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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마드봉 May 11. 2022

여행 속 여행



루이스가 나를 찾아와 “내일 한국 여자 손님이 올 거야”라고 말해줬다. 나는 그의 말에 갸우뚱했다. 왜냐하면 이곳은 한국인들이 좋아할 숙소가 아니기 때문이다.  여긴 맨해튼과 많이 떨어진 퀸즈에다가 동네도 이쁘지 않고 시설도 여자들의 취향과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이런 숙소에 한국인이, 그것도 여성분이 온다니 반가운 마음과 동시에 어떤 사람일지 너무 궁금했다.


다음날 여행 일정을 소화하고 숙소에 돌아오니 그 손님이 와 있었다. 그녀는 자기 키만 한 커다란 배낭을 등에 짊어지고 있었다. 뉴욕에서 처음 만난 한국인이었다.  “안녕하세요!” 영어를 못해 하루 종일 강제 묵언수행을 하던 나날이어서 한국어를 잊어 먹을 줄 알았는데 자연스럽게 인사가 나왔다.


루이스의 게스트하우스에 온 그녀의 이름은 새미였다. 새미는 나랑 동갑인 친구였는데 세계일주를 하던 중이었다. 남미 여행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가기 전 세계일주의 마지막 여행지로 뉴욕을 선택했다고 한다. 새미는 남미 여행의 여파인지 온몸이 햇볕에 새까맣개 그을렸는데 1월의 차가운 뉴욕과 대비되는 모습이 매우 강렬했다. 그녀는 차분하지만 밝은 에너지를 뿜어내는 친구였고 진취적이면서 굉장히 똑똑한 친구였다. 웃는 모습이 참 귀여웠는데 모델 이현이와 비슷했다.


당시 아직 학생 신분에 인턴으로 사회에 막 진입했던 나와 다르게 그녀는 외국계 회사를 다니다 퇴사를 했다고 했다.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회사에서 꽤 인정받는 인재 같았다. 이미 어느 정도 직급에 올라있고 본인 차도 있는 등 지난 세월 동안 성취가 어마어마해 보였다. 그런 삶을 잠시 정리하고 20대의 마지막을 세계여행으로 보내는 정말 멋진 삶을 사는 여자였다.


그녀의 등장은 마치 나의 세계에 날아온 혜성 같았다. 여행을 하는 내내 누군가와 대화를 할 수 있다는 것이 왠지 모를 편안함을 주었고 혼자서 다닐 때와 다른 재미를 주었다. 특히 내 여행에 그녀의 취향이 더해지며 내 여행은 180도 바뀌었다. 이제 막 돈을 벌기 시작한 당시의 나는 아직 나만의 취향을 찾기 전이었다. 그동안은 취향보다는 저렴하고 양이 많은 가성비 제품을 선택했던 시절에서 취향대로 선택해보던 시기였다. 그런 나에게 자신만의 취향을 정립한 새미가 자극이 되어주었고, 내가 시도해보지 않았을 장소와 제품들을 새미를 통해서 경험하면서 나의 세계는 더욱 넓어졌다. 비록 예산은 빠르게 줄었지만…


새미를 따라서 마크 제이콥스 매장을 방문했던 게 가장 기억에 남는다. 난생처음 듣는 브랜드였는데 한국인에게 인기가 많은 브랜드라고 알려줬다. 확실히 아기자기하고 강렬한 색채들을 사용한 옷과 액세서리들이 한국의 패피들의 표적이 될만했다. 매장에 진열된 아이폰 케이스가 너무 이뻐서 구매하고 싶었지만 가격을 보고 자리에 내려놓았다. 지오다노나 유니클로 같은 대형업체의 브랜드만 알았었는데 디자이너의 철학이 담긴 브랜드가 있다는 것을 그때 처음 알게 되었다.



밀라네사라 부르고 돈가스를 느낀다



그녀 덕분에 처음 먹어보는 다양한 국적의 음식을 맛보기도 했다. 그동안은 도전보다는 익숙함을 선택하며 햄버거나 푸드코트의 음식들을 먹었는데 말이다. 똠 양 꿍을 못 먹어 봤다는 나의 말에 태국 식당을 대려다 줬고 이를 시작으로 밀라네사로 브런치도 먹고 카페에서 신기한 디저트도 즐겼다. 아마 새미를 만나지 못했다면 지금까지도 먹어보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새미에게선 왠지 느긋함과 여유가 느껴졌다. 조용하고 나긋나긋했던 성격이 한 몫했겠지만 경험을 통해 이미 모든 걸 알고 있어 내 선택은 틀리지 않다는 확신에서 여유가 묻어 나왔다. 모든 게 새로워 선택 하나하나가 신중했던 나에게 새미의 모습은 정말 멋져 보였다. 그리고 어떻게 멋진 삶을 살아가야 할지 영감을 준 뮤즈이자 여행 가이드였다. 


그래서 새미와의 있던 시간이 성장만화의 주인공처럼 한 꺼풀 깨고 성장한 느낌이 들었다. 내가 어떻게 가야 할지 단서를 찾는 느낌이 좋아서 철 거리처럼 붙어서 따라다녔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혼자 즐기고 싶었는데 방해한 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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