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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놀마드 노을 Apr 16. 2024

퇴사 후, 인간관계에서 도망쳤다



[화나게 비추는 사람이 싫어, 사람이 싫어]



회사를 다닐 때 정말 당황스러웠던 부분은 사람이 너무 싫어진다는 것이었다.



회사는 서로 물고 뜯고 싸우기에 딱 좋은 구조였고

정치질은 국회뿐 아니라 회사에서 더 빈번하고 치열하게 벌어진다.


말이 와전되며 부풀려졌고 서로 헐뜯고 으르렁대는 게 일상이었다.

눈앞에서 벌어지는 치졸한 밥그릇싸움을 옆에서 지켜보는 간접경험만으로도 정신이 피폐해졌다.



진짜 이권자는 링밖에 있고, 준비된 판 안에서 생존을 위해 물고 뜯는 싸움은 약자의 몫이었다.

그렇게 링 위에서 한참 뒹굴다 보면 회의감이 밀려왔고 뭘 위해 이렇게까지 해야 되는 건가 하는 물음표만 가득 찼다.






[이상신호가 나타났다]



내가 수용할 수 있는 선을 넘은 강한 자극이 쉴 새 없이 들어오니 이상반응이 나타났다.

감당하기 힘든 인간혐오의 감정이 위험 수준으로 치솟았다.



부정적인 감정은 좋은 감정보다 훨씬 기운이 센 데다가 회사에서는 좋은 일보다는 좋지 않은 일이 생기는 경우가 압도적으로 많았기에 사람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을 갖게 되는 건 이상한 게 아니었다.



밀려드는 업무를 해결하기도 벅찬데 사람 스트레스까지 더해지니 점점 자기 통제력을 잃어갔다.


나를 부르는 소리는 일을 얹어주는 신호이거나 눈치게임의 시작을 알렸기에 내 이름이 불리는 게 사형선고 같았다.

사람 눈을 쳐다보며 말하기가 버거워서 땅을 보며 대화를 하기도 했다.

성악설을 믿는 마음이 확고해졌고 심지어는 어린아이를 보면서도 인간은 원래 악한 존재야 하며 외면했다.






[그렇게 혼자가 됐지만]



진작에 한계치를 넘었다는 걸 알았기에 퇴사하고 나서는 무리해서 사람을 만나지 않았다.

까만 바다 위 작은 바위에 머무는 새처럼, 표류하듯 혼자 지내는 시간이 늘어갔다.




혼자만의 세상은 편안했고 홀가분했다.


가끔 외롭기도 했지만 치졸한 이권다툼과 교묘한 신경전에 시달리는 것보단 혼자인 게 백번 나았다.

때때로 느끼는 공허함은 단순히 사람을 만나지 못했기 때문이 아니었다.

내가 나와 있으면서도 나를 만난 적이 없었기에 항상 공허하고 허탈했다.

내가 나를 채워주지 못하면 누굴 만나도 외로울 뿐이었다.





그렇게 외딴섬 같은 나 홀로 세상에 살고 있을 무렵, 조금씩 사람들을 만나며 다양한 도움을 받게 됐다.



같은 회사에서 먼저 퇴사 한 후배는 지금 생활이 생각보다 힘들지 않고 오히려 좋다며 나를 응원해 줬고,

퇴사자를 위한 각종 지원혜택도 알려줬다.

쉬는 기간 동안 내가 근원적인 고민에 다가갈 수 있게 조언을 해주는 선배도 있었고, 

재테크 팁을 주며 경제적인 문제를 도와주는 지인도 있었다.



용기 내서 시작한 글쓰기 모임에서는 같은 관심사를 가진 결이 비슷한 사람을 만나며 많은 위로와 영감을 받아 글쓰기를 이어갈 수 있었다.



인간관계에서 도망쳤던 내게 기꺼이 손을 내밀어주는 이들은 막막한 백수생활의 등대였다.






[내게 일어난 변화, 그리고 사람]



그러던 어느 날 마트에서 엄마 손을 잡고 아장아장 걷는 아기를 보게 됐다.


아고 귀여워.


나도 모르게 든 생각이 너무 놀라웠다.

귀찮고 시끄럽다는 이유로 얘를 싫어하는 내가 아이를 보고 귀엽다는 생각을 했다는 게 신기했다.

황량하게 말라버린 사막 같은 마음을 쓰다듬는 습한 바람 한줄기였다.




기존에 갖고 있던 부정적인 신념을 바꾸기 위해선 그보다 2배 많은 좋은 경험이 필요하다.

부정적인 자극을 멈추고 긍정적인 경험을 늘려간 덕분에 사람에 대한 편견을 많이 바꿀 수 있었다.


  

나를 괴롭게 한건 사람보다는 상황인 경우도 많았다.

괴로운 상황에서 벗어나 새로운 상황으로 들어가 보니 세상엔 여전히 좋은 사람들이 많았다.



그제야 일부를 보고 모든 걸 평가해서 마음을 닫아 버렸던 과거의 내가 보였다.

그때의 내가 이해가 가지 않는 건 아니다.

각인된 생각을 바꾸기 위해 그 반대의 경험을 할 기회와 충분한 시간이 필요했을 뿐이다.



사람을 색안경을 끼고 보며 배척하는 것은 결국 나 스스로를 고립시켜 피해자로 만드는 길이다.


나쁜 경험 때문에 좋은 기회를 잃고 싶지 않았다.

사람이 주는 힘은 분명하며 좋은 사람과 건강한 에너지를 나눌 때 혼자서는 갈 수 없는 다른 세계로 나아가게 된다. 

나는 그 길을 걷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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