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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경수 Mar 05. 2023

진심의 무게


엄마는 내 인생의 가장 큰 화두였고 20~30대 내내 엄마를 이해하려 애쓰다가 너무 지쳐서 엄마와 헤어지려는 시점에 아내가 생겼다. 아내는 가족중심적인 사람이라 당연히 우리 엄마에게도 '며느리'로서 최선을 다했다. (내 애인의 역할은 절대 '사위'의 영역은 아니다. 경조사 때마다 꽃바구니 보내고, 편지쓰고, 식사대접하고...전형적인 'K-며느리'의 그것이었다.) 아내가 생기고 엄마와 나의 관계는 좀 변했다. 



시작은 여기서 부터였다. 내 아내의 어머니는 자식사랑이 지극정성이신데, 그 범위가 나에게 까지 확대되었다. 우리가 동거를 시작하고 부터 아내의 어머니는 내가 좋아하는 음식들을 멀리에서 공수해서 셀수 없는 반찬 개수로 생일상을 봐주셨다. 아내의 본가는 내륙지방이라 내가 좋아하는 싱싱한 해산물을 구하기 힘든데, 멀리 다른지역 수산시장까지 가서 장을 보고 까다로운 음식들을 해주셨다. 그것이 그 분의 사랑인 것 같았다. 내가 이런 사실을 엄마에게 말해주었더니 엄마가 자극이 되었나 보다. 엄마도 아내 생일에 거한 음식을 사고(엄마 형편에 조금 무리한 듯함) 챙겨주는 모습을 보였다. 



올해 내 40번째 생일에 엄마가 갑자기 내 손가락 치수를 묻는다. '그건 왜?' '너 금반지 하나 해주게.' 들어보니 절에 스님이 아는 금방에서 신도들끼리 단체로 맞췄고 그것과 비슷한 것을 내게 선물하고 싶다는 것이다. 기분이 이상했다. 이것이 내가 엄마한테 받는 첫 생일 선물이기 때문이다. 됐다고 괜찮다고 해도 준다길래 실로 오른쪽 검지를 묶은 걸로 손가락 치수를 맞추라고 주고 이번 주말에 만나기로 했다. 엄마가 나와 아내를 집에 초대해서 큰 생일상을 준비해줬다. 그리고 준비했던 반지를 내게 끼워줬다. 요즘 스타일의 18K 실반지에 불교 '옴'문양이 새겨진 약간 웃긴 디자인이었는데 왠지 마음이 벅차올랐다. 


엄마가 나 머리털 나고 처음 준 생일선물.




이 이야기를 나와 친한 동료에게 했더니, '샘이 이제 파트너와 결혼(?)을 하고, 샘 아내분 부모님이 지극정성으로 잘해주신다는 얘기를 들으니 샘 어머니도 뒤늦게라도 "얘도 사랑받고 컸다"라는 것을 보여주려고 하는 것 아닐까요?" 라고 말했다.


갑자기 그 얘기를 들으니 나도 모르게 울컥 했다. 엄마가 그런걸 보여주려고 했던 걸까. 그래서 해본적 없는 일을 하는 걸까. 


엄마가 해준 생일상




엄마는 나와 아내에게 절에 가자고 했다. 절은 엄마에게 요즘 가장 중요한 커뮤니티이다. 스님과 차담을 나눠보자고 해서 갔는데, 스님은 몇번을 봐도 의심스러운 인물이다. 건장한 체구에 깃을 세운 카라티에 조끼를 입고 앉은 스님은 내가 교직을 관두고 싶다고 하니까 요즘 교사들은 소명의식이 없다고 호통을 쳤다. 엄마는 아내를 며느리처럼 대하지만 절에서는 스님에게 아내를 내 친구라고 소개했다. 스님은 내 아내에게 돼지띠, 양띠, 개띠 (남자)를 만나면 잘 될것이고, 다른 띠는 배신하고 떠날 것이라고 점을 봐주었다.(나는 쥐띠다.) 우리 둘다 껄껄 웃고 말았다. 



평생 의심하던 엄마의 사랑. '엄마는 나를 사랑하기는 한 걸까?' 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해왔다. 이 얇디 얇은 반지 하나가 토템처럼 내게 '사랑은 있다.'라고 말하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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