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시골에 사는 캥거루족 30대 내향인 비혼 여자백수이다.
내 현재 상황을 나열하고 보니 뭔가 세상 살기에 불리한 조건들을 많이 갖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가끔 남들은 내게 묻는다
"너 뭐하고 사냐 ? "
그닥 특별한 건 없다.
11년 넘게 회사 다니던 습관이 있어서 그런지 웬만하면 9시 전엔 일어나는 편이다.
뼛속 깊이 노예 버릇이 남아있다.
또 시골이라서 아침부터 농기계 가동하는 소리가 모닝콜로 들려온다.
경운기 소리, 풀깎는 예초기 가동하는 소리 덕분에 타의로 부지런해질 수 있다.
아침에 눈뜨면 배부터 채운다.
배고파서가 아니라 먹고 싶어서 먹는다.
몸 생각 안하고 입의 입장에서만 봤을 때 공복에 탄수화물은 정말 옳다. 입이 즐겁다.
남들 공복유산소 할 때 나는 공복탄수화물이다. 일명 눈뜨먹!
토스트 만들다가 다 태웠다 . . . 요리 못해서 태운 거 절대아님 !
배를 채우고 설거지를 하고 여력이 되면 거실 청소기도 돌리고 걸레질도 한다.
나이 먹고 집에서 안 쫓겨나려면 이정도의 노동은 감수해야한다.
그 후엔 컴퓨터 앞에 많이 앉아있다. 집에 있기 답답하면 지역 도서관을 가기도 한다.
요새 내가 하는 일 중 돈 상관없이 그나마 생산적인 일을 꼽으라면 유튜브 업로드와 브런치스토리 글쓰기, 블로그 포스팅을 들 수 있다.
이 세 가지 중에서 가장 품이 많이 들고 힘든 일은 바로 유튜브이다.
기획, 대본, 촬영, 배우, 편집, 나레이션 모두 내가 해야되기 때문에 제일 하기 싫은 일이며 가장 하이레벨 노동에 속한다.
그래도 가끔 평소보다 좀 더 조회수가 잘 나오는 영상이 있으면 여간 뿌듯하다.
어느 정도 하다가 하고 싶지 않거나 좀 쉬고 싶단 생각이 들면 그냥 쉬기도 한다.
누워서 드라마 볼때가 제일 좋다, 요새 나의 최애는 사랑과 전쟁, 지뚫킥 ! 다 옛날거 ㅋㅋ
입이 궁금할 땐 과자,빵 쇼핑도 종종 다닌다. 난 그냥 적당히 먹는 건 잘 못해서 며칠 동안은 아예 안 먹다가 먹으면 종류별로 다 먹어 버린다.
그나마 다행인 건 주에 3,4회 정도는 운동을 한다는 것이다.
다이어트가 목적이라면 식단이 제일 중요한걸 알지만 요샌 스트레스 안 받으려고 되는대로 산다.
먹고 싶으면 어느 정도는 먹고, 운동도 할아버지 약수터 다니는 느낌으로 설렁설렁 한다.
그냥 뭐든 억지로 하고 힘들게 하는 건 하고 싶지가 않다.
퇴사하면서 나의 목표는 놀듯이 즐겁게 일하는 디지털노마드였다.
컴퓨터와 나 자신만 있으면 어디서든 일을 하고 돈을 버는 시스템을 구축하고 싶다.
비록 지금은 벌리는 돈이 거의 없지만 꾸준함의 힘을 믿고 그냥 하고 있다.
사실 회사 일 하던 때를 떠올려보면 한 편으로는 좀 재밌기도 하다.
인형극하듯이 남이 지시하는 대로가 아닌 내가 원하는 대로 움직일 수 있다는 게 정말정말 행복하다.
예전처럼 매달 몇 백만원씩 들어오던 월급도 없어졌고 명함도 소속도 없지만 직장인일 때보다 훨씬 행복하다.
내가 하고 싶고 즐겁다는 생각이 드는 일을 조금씩 해나가며, 빼고 더하면서 이거저것 시도해보는 지금이 매우 가치 있게 느껴진다. 남들이 좋다는 직장을 유지하며 돈을 벌기 위해 일하던 과거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만족스러움이다.
처음엔 그냥 질퍽하고 시커먼 찰흙덩어리를 떠넘겨 받은 기분이었다. 시커멓고 차가운 찰흙덩어리를 보며 막막하고 엄두가나지 않았다. 지금은 하루하루 서서히 뭔가 만들 방법도 찾아보고, 이것저것 만들다가 일부는 버리기도 하고 살을 더 떼어서 붙이기도하면서 연구하고 궁리하고 있는 중이다. 이런 과정을 거치다보면 언젠가는 나만의 예쁜 그릇이 완성될 걸 믿어 의심치 않는다.
너무 힘들었지만 꿋꿋하게 버티며 다녔던 과거의 나도 정말 대견하고, 누가 뭐라고 하던 묵묵히 내 길을 가고 있는 지금의 내 모습도 너무 기특하다. 너무 힘들 때, 지금 가는 길이 맞는지 내 스스로에게 의심이 들 때 내게 이야기 해주고 싶다.
"넌 항상 잘해왔고 잘해나가고 있어, 그리고 꼭 잘하지 않아도 상관없어," 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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