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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놀마드 노을 Dec 12. 2024

집도 직업도, 막막한 반쪽짜리 시작이지만

# 독립을 결정하고 실행에 옮긴 건 퇴사 후 6개월 만이었다.

수입이 없으니 부모님 댁에 눌러앉아 거주비를 아껴야 했음에도 나갈 집을 알아봤던 건 집에서 느끼는 안정감이 불편함과 답답함으로 변했기 때문이다. 그 감정은 내가 회사를 그만둔 이유와 닮아 있었다.


매달 꼬박꼬박 들어오는 월급은 회사가 원하는 사람으로 살기에 받는 대가였다.

퇴근 후 짧은 저녁시간, 일주일에 하루이틀을 제하고 인생 대부분의 시간을 회사에서 견디며 보냈다. 그나마 주어진 쉬는 날마저도 회사사람으로 살아가기 위해 충전하는데 썼다.


내가 안정이라 여긴 것들이 점점 나를 잡아맸다. 부모님 집에 살면서 정년을 보장해 주는 회사를 왔다 갔다 하다가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는 사람과 결혼하는 게 정말 내가 원하는 삶인가에 대한 의문이 계속됐다.

매뉴얼화된 무난한 삶은 맞는 것 같긴 한데, 목구멍에 딱 걸린 고기 같은 건 뭘까. 맛있다고 해서 입안에 넣었는데 어째 영 깔깔하다. 아니 씹을수록 쓰디쓰고 괴상하다. 혹시 이거 알레르기 반응인가. 삼키고 싶지가 않다. 에잇, 퉤.








# 월급이라는 확실한 보상보다, 부모님의 그늘이 주는 안정보다 더 절실한 게 있었다.

회사나 부모님이 바라는 게 아닌 내가 원하는 내가 되고 싶었다. 내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부터 알아보기에 40대는 너무 촉박할 것 같았다. 30대에도 용기 내지 못한 일을 40대에 할 수 있을까라는 물음에 고개를 저었다. 나이가 들수록 도전에 대한 두려움은 커질 테고 나는 하지 않을 핑계만을 헤아리는 겁쟁이로 거듭날 것이다.

다 그러고 살아, 남들은 그만둘 줄 몰라서 다니는 줄 아니, 옮겨 앉아봤자 다 거기서 거기야. 평소에 나를 주저앉히던 말보다 더 거대한 힘이 나를 회사밖으로 이끌었다. 마치 딱 지금이라는 듯이.



내가 원하는 바에 귀 기울이고
 그 대답을 긍정하며
자신에 대한 수긍으로 삶을 채우고 싶었다.




# 그렇게 백수가 됐다. 성실한 직원, 착한 딸, 번듯한 사회인이라는 자리를 유지해야 한다는 강박에서 놓여나 내가 원하는 바를 고민하고 스스로가 이끄는 삶을 살기 위해. 도피일지언정 당장 심폐소생을 받아야 했던 지친 나를 위해. 매일 휘우듬하게 흔들리는 위태한 내 삶을 내가 구해내기 위해.



# 이런 다짐을 이어가려고 독립도 결정했다. 

나는 타인의 인정이 꽤나 중요한 사람이라 내가 원하는 걸 듣기 위해 부모님과도 떨어져 지낼 필요가 있었다.

동생이 사는 지역에 있는 LH행복주택에서 동생과 같이 살게 되었다.

10년을 함께한 직장과 집을 나온다는 건 내 인생에 손꼽을만한 큰 변화였다.

동생이라는 친근한 존재는 변화의 충격을 줄여주는 완충역할을 해주었다.

생활비를 나눠서 부담하게 됐으니 재정적인 완충도 포함이었다.









회사를 나올 때 이직이 아니라 백수로 돌아갔기에 나조차도 자신이 없는 확실한 불확실의 시작이었다.

독립한다고 나와서는 또 다른 가족과 함께 살았기에 완전한 독립을 하지도 못했다.

직업도 집도 아직은 뭐 하나 제대로 갖춘 게 없는 반쪽짜리지만, 항상 생각만 하던 퇴사와 부모님 집탈출까지는 잘 해냈다. 자세히 보니 이지러진 반쪽이 아니라 하나하나 작은 완성이 쌓여가고 있었다. 쉽지는 않지만 이번엔 뱉고 싶지 않다. 깎아지듯 완벽한 모양아니었지만 내 의지가 들어갔기에 맛이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먹을만했다. 만들다 보면 내게 잘 맞는 식사를 지을 수 있을 것이다. 맛있는 날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채워지고 기울며 살아가는 거지. 걱정 마. 달은 어떤 모양이어도 아름다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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