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비 집 익숙해지기
세나개와 동물농장 애청자이자 먼 과거 한때 수의대 지망생으로서 이웃 민원도 걱정이지만 좋은 입양 가족을 찾아주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시작한 임시보호인데 애가 짖던 울던 말던 무시하고 출근하는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명견으로 성장시켜서 잘 입양보내주고 싶었고, 또 남의 집에 갈 강아지인데 임보자 잘못만나서 마음의 병이라도 생기게 했다간...좋은 마음으로 시작한 일을 망칠까 두려웠다.
마침 미숙한 손놀림으로 시도했던 목욕이 실패로 돌아가면서 예약해둔 동네 개목욕탕 사이트를 보니 요즘 종종있는 체계적인 유치원은 아니지만 저렴한 가격에 낮시간동안 강아지를 맡아주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었다. (유치원은 알아보니 매일 맡기기엔 내 조그만 월급이 감당하기 어려운 가격이기도 했다...) 임보중인 유기견이라고 하니 사장님이 딱해하시며 가격도 더 할인해주셨다. (야호)
우선 은비는 유기견 쉼터에서 다른 강아지들과 생활하기도 하고 스트릿에서 구르다 온 짬이 있어 개들과의 사회성이 문제될것 같진 않아보였고, 지켜본결과 사람만 있으면 안정을 금방 찾았기 때문에 임시방책으로 제격이었다. 출근시간은 오픈 전이었기 때문에 불꺼진 가게 문을 따고 은비를 두고 나오는데 (이미 온 강아지 한 마리가 우렁차게 짖고 있었다.) 괜스레 얼굴이 더 처량해보여 맘이 아팠다. 저녁에 찾으러 갔더니 개판 사이에 은비가 안보여 물어보니 은비가 개들한텐 관심이 하나 없고 미용사 선생님만 쫓아다녀 그 방에 있다가 안겨 나왔다.
집에 돌아와선 세나개를 인강처럼 계속 보면서 분리불안 훈련에 매진했다. 강형욱 훈련사의 현관문 밖에 나가서 1분 5분 10분 점차 시간을 늘려가는 방식이 효과를 보이는듯 했다. 사람 손을 너무 너무 좋아하는 은비였지만, 나한테 집착(?)해서 분리불안이 더 심해질까봐 걱정되고 또 임시보호인데 너무 정붙이면 서로 힘들테니 칭찬할때 아니면 잘 만져주지도 않았고 자려고 침대에 누우면 자기도 같이 자고 싶은 눈빛을 보냈지만 단호하게 거절했다. 꼬리를 내리고 뒤돌아 터덜터덜 방을 나가던 뒷모습을 생각하면 아직도 미안하다.
같이 걸음을 맞춰 며칠 걷고 옆에 앉아 있다보니 걱정했던것과 달리 매일매일 은비 상태가 안정되어 가는게 티가 났다. 그 다음 주말 아이패드에 cctv 어플을 구동해서 은비를 관찰하며 약 30분간 집을 비워보았다. 집을 나서고 난 후 현관에서 서성이던 녀석은 1분도 지나지 않아 벤치 위에 올라가 똬리를 틀고 앉아 쉬고 있었다. 불안한 기색은 보이지 않았다. 세나개 단골 고객들이 보이는 집안을 이리저리 돌아다닌다거나 하울링도 없었다. '이렇게나 빨리? 은비가 명견인것인가 아니면 혹시 내가 사실은 천재 훈련사의 재능을 갖고있던 것인가?' (전자가 유력하다.) 이정도면 해볼만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로 돌아오는 월요일, 은비 두고 출근하기에 도전해보기로 결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