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간 의의 필라델피아와 워싱턴 여행을 마치고 다시 뉴욕으로 돌아왔다. 루이스의 게스트 하우스를 가볼까 생각도 했지만, 새로운 곳에 묵어보고 싶어서 루이스에겐 미안하지만 다른 게스트하우스를 예약했다. 새로 묵은 숙소는 호스텔 닷컴에서 꽤 평점이 괜찮았던 곳이었고, 기업이 전문적으로 운영하는 듯한 숙소였다. 내부 인테리어도 네온사인을 활용해 펜시 하게 구성했고, 기구들도 깔끔하니 좋았다. 특히 도미토리 방마다 화장실과 샤워시설이 있어서 너무 편리했다.
나는 여기서 3일 정도 머물렀는데 하루 묶묵고 떠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어서 사람을 만날 일이 없었다. 그러다가 브라질 사진작가와 로비에서 알게 되어 안면을 트게 되었다. 같이 식사를 하기도 했는데 이 친구는 매일 저녁에 숙소에서 만나면 오늘 먹은 식사와 일과 사진을 보여주며 나에게 이야기를 했다. 뉴욕에 머무르면서 신기했던 건 누구에게나 자기 이야기를 엄청 많이 한다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친한 사람 말고는 일상에 대해선 이야기를 잘 안 하는데 이곳에선 소소한 이야기도를 낯선 사람인 나에게도 이야기한다. 금방 친해지기도 하고 이야기들이 재밌었지 때론 피곤하기도 했다.
같은 방에서 묵는 젊은 여행자들 사이에서 눈에 띄는 사람이 있었는데 하얀 피부의 아저씨였다. 그의 짐은 단출했고 매일 검은색 면바지에 작업복 같은 점퍼를 입고 아침에 나갔다 저녁에 들어왔다. 어떤 여행을 하는 사람인지 궁금해서 그에게 말을 걸었다. 그는 프랑스 사람이었고 업무차 뉴욕에 왔다고 했다. 그도 루이스 게스트 하우스에서 만난 룸메처럼 방을 렌트하기 애매해서 게스트 하우스에서 묵는다고 했다.
그는 확실히 여행자의 느낌은 아녔다. 얼굴에선 어느 아버지들과 마찬가지로 왠지 모를 가장의 무게가 느껴졌다. 무슨 일을 하는 분인지는 몰랐지만 전 룸메와 다르게 프로페셔널한 느낌이 풍겼다. 그의 침대는 여행으로 즐겁고 들떠 보이는 다른 침대들과 다르게 점잖고 정돈된 모습이었다. 그런 작은 모습 하나하나가 우리와 다른 어른임을 확실하게 보여줬다. 하지만 궁금했다. 분명 회사에서 숙소 지원을 해줄 텐데 왜 편안한 호텔이 아닌 불편한 게스트 하우스에 머무는지 말이다. 넓고 푹신한 침대가 아닌 도미토리 침대를 써야 하고 자식벌 되는 아이들 사이에서 편치 않은 이곳에 왜 머무는지 그가 의아했다.
조지 클루니 주연의 “Up in the air”는 내가 좋아하는 영화 중 하나다. 기술이 발전하지만 기술들이 전달할 수 없는 사람만의 따듯한 능력을 이야기해서 좋았고, 무엇보다도 비행기를 타며 전국을 돌아다니는 조지 클루니의 모습이 너무 멋져 보였다. 그래서 타지에서 일하는 그 아저씨가 영화 속 조지 클루니 같아서 멋지고 근사해 보였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혼자 출장을 다녀보니 그게 어린 나이의 치기라는 걸 알게 되었다.
출장은 여행과 달랐다. 여행처럼 시간을 자유롭게 쓸 수도 없다. 업무 때문에 몸은 피곤했고, 자유 시간은 부족했다. 그러다 보니 마음의 여유도 없었고 여행처럼 사람을 사귈 시간도 없고 그럴 여건도 되지 않았다. 여행처럼 출장 지역에 인연을 만들어 보려고 시도해보기도 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출장지에선 인연이 허락되지 않았다. 그래서 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숙소는 너무 고독했고, 맥주 한 캔을 마시고 잠들기 급급했다.
어쩌면 그 아저씨는 퇴근 후 밀려올 고독함을 조금이라도 이겨내려고 시끌벅적한 게스트하우스를 선택한 건 아닐까? 게스트하우스엔 좋은 어메니티와 편안한 매트리스는 없지만 따듯한 사람들이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