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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마드봉 Apr 06. 2022

도시의 매력을 결정하는 것




“쪽방촌 계급사회"라는 다큐를 보며 마음이 먹먹했다. 다큐는 동자동에 있는 우리나라 쪽방촌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다. 쪽방촌에 사는 사람들을 이용하려는 자와 그들을 도우려는 사람이 뒤얽혀 살아가는 동네를 보여줬는데 인간의 최소한의 존엄조차 경제논리로 지켜지지 못하고 있어 속상했다. 지도에서 찾아보니 동자동은 서울역이 있는 동네였다. 서울역 하면 노숙자가 가장 먼저 떠오르는 곳이었는데 다큐의 제대로 보기 힘든 그들의 세상살이가 더해져 “서울의 가장 어두운 곳"이라는 이미지가 굳어져 버렸다.


뉴욕도 서울역처럼 화려한 이미지와 다르게 내가 그동안 다녔던 여행지 중에서 걸인을 많이 만난 지역이다. 에스컬레이터 끝이나 사람이 많이 지나가는 곳에서 어딘가에서 구한 스타벅스 종이컵을 흔들며 돈을 달라는 걸인들을 쉽게 만날 수 있었다. 뉴욕 사람들의 대부분은 진심으로 도우려는 건지, 센트 단위의 거스름돈이 거슬려서 그런지 알 순 없지만 걸인들이 내미는 종이컵에 자신의 잔돈을 서슴없이 넣어주었다. 하지만 나는 그들에게 동전 소리를 들려주지 않았다. 개인적인 경험 때문에 불쌍한 사람을 돕는 것에 무조건적인 연민으로 대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게 됐다. 그래서 길에서 마주치는 걸인들을 냉정하게 보게 되었고, 도시 곳곳에서 그들이 내미는 주머니를 나는 외면했다.

 

여느 때와 같이 닌자거북이가 나올 것 같은 지하철을 타고 집에 돌아가던 길에 또 걸인을 만났다. 타임스퀘어역으로 기억하는데 많은 인파들이 플랫폼에 서 있었다. 지하철이 역에 도착하자 문 안으로 빨려 들어오는 사람들 사이로 지팡이를 짚으며 들어오는 흑인 노인이 보였는데 행색이 딱 봐도 걸인이었다. 낡은 검은색 옷차림에 한 손엔 수금 용도로 추정되는 모자를 들고 있었다.


지하철 문이 닫히고 잠시 후 그 걸인이 사람들을 향해 소리쳤다. 자기가 얼마나 불쌍한 사람인지 이야기하고 도와달라는 이야기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후 불쌍한 척하며 사람들에게 주머니를 내미는 시나리오가 그려져 지하철 창밖 어두컴컴한 터널의 벽면을 바라보며 나에게 다가오지 말라는 무언의 표현을 했다. 하지만 내 예상과 다르게 양해를 구한다는 뉘앙스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이어 눈물 나는 신파가 아니라 만담이 펼쳐졌고 사람들을 그야말로 빵빵 터졌다. 순식간에 지하철의 공기가 바뀌었다. 그는 그렇게 사람들의 경계를 풀어놓고선 노래를 부르겠다며 지팡이를 바닥에 두들겼다. 지팡이는 드럼이 되어 강약 조절이 기가 막힌 비트를 만들었고, 지팡이가 만드는 박자에 맞춰서 그는 노래를 불렀다.





“When the night, has come~~”


그 걸인은 <Stand by me>를 부르기 시작했다. 여행을 하는 동안 타임스퀘어역에서 수많은 버스킹 무대를 봤지만, “이런 게 흑인의 소울이구나”란 감동을 받은 건 처음이었다. 1분 남짓의 그의 노래는 너무 감미로웠고 훌륭했다. 노래가 끝나자 지하철엔 박수가 흘러나왔다. 박수는 그에 대한 연민이 아니었고, 그가 건네준 재미와 감동에 대한 박수였다. 곧이어 그가 내민 바구니에 사람들은 흔쾌히 후불 공연비를 넣었다. 나도 마땅히 공연비를 지불해야겠다고 생각했고, 내 앞에 주머니가 당도했을 때 나의 꼬깃꼬깃한 소중한 1달러를 넣었다. 꽤 짭짤한 수입을 챙긴 그는 다음 칸으로 공연을 하러 떠났다.


참 매력적인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면접에서 복장을 지적하자 멋진 바지를 입었다며 받아친 영화 “행복을 찾아서"의 명장면 같았다. 영화의 주인공처럼 자신을 경계하고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무장해제시며 오히려 호감을 얻는 힘의 원천이 궁금했다. 확실한 건 자신의 처지와 상관없이 여유로운 모습과 사람들의 시선에 굴복하지 않는 자신감이 매력적으로 보인다는 것이었다.



젊은 사람만 일할 것이라 생각한 애플스토어... 하지만 내 생각은 오만이었다.


지하철의 걸인만큼이나 뉴욕에서 매력 넘치는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말도 안 되는 텐션으로 즐겁게 제품을 판매하는 팝업스토어 직원, 최신 제품이 가득한 애플스토어에서 젊은 사람들에게 제품 사용법을 설명하는 나이 지긋한 애플스토어 스텝 등… 그동안 말로만 듣거나 생각지도 못한 사람들의 모습이 뉴욕에는 있었다. 콘크리트 정글의 차가운 뉴욕이 따듯한 낭만적인 도시의 이미지를 가지게 된 이유는 다양한 매력을 가진 사람들이 서로 어울리며 살아가기 때문 아닐까?


세계의 수많은 도시에서 유독 뉴욕에 사는 사람들에게 '뉴요커'라는 별명이 붙는 건 괜한 일이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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