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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놀마드 노을 Apr 23. 2024

상황에 밀려 수동적으로 살다가 백수가 됐다



상황이 사람을 만든다



처음 회사에 입사를 하면서 나에게도 담당업무라는 게 주어졌다.

입사만 하면 모든 게 해결될 줄만 알았는데 돈을 주고 다니던 학생과 돈을 받고 다니는 직장인 생활은 하늘과 땅차이였고 처음 해보는 회사 일이 힘에 부쳤다.



하나 다행인 건 당시 나의 사수선배가 일도 잘하고, 알려준걸 또 물어봐도 '그럴 있지' 하며 다시 가르쳐주는 인자한 사람이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문제가 생기면 혼자 찾아보고 해결하기보다는 선배에게 도움을 청했다.

가장 쉽고 빠르게 해결할 수 있는 선배찬스를 자꾸 사용하게 되면서 점점 더 의지를 하게 됐다.



믿는 구석이 있으니 업무를 열심히 배울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고 자연스럽게 업무습득 속도가 현저히 느렸다.

하루살이처럼 그날그날 닥친 일을 주먹구구로 쳐내기에 바빴고,

선배가 휴가나 출장이라도 가는 날엔 엄마와 떨어진 아이처럼 불안하기만 했다.







상황에 적응하며 나름대로 살아남았다



그러던 어느 날 선배가 다른 지사로 발령이 났다.

청천벽력이 바로 이럴 때를 위해 만들어진 말인가 싶었다.

선배가 가고 남은 자리엔 일을 잘 못하는 대리와 사납기로 유명한 과장이 오게 됐다.

모르는 게 생겼을 때 대리는 별 도움이 되지 못했고 과장에게 물어보면 혼내며 가르쳐주는 게 다반사였다.



그때부터 정신이 확 들면서 살궁리를 하기 시작했다.


각종 업무지식을 스스로 찾아보며 차츰 터득해 나갔고

과장이 업무를 알려줄 땐 두 번 물어보지 않도록 정신을 집중해서 배웠다.


이때 습득한 업무지식은 회사생활 내내 요긴하게 써먹을 수 있었고

업무를 잘 알아야 남에게 아쉬운 소리 안 하고 당당하게 살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상황에 떠밀려 사는 게 능력인 이유



나는 변화를 싫어하고 능동적으로 무언가를 하는 걸 어려워해서 현상유지를 목표로 최대한 버티고 버티며 11년 간 회사를 다녔다.

하지만 몸과 마음이 너무 축나서 선택이 아닌 생존을 위해 퇴사를 할 수밖에 없었다.



상황에 밀려 백수가 됐고 퇴사는 처음이었기에 모든 걸 바닥부터 배워야 하는 10년 전 신규직원으로 돌아간 기분이었다.

사수선배가 가버린 덕분에 빠르게 일을 배울 수 있었던 그때를 생각해 보니,

힘든 상황에 나름대로 적응하다 보면 어느새 그 힘든 것들이 득이 되는 경우도 많다는 걸 알게 되었다.



회사를 나와서 조금 다른 시각으로 세상을 볼 수 있게 되었고

직장인일 땐 몰랐던 다양한 감정을 느낀 덕분에 사람에 대한 이해의 폭도 넓어졌다.


백수가 된 상황이 내게 주는 유의미한 경험과 가르침은 회사를 계속 다녔다면 얻지 못했을 것들이다.

내게 퇴사가 없었다면 우물 밖은 위험해를 외치는 우물 속 개구리로 남았을 것이다.


자발적으로는 무언갈 시도하지 못하는 나를 위해 상황이 알아서 도와주고 있었다.









알을 깨고 나와야 성장한다는 소설 데미안의 한 구절처럼 틀을 깨고 나오면 다른 세상이 펼쳐진다.

나처럼 스스로 알을 나오기 어려운 사람은 상황의 도움을 받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출처 : SBS스페셜 482회 알을 깨다>


알은 상황이 알아서 깨 줬고 나는 적응만 하면 된다.

비록 상황에 이끌려 오게 됐지만 주어진 상황을 받아들이고 나만의 영역을 구축해 나가는 유연성도 알을 깨는 능동성 못지않게 대단한 능력이다.



스스로 알을 깨는 대범함과 능동성은 없을지라도
상황에 적응해 가며 그 순간의 의미를 찾아가는 수용과 꾸준함이 있다면
자연스레 내가 살기 좋은 나만의 세계를 만들어갈 수 있게 된다.

주도적으로 살기를 강요받는 세상에서 상황을 인지하고 적응해 나가는 수동적인 자세는 인생을 다채롭게 만드는 다양한 삶의 방식 중 하나이다.

중요한 건 어떤 방식으로 살아야 한다는 정의가 아니라 나에게 맞는 삶을 찾아가는 과정을 유연하고 너그럽게 즐기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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