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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놀마드 노을 Apr 09. 2024

하고 싶은 게 없는 사람이 퇴사를 하면



# 저 퇴사해도 될까요?



11년간 직장생활을 하면서 항상 퇴사를 생각했지만 용기도 확신도 없었다.

저 퇴사해도 될까요 라는 물음에 답을 찾기 위해 머리를 싸매고 고민하다가 누가 나 대신 선택 좀 해줘라는 마음으로 퇴사 관련 영상을 열심히 찾아봤었다.


영상 대부분은 퇴사 전에 뭘 할지 정해놓지 않으면 퇴사 후에 방황하게 되니 할 일을 정해놓고 관두라는 내용이었다.


아니, 이 사람아! 내가 지금 정해놓은 대로 다 됐으면 지금 이 영상을 볼일도 없었거든!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마음이 더 답답해졌다.



대학교 새내기 때 한 교수님께 '자넨 꿈이 뭔가'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처럼 모든 게 막연했다.

나는 그다지 하고 싶은 게 없었고 뭘 해야 할지 몰라서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 수학의 정석보다 어려운 대한민국 인생의 정석



탄생-공부-입시-대학-취직-중형차구매-결혼-내 아파트 마련-출산-육아-퇴직-죽음



나는 대한민국이 짜놓은 인생의 정석루트를 밟으며 너 잘 가고 있다는 소리를 들을 때 비로소 안심이 됐다.

저대로 살다 죽지 않으면 큰일 날 것 같아서 부득부득 그 루트를 벗어나지 않으려 아등바등거렸다.



보통으로 살기 위한 인생의 정석을 지키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고 퇴사를 시작으로 그 길에서 벗어나고 나니 혼돈 속에 빠진 기분이었다.



아무것도 정해진 게 없었고 뭘 하라고 일러주는 사람도 없었다.

항상 시키는 일을 열심히 해왔던 나는 주체적으로 뭔가를 해야 한다는 게 너무 어려웠다.





남의 말 듣기 싫어서 퇴사를 했는데
정작 뭘 해야 할지 몰라서 누가 좀 알려줬으면 싶은 아이러니.





이미 짜놓은 길을 걸어가기 위해 노력했지 내가 설계를 한 적은 없었으니 뭐부터 해야 할지 너무 막막했다.

나는 어떤 거라도 좋으니 나 스스로 생각해서 선택하고 행동하는 능력을 터득해야 했다.








# 아무거나? 아니고, 무엇이든!



세상에 '아무거나'처럼 모호하고 답답한 단어가 있나 싶다.  

누군가에게 뭐 먹을래라고 물어봤는데 아무거나라는 대답이 돌아오면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아무거나라는 메뉴는 없거든요? 아무거나가 얼마나 어려운 줄 아냐고요.



나는 '너 뭐 하고 싶어?'라는 물음에 대답을 할 수가 없어서 '그냥 아무거나'라고 말을 하고 있었다.

목적지를 모르겠으니 어디로 어떻게 가야 할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뭘 해야 할지 모른다는 건 바꿔 말하면 뭐든 할 수가 있다는 말과 같다.

아무거나는 곧 무엇이든 뜻했다.



뭘 할지 모른다는 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것이고

할 수 없는 것에 괴로워하기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너무도 많았다.



누가 시키는 걸 로봇처럼 하는 게 싫었던 나에게 뭐든 할 수 있다는 건 배에 동력을 다는 것과 같았다.

항상 바람이 시키는 대로 가야 했던 돛단배는 모터를 단 동력선으로 다시 태어났다.


뭐든 내가 선택할 수 있었고 내가 결정할 수 있었다.

스스로 결정하는 것이 서툰 건 이상한 일이 아니었고 터득해 나가면 됐다.



마음껏 헤매고 잘못 들어가고 다시 돌아 나오는 시도와 실수가 필요했다.

동력선의 연료는 바로 수많은 넘어짐과 실패였다.


꽃이 떨어지면 그다음 계절에 맞는 나뭇잎이 생겨난다.


그런 과정을 겪으며 내가 적응할 수 있는 시간을 주고 차분히 기다려주면 된다.

지금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며 조금 느리더라도 나만의 속도를 찾으면 된다.

꽃잎이 떨어진 자리에 나뭇잎이 생기는 것처럼 점점 큰 나무가 되어가는 것이다.



내겐 선택할 수 있는 자유가 있었고

내가 뭘 하고 싶은지를 찾아가는 것도 진정한 자유를 얻기 위해 필수적인 과정이었다.



아무것도 하고 싶은 게 없는 사람은

방황하고 넘어지고 부끄럽고 뿌듯해지는 다양한 시도를 통해 주관과 취향을 갖게 된다.


가장 중요한 건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하며 느리더라도 꾸준히 걷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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