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노마드봉 Jul 05. 2022

클럽에선 인싸


일찍 숙소에 들어가 휴식 후 여행자의 아이템으로 나름 최선(?)을 다해 준비하고 숙소를 나왔다. 뉴욕에서 클럽이라니. 전혀 생각지 못한 일정이었지만 왠지 신이 났다. 캡처해둔 구글 지도의 위치를 보고 서클에 다다랐다. 어두 컴컴한 골목 속에 클럽의 위치를 알리는 네온사인이 화려하게 빛나고 있었고 그 앞에는 많은 사람들이 입장을 기다리며 줄을 서고 있었다. 할리우드 영화의 클럽씬에서 보던 광경이 내 눈앞에 펼쳐졌다. 나도 영화 속 촬영장에 있는 것 같았다. 여행을 하는 동안에는 한 번도 보지 못 했던 한국인들과 아시아 계열의 현지인들이 많이 있었다.


입구에서는 외모 심사(?)를 엄청 까다롭게 했다. 가드가 신분증을 검사하면서 위아래로 훑어보며 외모를 판가름했다. 그래서 줄이 어마어마하게 길었던 것이다. 내 차례가 되었다. 내 여권을 보고 나를 스캐닝하던 가드는 눈을 찌푸렸다. 나의 신발이 문제였는데 캐주얼한 신발을 신었다는 게 문제였다. 그렇게 입장이 거부될뻔했다. 이렇게 집에 돌아가는가 싶었는데, 잠깐 고민한 가드는 여행객이니까 봐준다며 들여보내 줬다.


클럽 내부에 들어가니 쿵쿵쿵 커다란 음악소리가 날 흥분시켰다. 그리고 드레스코드를 까다롭게 한다는 소문답게 멋진 남녀들이 있으니 너무 기대되었다. 물품보관소를 지나 스테이지로 들어갔는데 나의 흥분을 가라앉히는 풍경이 펼쳐졌다. 이른 시간에 들어와서 그런지 사람들이 별로 없었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벽면에 있는 바Bar에서 지인들끼리 모여서 술을 먹고 있었다. 가운데 넓은 스테이지는 휑하니 비어있었는데 스테이지가 비어있으니 좀처럼 분위기가 살지 않았다. 한국에서는 이 시간에 알바들이 스테이지에서 춤을 추고 있는데,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나는 혼자 바에서 맥주를 홀짝홀짝 마시며 사람들을 구경했다. 다들 즐겁게 이야기를 하며 놀고 있었지만 DJ가 틀어주는 신나는 음악은 외면을 했다. 그렇게 지루한 시간이 계속 지나갔다. 이젠 사람 구경도 점점 지루해졌다. 바에는 점점 사람들이 늘어났지만 여전히 스테이지는 텅 비어있었다.  이러다 그냥 이렇게 끝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아니 다들 지인들하고 왔으면 같이 나와서 춤을 추면 안 되나? 정말 답답했다.


비록 그동안 뉴욕에서 쭈구리였지만 이 순간만큼은 한국에서의 화려한 춤 실력을 보여주기로 했다. 놀 줄 모르는 뉴요커들에게 어떻게 노는지 보여주겠다는 결심을 하며 심호흡을 하고 용기를 불어넣어 줄 병맥주를 한 손에 들고 스테이지 정가운데로 갔다. 가운데 서는 순간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졌다. 내가 여기서 젤 힙한 사람이다는 느낌으로 리듬에 고개를 끄떡이며 리듬을 탔다. 조금씩 흥에 겨워 춤에 힘이 들어가게 되자 조금씩 사람들이 스테이지에 모여들기 시작했다. 역시 스타트의 문제였다.  삽시간에 사람들이 스테이지로 모여들었고, 내가 클럽 분위기를 만들어 냈다.


놀고 있다가 갑자기 여기 온 본연의 목적이 생각이 났다. “맞다 현수!” 계속 사람들을 구경했는데 못 본 것을 보니 아직 안 온 듯했다. 못 만나면 아쉽지만 뉴욕에서 클럽을 경험해본 것에 만족하기로 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수많은 인파 사이에서 현수를 마주쳤다. 현수를 보자 반갑게 다가가 인사를 했는데, 현수의 동공은 흔들리고 있었다. 현수는 “이 녀석 진짜 왔네?”란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이제 몸도 풀었겠다, 나는 한국에서 하던 것처럼 천연덕스럽게 현수 모임 자리에 끼어버렸다. 현수와 그의 지인들은 서클의 스테이지 뒤쪽 부스에 자리를 잡았는데 뉴욕을 비롯해 미국에서 유학을 하고 있는 한국인 친구들이 있었다. 대부분 20대 초반의 어린 친구들이었는데 고맙게도 눈치 없이 낀 나를 환대해줬다. 대외활동하면서 만난 친구처럼 편안하고 신나게 놀았다. 


새벽 2시쯤 함께 놀던 남자 동생과 귀가를 위해 클럽을 빠져나왔다. 가는 방향이 비슷해 같이 새벽 지하철을 이용했는데 화려한 클럽과 너무 대비되는 스산하고 무서운 분위기에 술이 깰 것 같았다. 칸마다 소수의 흑인들이 앉아 있었고 흑인을 제외한 인종은 우리 밖에 없었다. 다들 평온하고 일상적인 얼굴이었지만 나는 조커가 나타나 총살이라도 할 것 같은 분위기라 긴장을 늦출 수 없었다. 역에서 숙소까지 가는 길은 가로등 하나 없고 컴컴한지... 이렇게 그날을 추억하며 글을 쓸 수 있음에 감사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