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비대장맞이2
부모님 집에서 독립한 지 이미 3년이 넘었지만, 갑자기 내가 책임져야 하는 존재가 올 시간이 10일 밖에 남지 않았다고 생각하니 조바심이 났다. 입대가 얼마 남지 않은 예비 군인처럼 남은 시간을 최대한 알차게 흥청망청 보내야겠다는 결심이 들었다.
우선 강아지에게 필수적인 물품과 부수적인 물품을(사료, 간식, 배변패드 등) 주변 견주들의 추천을 참고해서 주문을 완료했다. 강아지가 지낼 개 집의 경우 1년여 전 지난 회사에서 퇴사할 때 개주인의 꿈을 알고 있던 동기들이 염원을 담아 꽤나 값이 나가는 개 집을 이미 선물해줘서 부모님 집 어딘가 보관하고 있었기 때문에 다행히(?) 걱정을 덜었다. (나보다 비합리적인 소비를 즐기는 동기들이었다.) 강아지는 인간이 원하는대로 서식지를 정하지 않는다는것은 이후 금방 깨달을 수 있었지만...일단 내 좁은 집에 옮겨두었다.
개물품을 주문 완료한 후 송별회를 하듯 친구들과 약속을 빼곡히 잡았다. 술 마시는것은 바로 다음날 후회하면서도 어쩌면 그렇게 재밌는지...앞으로 지금처럼 자유롭게 망나니짓을 못하겠지 하며 지인들과 술잔을 기울였다. 그들은 지금까지 내가 말로만 늘어놓던 개와 함께하는 삶을 드디어 이루는게 속이 시웠했던지 모두 응원해 주었다.
12월 1일 토요일, 전날 금요일 마지막으로 호쾌하게 벌인 술자리의 숙취로 허덕이고 있다가 은비 이동봉사자분의 연락을 받고 잠옷 차림으로 골목으로 나가 차 안쪽에 있던 은비를 얼떨결에 안고 집으로 들어왔다. 사진으로만 보던 강아지를 실물로 보니 연예인 실물을 본것처럼 어색하고 부끄러웠다. 강아지를 온전히 혼자 돌보는 것은 처음이라 어색해서 거리를 두고(집이 워낙 작아 큰 거리는 아니었지만) 앉아 있는데, 새 환경이 어색한 은비가 현관을 서성이다가 마침 앞에 깔아둔 배변패드에 딱 맞춰 쉬를 하는것을 보고 뿌듯함과 자신감이 벅차올랐다. '역시 난 운이 좋아. 세나개(애청자임)에 나오는 강아지는 역시 남의 개였을 뿐이라고!' 지금 생각하면 참으로 경솔했던 판단이었다는 생각이 들 뿐이다.
그날 저녁 마침 개를 몇 마리 키우고 유기견을 몇년 째 임시보호하고 있는 친구가 방문했고, 은비를 보더니 이렇게 얌전한 개가 없다고, 너무 놀라운 수준이라는 평을 했다. 실제로 은비는 그 날 나를 만나서 우리집에 들어오고, 내 친구 둘을 만나서 시간을 보내는 동안 단 한번도 짖지 않았다. 미리 걱정했던 것보다 너무 순조롭게 흘러가는 상황에 동물 보호 단체에서 홍보문구에 으레 들어가듯이 방석 하나만 내어주기만 하면 될것 같아 보여서 마음이 많이 편해졌다. 자려고 침대방으로 들어가니 은비가 불쌍한 표정으로 아래서 바라봤지만, 언젠가 입양을 보내야 한다는 전제로 깊이 정들이지 않고 거리를 두어야 한다 생각했기 때문에 단호한 표정으로 거절의 의사를 밝혔더니 혼자 터덜터덜 집으로 들어갔다.
그렇게 하룻밤을 보내고, 일요일이었던 다음날 잠시 근처 가게에 다녀오려 집을 나가려는데 은비가 불안한 표정으로 낑낑대기 시작했다. 괜찮겠지 하고 무시하고 현관문을 닫고 나가자마자 그 작은 몸에서 (당시 고작 6.2키로) 나오는게 믿기 어려울 정도로 왈왈 짖기 시작했다. 곧 그치겠지 하는 생각으로 1층 건물 입구까지 나서는데 귀에 꽂히는 비명에 가까운 은비 목소리...'나 여기 너무 새롭고 무서운데! 그래도 사람들 있어서 간신히 참고 있었는데! 당신 지금 나만 두고 어디 가는거야!!' 하는 말이 들리는 듯 했다. 결국 외출을 포기하고 집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당장 다음날 회사에 출근해서 은비는 9시간 넘게 혼자 있어야 하는데...나 이제 어떡하지...? 앞이 깜깜해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