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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마 장윤석 Sep 11. 2021

대학에서의 녹색전환

대학이 기후위기를 만났을 때

대학이 기후위기를 만났을 때      

많은 것이 변하고 있다. 말들도 변하고 있다. 처음에는 기후변화라고 무심히 썼는데, 어느새 기후위기라고 부르더니, 심지어는 생태학살*이라고도 불리고 있다. 변화가 위기로 불릴 때 그것은 더 이상 외부와 남 일이 아니고 우리와 내가 처한 일이 된다. 대학이 기후위기를 만나게 된 이유다.       

얼마 전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는 제6차 평가보고서의 제1실무그룹 보고서를 내놓았다. 요지는 지구 기온이 1.1도가 올랐으며 티핑 포인트*라는 1.5도 도달 시점이 예전보다 10년 더 앞당겨졌다는 것이다. 우리에게 남은 시간은 점점 줄어 이제는 6년 남짓도 되지 않는다. 절벽으로 질주하는 70억명이 탄 기차의 브레이크를 잡는 모습을 생각하면  감이 오는데, 이대로 더 가면 멈추지 못한다.       

기후위기에 연상되는 폭염, 산불, 가뭄, 홍수 등의 자연재해는 하나의 단면일 뿐이다. 자연이 무너질 때 그 안에 묻어든 사회와 경제도 속수무책으로 무너진다. 이대로라면 일 이십여 년 안에 거주지의 많은 부분이 불모지가 되거나 잠겨서 기후난민이 억 명 단위로 속출하는 시나리오가 현실이 된다. 이렇게 될 때 식량위기부터 경제·금융위기까지 우리가 알고 살던 시스템은 붕괴에 근접하고 사회는 해체 위기에 놓인다. 이런 시나리오가 현실적인 전망이라면 어떻게 해야할까.     

계속 ‘언젠가 저 멀리’를 생각하게 되지만, 멀리 갈 것 없다. 이미 우리는 이 년째 듣도 보도 못한 펜데믹 가운데에서 적응하지만 적응할 수 없는 기괴한 일상을 살고 있다. 코로나가 기후위기의 결과이자 과정이라면 믿겠는가. 그러니 ‘지금 여기’의 문제라는 것을 전제하고 나서야 다음 말들이 가능하다. 우리가 살던 세계가 현재 어느 위치에 있는지 ‘감’잡고 갈 필요가 있다.      

한국과 괴리     

기후위기 한 가운데 한국이 있다. 한국의 기후위기 대응은 화했다. 2020년 6월 세계 최초로 226개 기초지자체가 전부 기후위기 비상선언을 했다. 국회도 잇따라 결의안을 채택했다. 2020년 7월 정부의 그린 뉴딜 정책이 등장하고, 10월 대통령의 탄소중립 선언이 나온 후, 한 해가 지난 지금은 민관 거버넌스인 탄소중립위원회와 기후위기 대응 기본법 제정을 앞두고 있다.      

그러나 화려함 이면에 실상이 있다. 한국의 온실가스 배출 총량과 1인당 배출량이 최상위권에 드는 것은 잘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얼마 전 7월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에서 선진국 지위를 획득했다지만, 기후 대응에서는 뒤떨어져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에 제출한 2030 온실가스 감축목표(NDC)는 다시 써오라고 퇴짜를 맞았다. 5월 *P4G 서울 정상회의에서 채택한 서울 선언문도 G7 국가들에게 거부당했다. 한국은 역사상 단 한 번도 계획적으로 온실가스를 감축해 본 적이 없는데, 앞으로도 마찬가지일 듯 하다. 기후 기본법의 제명은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탄소중립 녹색성장 기본법’이 되어 4대강 공사와 같은 토건·개발의 성장 관행을 이어가고, 탄소중립위원회의 탄소중립 시나리오는 3안 중 1,2안이 탄소중립을 포기했다. 한국이 기후악당 국가로 불리는 맥락을 잘 살펴야 한다. 탄소중립 선언과 동시에 석탄발전소를 새로 짓고 수출까지 하고 있는 나라다.      

어떤 괴리가 자리잡고 있다. 세계 여론 기관 WIN의 조사에 따르면 한국의 기후변화 인식 수준은 ‘기후변화는 인류에게 심각한 위협이다’는 문항에 95%의 응답자가 그렇다고 답하며 최상위권을 기록했다. 이상한 지점은 다음에 있다. ‘기후변화를 막기에는 이미 너무 늦었다’는 문항에 66%가 그렇다고 답했다. 이는 세계 2위로 세계 평균치를 가뿐히 웃돈다. 정리하자면 이 나라 사람들은 세계에서 가장 기후변화 인식 수준이 높고 그 심각함도 잘 알고 있지만, 기후변화를 막기에는 너무 늦었다고 비관하고 있다. 어떻게 된 것일까.      

대학의 실패와 변화들     


생각하면 모두가 기후변화가 무엇인지는 알고 있다. 그리고 심각하다는 것 역시도 알고 있다. 문제는 다가올 암울한 세상에 대해서 어찌할 도리가 없다는 것이다. 모든 게 바뀌어야 하지만 별로 바뀐 것도 없고, 바뀔 것 같지도 않다. 변화의 가능성을 얼마나 믿고, 변화를 위한 실천을 어떻게 수행하는지가 교육의 역할일텐데, 단정하자면 실패하고 말았다.      

우리는 마치 집에 불이 났는데 경제학개론 수업을 듣고 있다. 불을 끄는 법, 화재를 예방하는 법, 화마가 지나가고 난 뒤 집을 짓는 법은 배우지 않고 시장의 수요 공급 원리 같이 이 위기를 만들어낸 기제들에 대해서 소상히 시험을 보고 있다. 적어도 기후위기 앞에서는 낡아버린 교육과 학문들은 다시 태어나야 하지 않을까. 기후위기 시대의 사회학, 경제학과 같이 모든 학문이 실패를 인정하고 재조직 되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이미 변화는 시작의 물결 속에 있다. 경제학과에서 목소리가 터져나온 것은 금융위기 이후 2011년 월가를 차지하라(Occupy wall street) 운동부터다. 기후위기를 초래한 기제가 신고전파 경제학임을 비판한 학생들이 ‘경제학의 재사유(Rethinking Economics)’ 단체를 만들어서, 현재의 문제와 위기들에 적극적인 대응 논리를 펴는 경제학 학문체계를 재편했다. 이들의 시도는 현재 세계 유수의 대학의 경제학과 커리큘럼에 ‘기후변화 경제학’, ‘생태 경제학’등의 과목을 만들고 관련 연구기관을 만드는데까지 나아갔다. 다른 예로는, 옥스퍼드대 의과대학 의대생들은 기후위기 관련 수업을 정규 과정에 포함해줄 것을 요구하며 대학에 기후위기 대응 성적 평가 지표 공개를 요청했다. 이들은 극단적인 이상기후가 늘어나면서 생기는 외상,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우울증 등 정신건강 문제를 언급하며 교육과정에 기후위기가 인간 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다루기를 요구한다. 곳곳에서 크고 작은 변화의 물결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기후위기 비상선언은 그 시작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미 선언한 대학의 수가 2019년에 만 개를 넘었다. 이후 대학의 주요 평가 지표에 △기후변화 대응 △해양생태계 보전 △청정에너지 등 기후와 환경에 관한 항목이 포함돼거나(Time Higher Education), 그린 캠퍼스, 캠퍼스 탄소중립 등의 시도가 이루어지고 있다. 인도는 250여개의 대학이 'Non-Zero, Net Zero' 이니셔티브를 만들어 100% 녹색 전기 사용, 캠퍼스 내 내연기관차 금지, 구내에 폐기물 처리장 설치 등을 골자로 캠퍼스 탄소중립을 위한 로드맵을 마련하고 있다. 이다. 한국에서도 한림대가 최초로 학부단위에 글로벌융합대학 기후변화융합전공을 신설했고, 경북대도 최초로 2040 탄소중립 캠퍼스를 선언한 바 있다.     

성공회대의 기후위기 대응     


성공회대는 2019년 10월에 국내 첫 기후위기비상선언을 한 대학이다. 이 선언의 맥락을 이어 몇 단위가 성공회대 기후 연합을 제안한 바 있다. 성공회대 안에 있는 많은 물결들은 기후위기 시대에 더 큰 잠재력을 가지고 있기에, 우리는 공동의 위기에 대응함으로써 이제까지와는 다른 가능성을 만날 수 있다는 취지였다. 기후위기를 적녹보라 공동의 문제로 생각하고 함께 연대체를 꾸려 여러 전환 모색을 제안했지만, 야속하게도 코로나에 의해 무마되고 2년이라는 시간이 흘러갔다. 그 때의 구상은 오랜 숙원으로 남아있다.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캠퍼스 탄소중립*은 좋은 목표이고, 나는 이것이 대학을 무해한 공간으로 탈바꿈시키는 시도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탄소중립은 기후위기 대응의 최소 전제이지 전부가 아니다. 어느 사회든 마법처럼 바뀌고 재조직되지 않는다. 사회학에서는 사회적 응집력이라는 말로 사회의 포용성과 신뢰로 이뤄진 건강을 측정한다. 사회적 응집력이 없는 공간, 즉 상호 신뢰와 협치를 만들어내지 못한 공간은 기후위기 대응에 힘을 쓰지 못한다. 곁을 못 챙기는 이가 전체를 모색할 수 없듯, 사회적 건강을 챙기지 못하는 공간이 자연과 지구와 미래를 챙길 수 있을 리 없다. 지금 우리의 시대의 결은 몸살 앓는 지구와, 혼란에 찬 한국과, 이 곳 아담한 성공회대란 공간까지 크기 차이만 있을 뿐 엇비슷하다.      

성공회대는 앞으로 어떤 길을 선택하고 모아갈 수 있을까. 기후위기에 대해서 감을 잡고,  전환의 길을 걸을 수 있을까. 한국 사회든 학생 사회든 변화를 위해서는 그 공간을 고민하고 옳게 다스리는 정치, 자치가 핵심이겠다. 학생자치가 바로서면서 전환을 위한 작업들이 피어났으면 좋겠다. 대학이 기후위기를 만났을 때, 녹색전환이 시작되겠다.           

글 | 장윤석 녹색전환연구소 연구원     


필자소개 : 학교 도서관에서 책읽을 때가 좋았다. 지금은 녹색전환연구소와 녹색당에서 일하고 있다. 성공회대 녹색당에서 지기 노릇을 하며 매달 녹색평론을 읽고 있다. 함께하고자 한다면 연락 주시라.     

 

덧붙임 : 기후위기 대응은 온실가스 감축의 문제만일 수 없다. 타인 혹은 타자에 시선과 염치가 얼마나 닿을 수 있는지에 따라 공간 혹은 공동체의 위기 대응 능력이 생긴다. 사회적 건강을 챙기지 못하는 공간이 자연과 지구와 미래를 챙길 수 있을 리가 없다. 공동체의 붕괴를 방관할 때, 그 공간은 어떤 곳이 되어갈까. 모두의 화장실 하나 받아들이지 못하는 공간에 전환의 자격은 없다.     


*생태학살(Ecocide) : 환경을 파괴하는 시도들은 이전까지 심각하게 다뤄진 적이 없다. 기후위기와 생태위기의 정도가 심해지며, 기존의 석탄발전소 같은 ‘사업’이나 무분별한 ‘개발’ 등지를 법의 심판대에 올리자는 움직임이 빚어지고 있다. 국제형사재판소(ICC)에서 로마 협약에 따라 이러한 녹색 범죄를 국제적인 반인도적 범죄의 다섯 번째로 심의하려고 하고 있다.      

*티핑포인트(Tipping point) : 지구 기온의 임계점으로, 티핑포인트를 넘어서면, 복합적이고 극단적인 기후변화가 빠르게 진행되어 걷잡을 수가 없다.      

*P4G(Partnering for Green Growth and the Global Goals 2030) : 이명박 정부 때 녹색성장을 화두로 제안된 정상회담으로, 한국 정부는 일주일 간 행사에서 호언장담을 일삼았으나 국제사회의 반응은 초라했다. 탄소중립위원회도 이 때에 발족했으나, 부족한 준비와 시간으로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체계 구성과 사회 목표 설정에 난항을 겪고 있다.


*탄소중립 : 어떤 공간의 온실가스 배출량을 0으로 만드는 것을 의미한다. 흡수량을 포함하여 계산하기에 요새는 기후중립이 대두되고 있다.      


덧. 실은 하고 싶은 말이 많았는데 다 하지 못하였다. 언젠가 학교에 돌아간다면 하고 싶은 것이 있다.

https://www.skhumedia.co.kr/?p=6583#dearflip-df_6579/8/

* 본 글은 2021.9 성공회대학보 9월호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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