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력노력노력, 더 노력하라
'목표를 갖고 열심히 노력하라'는 가르침은 '해는 동쪽에서 서쪽으로 진다'는 사실처럼 잘살기 위한 절대불변의 진리라고 배워왔다.
노력의 가치는 타의 모범이 되고 귀감이 되어 널리 칭송받곤 한다.
상장처럼 수여되는 성과와 부상으로 따라오는 사람들의 부러움은 너무나 달콤한 노력의 결실이다.
하지만 목표달성이란 내 능력에 대한 끝없는 증명이자 계속 성과를 생산해 내야 하는 공정을 뜻한다.
공장을 최대치로 가동하기 위해는 나의 결핍과 끊임없이 마주하며 인내라는 연료를 짜내야 한다.
이 숨 막히는 공정의 부산물이었던 나는, 세상의 인정을 받고 싶어서 몸 닳는 고통중독자였다.
목표달성을 채찍질하며 불안과 걱정 속에서 온체력이 바닥나도록 스스로를 소모시켰다.
이 힘든걸 왜 하고 있나 싶어서 나가떨어지는 순간, 좌절이라는 사나운 매질에 회복불능한 패배자가 되어있었다.
결론은 정해져 있으니 넌 그냥 하기나 해
그렇게 '목표-노력-좌절'의 쳇바퀴를 쉼 없이 돌다 보니 결혼을 위해 사람을 만나고, 살기 위해 음식을 먹고 있는 기분이다.
물론 결혼을 위해서는 연애부터 해야 하고, 음식섭취의 주된 기능은 생존이다.
하지만 나는 누군가가 좋아져서 결혼이 하고 싶어 지고, 음식을 먹는 자체로 즐거움을 느끼고 싶다.
지나친 목표지향은 결혼이라는 결론을 내놓고 연애를 시작하고, 오직 먹고살기 위해서 음식을 입에 쑤셔 넣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왜 가고 있는지도 모른 채, 누군가 내려놓은 결론을 따라 달리고만 있으니 항상 왜라는 물음이 나를 괴롭혔다.
노페인 노게인? 노재미 노의미!
묻지 마 식의 노력은 도대체 이걸 왜 하고 있나 하는 회의감을 불러오며, 목표를 이룬다 해도 허무를 피할 수없다.
게다가 내가 원하는 목표가 아니라 세상이 정한 목표를 따라갔을 땐 그 허무가 배로 깊어진다.
노력이 불러온 번아웃은 과정이 주는 재미를 잊었기에 나타난 부작용이다.
나를 계속하게 하는 힘이 과정 자체가 주는 즐거움이 된다면, 모든 경험은 쓸데없음이 아니라 나름대로의 의미를 갖고 나의 자산이 된다.
연애를 하다 헤어져도 추억이 되고, 음식이 맛없어도 하나의 경험으로 남는다.
설령 달성 하지 못하더라도 경험하는 순간순간이 소중해질 것이다.
모든 살아가는 과정 자체를 목표로 두니 왜라는 질문에 답이 된다.
왜 해야 하냐고? 내가 경험하는 모든 것들이 바로 그 이유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