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놀마드 노을 Dec 02. 2024

30대 백수와 LH행복주택


나는 캥거루족으로 부모님 댁에서 살았다.


미혼으로 30대 중반이 되면서부터는 엄마는 내가 나가 살기를 은근히 바라셨다.

고향이 충청도인 엄마의 돌려 말하기식 충청도화법을 감안하면 표현만 완곡할 뿐 나갔으면 하는 뜻은 확고했다.


시골이라서 차를 타고 가지 않으면 각종 편의시설을 이용할 수 없는 우리 집에서 나는 수시로 엄마의 기사노릇과 장보기 등을 맡아하며 내가 얼마나 필요한 존재인지를 엄마에게 인지시키려 노력했다. 내가 없으면 불편해지는 건 엄마라며 되려 큰소리도 쳤다.


아직은 나가고 싶지 않았다. 회사가 집과 멀지 않았고 나가는 순간 다 돈이라는 게 부담이 됐다. 독립의 자유보단 따뜻한 엄마밥이 훨씬 더 달았다.


처음엔 딸내미를 못 쫓아내 안달인 엄마에게 야속한 마음이었지만, 60대에 들어선 엄마가 자식 치다꺼리에 지치실만도 하겠다 싶어 이해가 됐다. 아니면 시집가란 말을 안 듣고 버티는 딸에게 나름의 변화구를 던지신 걸지도 모르겠다.






이러던 중에 나는 다니던 회사에 사표를 내고 백수가 되었다.

노처녀도 모자라 백수딱지까지 붙이고 니 가뜩이나 팍팍한 눈칫밥 위에 죄스러움이 얹어졌다.


거기에 왜 이렇게 동네사람들, 가까이 사는 친척들은 수시로 우리 집에 오는 건지. 등기우편은 왜 대면으로 받게 해 놓은 건지. 예고도 없이 집에 누가 오는 날엔 방에서 숨죽이고 없는 척을 했다.


멀쩡한 30대 청년이 이 시간에 왜 집에 있어?라는 눈빛을 마주하면 어쩌나, 혹시나 대놓고 물어보면 뭐라고 해야 하나. 타인이 던지는 의아함을 마주하기가 두려웠고 사람들의 점심식사에 곁들일 대화소재가 되고 싶지 않았다. 정작 그들에게 나는 그날 점심메뉴를 정하는 것보다도 중요도가 낮은 걸 알면서도 나 혼자 의미 없는 방어를 하며 힘을 뺐다.






집을 나가야겠다는 생각이 점점 강해졌다.

그러던 중 독립해서 살고 있는 동생에게 가는 길에 도로 게시대에 걸려있는 플래카드를 보게 됐다.




"LH행복주택 자격완화 추가입주자 모집"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