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이스 게스트 하우스에는 나 말고 프랑스 녀석이 있었다. 철벽인지 원래 성격인지는 모르겠지만 말을 걸면 티키타카도 안되고 풍기는 분위기도 무뚝뚝하기 그지없었다. 당시 친화력 갑인 나도 뚫을 수 없는 엄청나게 단단한 철벽이었다. 2주를 같이 생활을 했었는데 이름도 기억이 안 날 정도다.
그나마 기억나는 그 친구의 정보는 나이와 뉴욕에 온 이유다. 이 프랑스 친구는 19~20살의 이제 막 성년이 된 사회 새내기였는데 회사의 인턴 자격으로 뉴욕에 오게 되었다고 했다. 3개월 정도 머무르는 것이라 따로 방을 구하지 않고 게스트 하우스에서 출퇴근을 했다. 성인이 되자마자 낯선 해외에서 회사를 다니면서 해외 생활을 하는 그 친구가 부러웠는데 당사자는 그렇지 않은 것 같았다.
그 친구는 아침에 일어나서 출근을 하고 퇴근하고 들어오면 침대에 누워서 스마트폰과 노트북만 했다. 밖에 전혀 나가질 않았고, 밥도 먹는지 궁금했다. 특이 한 점은 매일 밤에 가족들과 영상 통화를 했다. 그 친구의 영상 통화 화면을 보면 온 가족이 카메라에 앞에 앉아 있었다. 할 얘기가 없을 것 같은데 매일 꼬박 1시간 정도의 영상 통화를 했고, 가족과 통화가 끝나면 애인과 영상 통화를 또 1시간가량 했다.
정말 나에게는 말도 안 되는 생활 패턴이었다. 놀기 바쁠 텐데 숙소에서 영상통화만 하다니. 어쩌면 영상통화 때문에 밖에 못 나가나란 생각이 들었다. 친해지고 싶은 마음에 루카스가 줬던 맥주를 같이 마시자고 제안했더니 거절을 했다. 이유는 뉴욕에서는 자기 나이가 미성년자라서 술을 마실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물론 낯을 가리고 나랑 마시기 싫어서 둘러댄 말이겠지만, 당시에는 나는 유럽인들은 질서를 잘 지킨다는 의식 때문인지 그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였다.
뉴욕 맨해튼은 서울의 도로만큼이나 커다란 도로와 1~2차선의 좁은 도로들이 혈관처럼 촘촘히 뻗어 있다. 뉴욕의 상징인 노랑 택시들은 이 골목들도 쌩쌩 달리곤 하는데 서울의 주황 택시들과 다르지 않았다.
“뉴요커와 관광객을 구분하는 것 중 하나가 뭔지 알아?”
함께 맨해튼 거리를 걷던 중 루이스는 나에게 질문을 했다. 고개를 절레절레 하자 루이스는 특유의 짓궂은 표정으로 알려줬다.
“횡단보도 신호를 기다리면 관광객, 무단횡단을 하면 뉴요커야”
뉴요커가 무단횡단을 한다고? 정말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생각했다. 룸메가 증명하듯 유럽 사람들이야 규칙을 잘 지킨다고 생각했지만 선진국인 미국 사람들은 잘 지킬 것이라고 생각했다. 루이스가 잘 못 생각한 게 아닐까라고 생각하며 대수롭지 않게 넘어갔다.
“코끼리를 생각하지 마!”라고 하면 코끼리가 생각나는 것처럼 루이스의 말을 듣고 나니 좁은 1차선 도로에 설치된 횡단보도와 신호등을 유심히 보게 되었다. 아니나 다를까, 정말 신호를 무시하며 길을 건너는 사람들이 많았다. 한 흑인은 택시가 엄청난 속도로 쌩쌩 달려와도 그 사이를 피하며 도로를 건넜는데, 정말 내 눈앞에서 사고가 나는 줄 알았다. 사람이 길을 건너도 속도를 안 줄이는 택시도 놀라웠고, 투우사처럼 달려오는 차들을 요리조리 피하는 뉴요커를 보면서 참 스릴 넘치기도 하고, 다른 의미로 자유로운 나라라는 생각이 들었다.
뉴욕 여행을 떠나기 위해 타임스퀘어에 출근한 나는 횡단보도에서 신호를 기다는 사람들을 목격했다. 유럽 사람들을 비롯해 다양한 인종의 사람들도 있었다.
“훗. 관광객이군”
난 그들을 비웃으며 신호를 무시한 채 길을 건넜다. 미개한 사람으로 쳐다보는 유럽 사람들의 눈초리가 느껴졌다. 하지만 난 개의치 않았다. 왜냐면 난 뉴요커가 되고 싶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