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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lnoc Jun 10. 2018

소설 / 기사단장 죽이기

사실은 별 것 아닐지 몰라

기사단장 죽이기 - 무라카미 하루키


책 고르기
반디앤루니스에 들렀다. 이 책은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 출간된지 얼마 안되어 독보적인 베스트셀러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노르웨이의 숲 때문에 무라카미 하루키라는 작가에 대한 인상은 별로 좋지 않았다. 별로 내 취향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워낙 유명한 작가이다보니 다시 한번 도전해본다는 생각으로 집어든 책. 꽤나 두꺼운 두 권의 책이라 시작이 쉽지 않았는데 읽기 어렵진 않았다. 결론적으로 노르웨이의 숲 보다는 꽤나..재미있었다. 하지만 후반부로 갈 수록 힘이 빠지고 시시해져 버린 느낌.

요약 (스포)
주인공은 초상화가이다. 그는 사랑하는 와이프 유즈에게 갑작스런 이별을 통보받게 되고 함께 살던 집을 떠난다. 이곳 저곳을 떠돌던 중 대학 친구인 아마다 마사히코로부터 그의 아버지인 아마다 도모히코가 병중이라 비어있는 집에 머무는 것을 제안받게 된다. 그 집에 머물며 자신만의 작품에 골몰하게 된다. 그는 우연히 집의 다락방에서 아마다 도모히코의 <기사단장 죽이기> 라는 미발표 그림을 발견하게 되고, 그 후 기이한 일들이 그의 주변에 일어난다. 마을의 높은 곳에 살고있는 백발 신사 겐시키로부터 자신의 초상화를 그려줄 것을 제안받게 되며, 새벽 기이한 방울소리에 이끌려 찾아간 집 근처 숲에서 깊게 만들어져 있는 구덩이와 그 속의 방울을 발견한다. 겐시키는 이 사건을 계기로 더욱 주인공의 주변을 맴돌고 자기 이야기를 하기도 하면서 친밀해져간다. 그리고 어느 날 그림속의 기사단장을 실제로 마주한다. 기사단장은 그의 마음을 읽고 그가 나아가야 할 길을 암시적으로 제시한다. 주인공은 주변에 벌어지는 일련의 사건들 속에서 신체적 심리적 역경을 오롯이 겪게된다. 그리고 그 과정을 통해 성장하고 모든 것은 제 자리를 찾아간다.

감상
내가 책을 끈기있게 읽지 못해서 일 수 있지만, 소설들은 왠지 후반부로 갈수록 힘이 빠지는 느낌이다. 앞단은 여러 설명들로 매우 디테일하고 전개가 빠르고 기대감을 불러일으키는 반면, 후반부로 갈수록 이야기의 깊이가 얇아지고 실상 별거 없는 이야기로 끝나고 마는. 

기사단장 죽이기도 전체적으로 그런 느낌이다. 앞부분의 시작은 매우 흥미롭다. 작가가 화가로서 겪는 고난, 주인공의 일상과 내면이 그려지는 듯이 디테일한 생활과 감정 묘사, 가장 현대를 사는 것 같았던 주인공이 아마다 도모히코의 집에 들어가면서 마치 옛날에 사는 듯한 느낌으로 전환 되는 것 모두. 하지만 중간중간 복선이라 생각했던 내용들이 사실은 별 이야기 없이 마무리 된 것이 아쉽다. 


사실은 별 것 아닐지 몰라

예를 들어 소설 내내 미스테리함을 풍겼던 멘시키의 일상을 마리에를 통해 볼 수 있었던 기회임에도 그는 그저 집에서 조용히 일하고, 빨래하고, 운동하고, 건조기를 돌리고, 샤워를 오래하고, 아랫 집을 망원경으로 훔쳐보는 사람이었다는 것. 소설 초반에 유부녀 여자친구를 통해 그의 집에 흥미롭고 비밀스러운 방이 있다라는 복선이 있는데, 소설을 보는 내내 마치 그 방을 통해 이야기가 폭발하고 멘시키의 비밀이 드러날 것 같은 느낌이었다. 하지만 마리에의 눈을 통해 본 그 방은 자신이 사랑한 여자들의 옷과, 물건, 속옷들이 잘 정리되어있는 방이었을 뿐이었다. 그 방에서 마리에는 자신이 모르는 사이 어머니의 물건일지 모르는 옷들을 자신을 지켜주는 부적삼아 숨어있는 생활을 견뎌낸다.  마리에가 숨어있던 옷장 앞에 멈추어 섰던 겐시키와 그가 그이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는 기사단장의 말 뒤로 아무 것도 드러나지 않은 겐시키의 이야기가 아쉽다. 그리고 주인공이 메타포로 가득한 미지의 세계에서 고군분투하는 것과 마리에의 실종(잠적) 시기와 아무런, 전혀 아무런! 연결고리가 없었다는 것도 아쉽다. 옷이 살찍 찢기고, 흙투성이 인 채로 돌아왔다는 마리에의 복선도 결국 자신의 잠적을 설명하기 위한 위한 의도적인 연출이었을 뿐이고. 

그 "별 것 없음" 에 주목해 보았다. 주인공과 마리에의  연결고리가 있다는 가정하에 다시 생각해보면 '주인공의 메타포 세상 = 마리에에게 겐시키의 집'. 주인공과 마리에는 신비하고,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 어떤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지 모르는 그 세계를 무작정 탐험하기 시작한다. 주인공은 이중메타포를 경계하고 마리에는 겐시키를 경계한다. 주인공은 메타포의 세계에 흐르던 강물을 마시고, 마리에는 가정부 방의 생수와 크래커를 먹으며 그 공간을 버텨낸다. 주인공은 메타포의 세계에서 자신 마음 속의 큰 빚인 죽은 여동생 고미치와 <기사단장 죽이기> 속의 돈나 안나를 만나고 그들을 떠올린다. 큰 강을 마주했을 때는 마리에의 펭귄 인형 부적을 얼굴없는 남자에게 주고 앞으로 나아간다. 그리고 가장 고통스러운 횡혈을 지날 때 그들의 응원을 받으며 사당 뒷편의 구덩이로 돌아온다. 마리에는 자신의 어머니일지 모르는 여자의 옷장에 숨는다. 겐시키에게 들킬 위기를 맞이하지만 여자의 옷 끝자락을 잡고 그 위험을 벗어난다.  그리고 그 곳에서 기사단장을 만난다. 마리에는 기사단장의 충고대로 겐시키의 손이 닿지 않는 방에 숨어든다. 그리고 여자의 옷을 떠올린다. 그리고 겐시키에 관해 '별다른 것을' 발견하지 못한다. 그리고 청소 업체가 그의 집을 방문한 틈을 타 탈출한다.

원인이 무엇이었는지는 대개 흐릿해져버리는 것이다. 
혹은 아무래도 상관없어지거나. 혹은 딱히 아무도 알고 싶어하지 않거나.

어쩌면 "메타포의 세계, 구덩이 / 겐시키의 집 = 마음 속의 의문과 두려움" 일지 모른다. 그 세계로 "왠지 들어가야 할 것 같은 강력한 이끌림에 의해" 들어간다. 그리고 그 세계를 온 몸으로 헤집고 다닌다. 그간 궁금했던 것들 (마리에가 어디에 있는지, 겐시키는 왜 우리 집을 엿보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알지 못한다. 우리가 가진 의문들에 "사실은 별거 없단다" 그저 원인이 하나 둘 쌓여 일어난 결과일 뿐이라고, 강한 의문을 품던 그 "원인"은 사실 그저 마음의 의심일 뿐이었다는 것을 이야기 하려는 걸까. 모두 쉬이 궁금해하지 않는 그 원인들에 대해서 유달리 호기심이 강했던, 놓친 부분이 있다고 믿었던 주인공과 마리에에게 일어난 기이한 경험을 통해 사실은 "별 것 없노라고" 이야기 하고 싶던 걸까. 

소설은 모든 것이 제 자리로, 그럴 듯하게 돌아간 모습으로 끝을 맺는다. 유부녀 여자친구는 주인공과의 관계를 일방적으로 정리하고 자신의 가족에게 충실한 삶으로 돌아간다. 주인공은 유즈와 "당연히 그래야 할 것 처럼" 재결합한다. 그리고 자신의 아이일지 모르는 아이를 기르며 다시 초상화가로서의 삶을 살아간다. 겐시키는 고모를 통해 자신의 아이일지 모르는 마리에와 좀 더 가까워진다. 그리고 모든 의문의 시작이었던 아마다 도모히코의 집은 화재로 소실된다. 그리고 이 모든 일의 시작이었던 <기사단장 죽이기>와 주인공을 지켜보던 <흰색 스바루 포레스터의 남자> 그림도 함께 사라진다. 마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 처럼. 이 모든 의문은 아무 소용 없는 것이라는 것 처럼.

전반적으로 이야기나 배경묘사는 흥미로웠지만 대단한 반전을 기대하기 보단 소설 속에 등장하는 여러 복선과 메타포가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상상하며 읽는 것이 소설을 더 재미있게 읽는 방법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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