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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우석 소장 Jan 13. 2019

아빠에게는 원래 딸이 어렵다

아빠가 못난 탓이 아니라는 말씀

이제는 이전보다 아빠의 육아 참여도가 많이 높아진 것이 사실이지만, 맞벌이 여부와 관계없이 주 양육자는 변함없이 엄마인 경우가 많다. 여전히 ‘육아는 엄마가 하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다!’라는 생각을 하는 아빠들도 있겠지만, 마음은 굴뚝 같아도 정작 육아를 맡는 것에 자신이 없는 아빠들이 그만큼 많기 때문이다. 특히 아빠의 관점에서 육아에 관한 부담을 느끼는 경우는 아들보다 딸을 키우는 아빠에게서 훨씬 더 많이 나타나게 된다.    

 

퇴근하고 집에 돌아오면 설거지나 청소 등을 제가 하고
딸아이는 아내가 돌보는 편입니다.
가끔 아내가 씻어야 한다거나 급한 일이 생겼을 때
어쩔 수 없이 저 혼자 육아를 맡아야 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때마다 예민한 딸 아이와
어떻게 놀아줘야 할지를 몰라 난감할 때가 많습니다.  


아빠의 관점에서 딸과 함께 즐겁게 시간을 보내기란 생각보다 쉽지 않은 일이다. 아빠에게 가장 자신 있는 ‘몸으로 놀아주는 놀이’가 힘 조절 실패로 자칫 과격해지면 딸은 10분도 안 되어 울음을 터뜨리기 쉽다. 물론 아이를 울리지 않고 노는 방법으로는 딸의 성향에 안성맞춤인 ‘인형 놀이’라는 게 있다. 하지만 문제는 남자의 관점에서 정말 지루하기 짝이 없는 인형 놀이를 억지로 하다 보면 이번엔 아빠가 울고 싶어진다는 점이다. 친구 같은 아빠의 마인드로 기분 좋게 시작한 놀이가 아빠를 만만하게 보는 딸의 태도로 인해 종종 무서운 훈육으로 끝나버리고 마는 때도 있다. 이럴 땐 정말 딸에게 계속 ‘친구 같은 아빠’가 되어야 하는 것이 맞는 건지, 아니면 ‘권위 있는 아빠’가 되어야 하는 것이 맞는 건지 헷갈리기 시작하면서 양육 방향에 대한 깊은 고민에 빠지게 되기도 한다.      

하지만 무엇보다 아빠가 딸 육아에 있어 어려움을 가장 크게 느끼게 되는 때는, 바로 ‘딸의 반응을 도무지 이해하기 어려울 때’다. 특유의 섬세함을 가졌기 때문에 상황에 따라 복잡하게 나타나는 딸의 말과 행동이 아빠로서는 감당하기가 힘든 것이다. 얼핏 생각하면 아빠는 남성이기 때문에 여성의 특성을 가진 딸의 이런 감정적인 반응을 받아들이기 힘든 것이 어쩌면 당연한 결과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 수 있다. 하지만, 뇌과학자들의 말에 따르면, 뇌의 측면에서 볼 때 오히려 여성보다 남성이 더 감정적인 존재라고 한다.      


“사내자식은 아무 때나 우는 거 아냐!”     


하지만 아빠는 아들로 태어나 자라는 동안 줄곧 ‘사내자식’이라는 단어가 가진 무게에 그런 감성을 억압당하며 자라왔다. 원래 감정에 민감한 존재인 아빠는 그런 본능을 숨기는 것에 학습되어 버린 나머지, 이제 심지어           

자신의 감정을 읽는 것마저 서툴러지게 되었다. 그리고 그런 아빠에게 세상 달콤한 솜사탕 같다가도 순간 날카로운 가시를 가진 장미처럼 변하고 마는, 감정변화를 예측하기 힘든 ‘딸’이라는 존재 자체에 어떻게 다가가야 하는지 너무 조심스럽고 어려울 수밖에 없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아들 양육법에 관한 서적은 많다. 그렇다는 건, 그만큼 아들 키우는 것이 어렵다고 느끼는 부모(정확히 얘기하자면 엄마)가 많다는 의미일 것이다. 많은 사람은 딸을 키운다고 하면 ‘딸은 키우기도 편하고 얼마나 좋으냐’라고 말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그것은 어쩌면 이제까지 육아에 있어서 주 양육자 역할을 맡았던 엄마 관점의 얘기일지도 모른다. 아이를 키우는 것에 부모 공동의 역할이 강조되는 요즘, 딸을 키워야 하는 아빠로서는 이런 모든 상황이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다들 키우기 편하다고 하는데, 아빠에게는 정작 어렵게 느껴지거나 뭐 하나라도 자칫 망쳐버리게 된다면 그땐 딸바보가 아니라, ‘그냥 바보’가 되어버리고 말 것이니 말이다. 얼마 전에 ‘밥블레스유’라는 TV 프로에 출연한 박진영 씨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전혀 다른 고민이 온 거야. 내 인생에. 아기가……. 생기니까.
솔직히 남자아이면 좀 자신 있어.
'야, 하지 마. 하지 말라고 했잖아 인마. 울지마, 남자가' 이렇게 탁탁탁!
그런데 여자면…… 딸이면…… 아빠가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
무섭게 혼을 내야 하나?

   

이런 반응이 나올 수 있는 이유는 딸 아빠의 고민이 이미 같은 여성의 특성을 가진 엄마 관점에서의 고민과는 시작점부터 다르기 때문이다. 아들의 관점에서 어머니와의 갈등을 경험했고, 사랑해서 결혼해 벌써 몇 년째 함께 사는 여자인 엄마마저도 온전히 파악되지 않아 아직도 종종 어리둥절한 ‘아들로 태어나 평생 남자인 아빠’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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