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 첫날이 생각난다. 원래 같으면 출근할 시간에 짜슐랭 끓여 먹고 있으니 평일에 집에 있는 게 적응이 안 되고 낯설었다.
그러나 인간은 편하고 좋은 건 금방 적응을 한다. 이럴 땐 내가 영락없는 인간임을 다시 한번 깨닫는다. 집에서 눈치가 좀 보이고 가끔 불안하기도 했지만, 일단 몸뚱이가 편해지니 전반적으로는 만족스러웠다.
가끔 퇴사한 회사 꿈을 꿨다.
회사에 대한 꿈은 두 종류였는데 첫 번째는 다시 출근해서 미친 듯이 일하는 꿈이었다.
남자들이 군대 다시 가는 꿈을 악몽으로 꾼다고 하던데 그 마음을 조금은 알 것 같았다.
두 번째 꿈은 회사를 다시 다니느냐 그만두느냐 선택의 기로에 놓인 꿈이었다.
내가 고민과 걱정이 많은 성격이라 퇴사 때 고민을 정말 많이 했다. 다시 돌릴 수 없는 선택이기에 그 부담이 더 심했던 것 같다. 그래서 그때의 스트레스가 하얀 바지에 묻은 고추장처럼 남아서 빨아도 빨아도 흔적이 지워지지 않는가 보다.
누가 내게 잘하는 게 뭐 있냐고 묻는다면 나는 자신 있게 후회를 잘한다고 말할 수 있었다.
예전엔 정말 심했는데 요샌 후회해 봤자 나만 괴롭다는 걸 경험을 통해 깨달아서 10번 후회할 걸 3번 정도로 줄였다. 역시 다른 사람이 100번 말해줘도 내가 경험하고 깨달아야 한다. 가끔은 똥인지 된장인지 찍어먹어 보는 게 필요할 때도 있는 것 같다.
우린 매 순간 크고 작은 선택을 해야 한다.
짜장이냐 짬뽕이냐, 부먹이냐 찍먹이냐, 일어나느냐 조금 더 자느냐 등등 이런 사소한 선택에서 조차도 그 선택의 결과가 만족스럽지 않을 때마다 후회라는 놈이 와서 자꾸 얼쩡거렸다. 후회되지 않아? 하고 나를 힐끔거렸다. 그래서 무언가 결정을 할 때 가장 무서웠던 게 바로 ‘후회할까 봐’였다.
후회장인인 내가 후회에 대한 생각을 하며 깨달은 게 몇 가지 있다.
다시 선택해도 바뀌지 않는다면 후회할 필요가 없다
같은 상황이 다시 오고 내게 선택의 순간이 다시 주어진다면 과연 내 선택이 바뀔까?라는 질문에 ‘아니, 바뀌지 않아, 난 또 같은 선택을 했을 거야’라는 생각이 든다면 더 이상 후회하는 건 무의미하다. 후회할 필요가 없다.
어차피 인간은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틀린 문제를 아무리 알려줘도 비슷한 문제가 나오면 또 비슷하게 생각해서 오답을 고를 확률이 높기 때문에 오답노트를 만든다. 주식은 오를 때 사고 내릴 때 팔라고 말을, 들어도 선뜻 행동하기 어렵기 때문에 내릴 때 사고 오를 때 파는 실수를 반복하는 모양이다.
선택의 순간에서 나의 뇌와 마음이 서로 잘 상의하고 많은 토론을 거쳐, 최선까지는 아니더라도 차선정도는 선택을 했을 것이다. 다시 돌아가도 어차피 나는 비슷한 선택을 할 것이다.
인생은 과정의 연속이다
난 항상 좋은 결론이 어서 나오기만을 심장을 부여잡고 걱정하며 기다렸다. 시험이나 일의 결과는 물론이고, 심지어 여행을 떠날 때도 어서 무사히 잘 놀고 빨리 돌아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무사히 잘 갔다 집에 돌아와 내 방에 앉으면 그때 안심이 됐다. 매사에 조바심이 났다.
퇴사를 한 지금도 주기적으로 불안했다. 그러나 그냥 과정의 연속임을 깨닫고 이런 시간이 또 언제 오겠나 라는 생각을 갖고, 시간을 감사히 보내려 한다. 이것저것 해보고 내 시간을 나 스스로 계획하고 보내는 지금이 가끔 재밌기도 하다.
어떤 선택을 해서 어떤 결과가 나오든 그건 임시적이고 일시적인 결과라는 걸 깨달았다. 인생은 그냥 과정의 연속일 뿐이다. 역사는 끊임없이 재평가되고, 진리라고 믿었던 것들도 계속 바뀌는 걸 보면 알 수 있다.
후회는 내가 선택하지 않은 것, 가지 않은 길에 대한 궁금증이다. 그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나는 아마 끊임없이 후회를 하며 살게 될 것이다. 퇴사한 게 잘한 건가 라는 의구심이 들 때마다 생각한다.
잘된 것도 있고 아쉬운 점도 있겠지. 근데 완벽한 선택은 없고 어차피 후회해도 소용없다.
인생은, 백설공주는 왕자와 행복하게 살았습니다처럼 결말이 난 동화가 아니라 연속되는 다튜멘터리 시리즈니까. 그래서 나는 오늘도 그냥 살아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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