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nolnomnon Jan 06. 2021

선비견과 눈치견 사이

난 역시 준비된 견주

월요일이 되었고, 아침에 일어나서 응가셔틀 산책도 마쳤다.


CCTV 세팅을 맞춰놓고, 세나개와 개통령 유튜브에서 학습한대로 분리불안 특급 솔루션인 노즈워크용으로 종이에 잘게 자른 간식을 구겨서 집안 여기저기 던져놓고 주의를 분산시킨 후 호다닥 집을 나왔다.

집을나와 걸어가면서 버스에서 CCTV 녀석의 동태를 살폈다. 좁은 집구석을 돌아다니며 간식을 열심히 찾아 먹어 치웠다. 20분이  걸리지 않았다.

TV 출연하는 사연있는 강아지처럼 간식을  먹은 후에 집을 구석구석 돌아다니며 나를 찾고 짖고 하울링할까봐 공포영화보듯 조마조마하며 화면을 응시했다.


간식을 다 먹어치우고 잠시 현관에 자리 잡은 은비는(이때까지도 가슴이 덜컹했다. 현관에서 몇시간 동안 움직이지도 않고 기다릴까봐...너무 과도하게 강아지 인강을 들은 탓이다.) 맥빠지게도 어슬렁 어슬렁 돌아다니다 방석에 똬리를 틀고 잠을 자기 시작했다. CCTV 어플은 움직임을 감지해서 그 장면만 녹화가 되는 원리였는데, 사무실에서 일하면서 보니 가끔 물먹으러 다니는게 다였고 큰 말썽이 없었다. 첫날이니 혹시 몰라 점심시간에 택시를 타고 집에 가서 산책을 하고 다시 나왔다. 큰 동요가 없었다. 아무래도 분리불안이 없는 애였는데 내가 괜히 걱정을 했나 싶었다. 처음에 울었던 건 아마도 집이 아직 익숙치 않아서 (이틀밖에 안되었는데 그럴만도 하다...더구나 길에서 떠돌던 강아지였는데 말이다.) 그랬던 것이거나, 강아지들을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데 정신없는 개목욕탕에서 일주일 동안 생활하더니 그럴바엔 이 작은집이 낫겠다고 태세전환을 한 것일수도 있다.


현관에 옆드려있는 은비


회사에 복귀에서 오후 업무를 마저 보고 퇴근해서 집에 돌아가니, 일주일 넘게 올라오지 못하게 했던 침대에 떡하니 올라가 베개에 자리를 잡고 현관으로 들어오는 날 응시하고 있는 은비를 발견했다. 요망한 녀석같으니. 그동안 얼마나 올라가고 싶었을까. 높이도 꽤나 높은데 (매트리스 두 개를 겹쳐 씀) 짧은 다리로 용써서 올라간 게 기특한 마음도 들었다. 그날 밤부터 은비는 당연한 듯 잘 시간이 되면 침대에 올라와 자리를 잡고 동침을 시작했다. 여러 걱정도 되었지만(은비털, 분리불안, 정드는것 등) 마침 겨울이라 뜨끈하니 만족스러웠다.



침대 차지하고 몹시 만족. 처음에는 나와 떨어진 발끝 언저리 자리에서만 잠을 청했다.


강아지는 무리생활을 하는 동물이라 원래 혼자 있는게 스트레스를 굉장히 쌓이는 일이라는걸 학습으로 알고 있었고, 아직까지 목표는 은비를 명견으로 갈고닥아 대감댁에 입양보내는 게 목표였으므로(또 주변 민원이 두렵기도 했기에), 은비님 멘탈 케어를 위해 바로 열 시간 내내 혼자 두었다간 고장나 버릴까봐 다음 일주일 간은 점심시간마다 집을 들락날락 했다. 밤거리를 배회하던 술꾼이자 골목 인싸의 삶은 일단 제쳐두고 정 필요하면 사람들을 집으로 불러모았다. (유기견이긴 하지만 다행히 학대당한 것은 아닌지 은비는 사람에 대한 두려움은 전혀 없었고 오히려 계속 만져달라고 눈빛을 쏘고 있었기 때문에 내 손을 쉬게 하기 위해서라도 다른 사람들이 필요했다.)

믹스견이라 그런지 유기견이자 스트릿견으로 산 눈칫밥 세월때문인지 영특한 은비는 금방 내가 때되면 돌아온다는 걸 이해한 눈치였고, 잠이 많기도 많아 낮시간 대부분을 침대와 방석을 굴러다니며 아주 잘 자는걸 확인했다.


걱정했던 것보다 수월하게 해결되자 또다시 자신감과 자만심이 차오르고 다음 직업을 훈련사로 바꿔야 하나 진로탐색을 생각하던 무렵 부모들이 자식을 키우면서 진짜 어른이 된다고 말하는 것처럼 하늘 저 위 어딘가에서 겸손함을 잃지말라며 채찍질하듯이 또다른 개육아 태스크가 날 찾아왔다.

작가의 이전글 임시보호 적응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