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놀마드 노을 Aug 05. 2024

행복하려고 퇴사하면 망합니다


- 꿈만 같았던 퇴사, 그 이후


퇴사 이후 한동안은 세상이 달라 보였다.

평일에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는 게 꿈만 같았다.

이젠 쉬는 날이나 휴가에 회사에서 온 전화를 받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에 족쇄에서 벗어난 듯 몸과 마음이 가벼웠다. 전화진동이 울리지 않는 핸드폰으로 유튜브를 보고 있으면 그렇게 홀가분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장기퇴사자가 그렇듯, 퇴사 이후 1년이 넘어가니 불안과 권태가 수시로 나를 흔들어 놓는다. 마음 안에 상습불안위험지역이 생겨버린 듯 잦은 진동이 너무 당황스럽다.

퇴사하고 한동안은 여기가 천국인가 싶었는데, 이러다 정말 천국구경하게 생긴 지경에 이르렀다.






나는 퇴사 이후에도 여전히 괴로웠다.
조금이라도 덜 괴롭고 싶어서 회사를 나왔는데 나아진 게 없다는 사실이 좌절스러웠다.








- 퇴사하면서 파라다이스를 기대했는가


도망친 곳에 낙원은 없다고 하지만 사실 낙원을 바라고 나온 건 아니었다.

그런데도 꿈꾸던 퇴사를 실행에 옮기자 나의 행복회로가 과하게 열일을 하여 마음이 들뜬 게 사실이었다.

잘되겠지, 어떻게든 되겠지 하며 이것저것 해보고 싶은 것도 있었다.

그래, 누구나 그럴싸한 계획을 가지고 있다. 처맞기 전까지는.


퇴사 이후에도 괴롭고 힘들고 위태로운 순간의 연속이었고 더 안 좋아진 것도 많다.

그래도 좋은 점이 많을 거라 믿고 있었기에 나쁜 상황을 인정하지 않으려 했고, 부정하면 할수록 고통은 더 강해졌다.

직장인일 때나 백수가 되어서나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부정하는 버릇이 괴로움을 더 살찌게 했다.







- 수용으로 알게 된 고통의 두 얼굴


우후죽순처럼 고개를 드는 다양한 고통을 바라보다가 인정의 단계에 이르렀다.

힘든 순간도 내 인생의 일부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며, 마음 한편에 고통이 머물 수 있는 자리를 내어주었다.

성숙하지 못하고 서툴러서 비좁고 누추한 곳이 마련되었지만, 받아들임이라는 빛이 희미하게 지키고 있었다.


나를 괴롭히던 고통이 서서히 자리를 잡고 나니 현재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이 눈에 들어왔다.

항상 부정하며 밀어내려 했던 고통을 인정하고 자연스러운 삶의 일부로 품자, 상황을 새롭게 볼 수 있는 눈과 버틸 수 있는 힘이 생겨났다.


미워하고 외면했을 땐 모래성같이 약한 나를 무너뜨리는 거친 파도였던 고통이 든든한 아군으로 변해있었다.








퇴사 이후의 삶이 파라다이스일 거라 기대한다면 더 큰 좌절을 마주할 수 있다.

파라다이스는 없다. 분명 회사원일 때 좋았던 점이 있고 퇴사로 인해 힘든 점이 생긴다.

그저 회사 다닐 때 보다 나아진 점이 있다면 된 것이고, 퇴사 전보다 낫다는 생각이 들면 대성공이다.

삶에서 고통은 필연적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그 안에서 고통을 다루는 법을 안다면 퇴사 이후에 괴로울지언정 무너지지는 않을 것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