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입도 없이 어떻게 사냐며 밥은 먹고 다니냐 걱정하시는 아빠의 얼굴을 마주할 때면(살이 통통하게 쪘는데 자꾸 그러시니 참 멋쩍다.) 불효녀가 된 것 같은 죄책감과 함께 내가 뭘 크게 잘못 살고 있는 건가 하는 불안함이 까맣게 몰려와 낙뢰와 폭우처럼 쏟아진다.
회사 다닐 때 사드렸던 다이슨 청소기가 고장 났다는 엄마의 전화에, 이제 바꿀 때가 되었는데도 선뜻 사드릴 수 없는 게 기운이 빠진다.
직장인일 때 매년 모시고 다니던 건강검진을 못 해 드린 지도 2년이 넘었다.
돈이 있었으면 간단히 해결됐을 것들이 자꾸 눈에 들어오니 회사를 그만둔 것이(정확히는 월급이 없어진 게) 너무 아쉬워진다.
그래서인지 백수가 되고 나서는 부모님을 뵈러 가는 길이 즐겁지가 않다.
궂은비처럼 나를 초라함으로 쫄딱 젖게 만드는 부모님의 걱정이 싫었고, 나이 들면서 아픈 곳만 늘어가는 부모님께 해드릴 게 없는 나의 무능에 괴로움이 커진다.
제 앞가림도 못하고 있는 내게는 계속 챙겨드려야 할 것만 같은 부모님의 존재가 어느 순간 버겁게 느껴졌다.
그러나 부모가 부담스럽다는 말을 감히 어디에다 마음 편히 할 수 있을까.
K장녀의 무게
고생하는 부모를 보며 안쓰러운 마음을 갖고 자란 이 땅의 K장녀(또는 장남이)라면 더더욱 이런 말을 꺼낼 수 없을 것이다. 부모님이 얼마나 고생하며 나를 키우셨는데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나 싶어 패륜을 저지르는 것만 같다. 이 땅 위 K장녀의 정체성은 가족을 지켜야 한다는 지구용사와 같은 의무감으로 무장된 경우가 많다.
나 역시 전형적인 K장녀였고, 가족이라는 인연에 꽤나 지대한 영향을 받고 자랐다.
힘들게 사시는 부모님을 보며 성인이 되면 부모님의 짐을 덜어드려야겠다 다짐했고, 그런 마음이 책임감이 되었으며, 요즘처럼 내 삶이 버거운 순간에는 부담감으로 커져간다.
가족이 부담된다는 생각 자체가 죄스러워서 이런 내 마음을 깨닫고 인정하는데도 많은 시간이 걸렸다.
모두가 행복해지는 길
사실 부모님은 소소하게나마 경제활동을 하고 계시고 감사하게도 아직까진 크게 아픈 곳이 없으시다.
나를 힘들게 하는 건 지나친 책임감이었고, 잘해드리고싶은 마음과 따라주지 않는 현실의 간극이스스로를 지치게 했다.
누가 뭐라고 하기도 전에 지레 혼자서 이고 지고 낑낑댔으니 버거울 수밖에.
과한 책임감으로 나를 괴롭혀서 부모님께 무언갈 해드리는 것보다 모두가 오랫동안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은 바로 나부터 행복해지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 누구도 아닌 내 뜻에 따라 살아야 한다. 그걸 알고 나니 당장은 힘들더라고 멀리 보고 걸어가는 한 발 한 발에 힘이 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