼해질 수 있습니다. 이건 순전히 숫자로 장난치는 게 분명하지만 원래 축제나 문화는 이런 놀이로부터 탄생하였습니다. 놀이하는 인간이라는 개념을 만들어낸 『호모루덴스』의 저자 요한 하위징아는 ‘놀이가 문화에서 나온 게 아니라 거꾸로 모든 문화는 놀이에서 기원했다’고 주장합니다. 11월 11일 빼빼로데이는 놀이로부터 탄생하였습니다. 이에 대한 여러 가지 설이 있는데 1993년경부터 부산의 여중생들이 매해 11월 11일이면 빼빼해지고 싶어 빼빼로를 먹던 풍습에서 유래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빼빼로데이는 한국의 여중생들이 만들어낸 토종 페스티벌입니다. 빼빼로 모양의 제품은 일본의 포키라는 상품이 원조입니다. 이걸 본떠 국내 기업에서 ‘빼빼로’ 제품을 만들었는데 청소년들이 빼빼로처럼 늘씬해지고 싶은 욕망을 담아 데이(Day)를 추가하여 오늘날의 빼빼로데이가 된 것입니다.
여기서 그럼, 왜 11월 11일이냐는 물음이 나오는데 그건 빼빼로 제품과 11이라는 숫자의 ‘모양새’가 닮았다(유사)는 것입니다. 11은 숫자 중에서 쭉쭉 뻗은 모양에 가장 빼빼한 생김새입니다. 이런 걸 ‘유감주술(類感呪術)’이라고 하는데 유감주술은 모방주술이기도 합니다. 일찌감치 인류학자인 프레이저는 ‘주술은 사이비 과학 혹은 의사(擬似) 과학으로서 과학의 이복형제’라고 말하였습니다. 우리나라 줄다리기에서 숫줄과 암줄을 교접시켜 풍농과 다산을 기원했던 것이 좋은 예입니다. 최첨단 과학문명 시대에 세계 최초로 달나라 뒷면까지 탐사선을 보낸 중국에서 올림픽 개막 시간을 8월 8일 8시 8분 8초에 맞춘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중국에서는 숫자 중 8자를 가장 좋아하는데, 그것은 8(八)의 발음이 ‘바(ba)’로 이 발음은 ‘돈을 벌다’라는 뜻의 ‘파차이(發財, fa cai)’ 발음과 유사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중국에서는 국가 차원에서 주술행위(유감주술)를 하는 셈이 됩니다. 반대로 임신하면 오리고기를 먹지 않는다는 것은 금기사항으로 아기의 손가락이나 발가락이 오리처럼 붙어 나올까 염려되어 생긴 금기 유감주술입니다.
빼빼로데이 탄생신화
한국에 수많은 전통 축제들이 많은데 청소년들은 왜 이런 정체불명의 빼빼로데이라는 것을 만들어냈을까요? 산업화 이전 농촌공동체에서는 일 년 내내 축제가 있었습니다. 아시다시피 인류가 살아 숨 쉬는 지구별 어느 곳에든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축제가 있으며 그것은 현대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선 상고시대인 부여의 영고, 고구려의 동맹, 예의 무천을 들 수 있고, 세계적인 범위에서 펼쳐지는 올림픽이나 월드컵 등도 모두 축제의 범위 안에 듭니다. 그런데 산업화와 도시화로 농촌공동체가 해체되고 마을 사람들이 모여 즐기던 예전의 축제는 더 이상 설 땅을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이런 향수를 갖고 있는 세대들은 명절 때 모여 당시를 회상하며 얘기할 수 있는 건덕지라도 있는데, 도시에서 태어난세대들은 태어날 때부터 HOT나 피카추는 봤지만 그네 뛰고 강강술래 하는 건 교과서 안으로 들어가야 볼 수 있는 모습들이었습니다. 인간은 놀이하는 인간_호모루덴스이자 축제하는 인간_호모페스티부스입니다. 과연 이 세대들은 그 뒤 어떻게 되었을까요? 이들은 궁리 끝에 아니 심심해서 그들만의 놀이와 축제를 만들어냅니다. 11월 11일엔 빼빼로를 먹고, 밸런타인데이 때는 초콜릿을 주고받으며, 짜장면데이 때는 검정 의상을 입고 짜장면을 먹으며 그들만의 축제를 만들어낸 것입니다.
빼빼로데이유감에 대한 유감
빼빼로데이가 되면 소위 오피니언이나 칼럼에 '빼빼로데이 유감'이라며 점잖게 타이르는 소리들이 해년마다 있어왔습니다. 어떤 이는 자본의 꾐에 빠진 좋지 못한 것이라는 둥 경제학 지식까지 동원하며 일장 훈시를 합니다. 그러나 교과서적인 선비얘기는 지극히 꼰대스러운 지적일 뿐입니다. 상업적인 데이(day) 마케팅전략에 이용당하고 있는 거 아니냐고 반문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물론 맞는 지적입니다. 그러나 지금 시대는 농업공동체 사회가 아니고 분명 현대 자본주의 사회입니다. 고대 그리스나 우리나라 전통 시대엔 신들을 위한 축제를 펼쳤다면, 이들의 축제는 기업이나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축제라는 점이 뚜렷하게 다른 점입니다. 하지만 돈벌이하는 회사에서 데이마케팅을 시도한다고 하여 모든 상품을 소비자들이 무조건 받아들이지도 않습니다. 기념일과 상품의 뚜렷한 연관성을 갖춰야 소비자의 기억에 강한 각인을 남겨 상품 스토리텔링이 성공할 수 있습니다. 전통 축제가 살아남은 것도 다 이유가 있습니다. 강릉 단오제는 범일국사 스토리텔링이 있었기에 1천 년 이상 지속되었으며, 강강술래는 이순신 장군 스토리텔링이 후손들에게 각인되었기에, 공히 독창적인 예술로 유네스코에 등재될 수 있었습니다. 11월 11일을 가래떡데이로 만들려던 시도도 있었지만 빼빼로데이 탄생신화 앞에선 힘을 못쓰고 말았습니다.
놀이나 축제는 분명 생산적인 것도 아니고 건설적인 것도 아닙니다. 놀이는 에너지와 돈을 소비하는 지극히 소모적인 행위입니다. 그러나 인간은 일상의 이성적 사고와 축제의 감성적 사고를 넘나들면서 경험과 인식의 지평을 넓힐 수 있습니다. 하비 콕스는 놀이가 인간의 기본 욕구를 충족시켜 줄 뿐만 아니라 놀이 정신이야말로 높은 수준의 문화 활동을 가능하게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한국의 케이컬처가 세계적인 차원에서 앞서가는 것은 이런 놀이정신, 축제정신이 밑바탕에 있는 덕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