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이 예민한 오줌싸개
강아지 배변은 임시보호를 결정하기 전 짖는 문제와 더불어 가장 걱정했던 문제였다. 다행히 은비는 우리집에 도착하자마자 깔려있던 패드에 시원하게 볼일을 봐 주었고, 응가는 하루 두 번의 산책 중 무조건 실외배변 했고 쉬는 가끔 배변패드 언저리에 조준 실패 정도의 실수라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그런데 혼자있는 시간이 길어지다 보니, 가끔 불안이 찾아왔는지 거실에 실수하거나 방석에 실수하는 일이 벌어졌다. 때때로 퇴근해서 집에 돌아오면 이미 말라있어서 며칠이 지나서야 사건 흔적을 발견하는 안타까운 경우도 발생했다. 약간 기분이 안좋아졌지만 유튜브 선생님들과 개통령님이 배변 실수는 스트레스로 발생하는 문제고 해당 영역을 놀거나 잠을 자는 곳으로 인식하면 실수하지 않을거라 해서 흔적을 발견한 날이면 퇴근 후 저녁 산책 시간을 늘렸다. 피곤한 개가 행복한 개라는 말을 되새기며 걷고 또 걸었다.
어느날 간식을 평소보다 조금 많다 싶게 준 날이 있었다. 다음날 집에 와보니 새로운 냄새가 났다. 집안을 살펴보니 화장실에 범인의 설사가 있었고 (설사를 참는 것은 사람이고 개고 불가능하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그 설사를 밟은 발자국이 화장실 밖으로 이어졌다. 발자국을 따라가다 보니 침실 문지방을 넘어...이불 커버와 베개에 흔적이 남아있었다...다행히도 그 상태로 이불을 박박 긁진 않아서 흔적은 미미하였다. 커버를 벗겨서 세탁기에 넣고 평생 하지 않던 화장실 바닥 대청소를 락스까지 써가며 했다. 그때 변기 옆에 있던 배변패드를 불가피하게 잠시 치웠는데, 청소를 하고 나와보니 그 사이에 거실에 또 한바탕 쉬를 싸고 있었다. '바로 산책 안나간 내 잘못이지' 하며 평일에 별안간 이불빨래에 화장실 청소에 거실 물청소까지 마쳤다. 피곤했지만 아직 누울 수 없었다. 아직 산책의 책무가 남아있었기에...바로 터덜터덜 나가서 한 시간쯤 걷고 돌아왔다. 코피가 날것 같았다. 내일 출근을 할 수 있을까 생각하며 잠에 들었다.
그 난리를 치고도 희한하게도 별로 화가 나지 않았다. 평소에 주위 사람들에게 화가 많다는 얘길 듣는 나였는데, 역시 내 화는 사람 한정이었구나 스스로를 기특해했다. 그것이 오산이었다는 걸 깨닫는건 몇달 뒤의 일이다.
칼퇴 혹은 조기퇴근을 최고의 미덕으로 생각하는 삶이지만, 갑자기 쏟아진 업무를 피하지 못하고 급하게 야근을 하고 유독 피곤한 몸을 이끌고 9시가 넘어서야 집에 돌아왔다. 그때는 은비와 함께한 지 이미 몇 달이 지나 서로의 호흡이 좀 맞아 있었고, 간혹 소변 실수를 하긴 했지만 맨 바닥 혹은 러그(이미 하도 쉬를 해서 타격감이 없어짐)에 가끔 싸는 정도였기에, 퇴근하면서 '아 오늘은 어딘가에 쉬가 있을수 있겠군' 생각할 정도로 여유있는 마음을 갖고 있을 때였다.
아니나 다를까 집에 오니 은비가 눈에 띄게 소극적으로 꼬리를 흔들었다. 그럼 그렇지 하며 흔적을 찾는데 배변패드에도 러그에도 찾을수 없었다. 의문을 갖고 산책 전에 잠시 누울려고 침대로 간 순간...크고 선명한 오줌 자국을 찾을 수 있었다. 얼마나 시원하게 쌌는지 이불을 넘어 매트리스 커버까지 젖어 있었다.
큰 맘먹고 산 구스 이불이었다. 야근으로 인해 이미 피곤한데 이걸 수습할 생각하니 머리가 터질것 같았다. 소리를 지르고 싶었지만 개는 이미 벌어진 일에 대해 혼내면 무용지물이란 사실을 떠올리며 간신히 참았다. 충격과 분노로 그 자리에 우뚝 서있다가 도저히 주체하지 못하고 그대로 쉬 뭍은 부분을 피해 이불 위에 누워서 엉엉 울었다. 그런 내 모습을 조금 떨어진 곳에서 지켜보던 은비도 놀랐는지 행거 아래로 들어가 (자기 아지트) 귀를 9시 15분 각도로 내려깔고 바들바들 떨었다. 좀 울다가 심호흡을 하며 이불을 들고 세탁기로 갔다. 망가지던 말던 이게 얼마짜리던 상관없이 그냥 세탁기로 돌려버려야지. 했는데 우리집 9kg 짜리 1인 가구 세탁기엔 역부족이었다. 넣어도 넣어도 비집고 나오는 구스이불을 보면서 2차 통곡하며 잉잉 울면서 욕실에서 오염된 부분만 대충 빨아서 거실에 대충 널어놓고, 할 일은 해야 했기에 씩씩대면서 발발떠는 은비를 데리고 산책을 나갔다. 외출했다가 엄마를 화나게 해서 말없이 빠르게 걷는 엄마 뒤를 뛰어가듯 따라가던 내 어린 모습처럼 은비는 내 뒤를 종종 걸었다.
소리만 안질렀지 온 몸으로 개한테 화를 내고 있었다.
내내 눈치를 보던 은비는 그날 밤은 침대로 올라오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