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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마드 이안 May 10. 2023

“어디서 감히…”라는 말의
역사언어학적(?) 해석

어디서 감히… 눈을 부릅뜨고 또박또박 말대꾸야!


영화나 드라마에서 나오는 대사가 아니다. 

소설 속 대사도 아니다. 


전 세계 237개 국가 중 열 손가락 안에 드는 경제대국 대한민국 수도 서울 한복판에 있는 카페 안에서 30대 중 후반 정도 돼 보이는 말끔한 정장을 차려 입은 젊은 호모 사피엔스가 바로 앞에 다소곳이 앉아 있는 상대방에게 날카로운 목소리로 호통치는 소리였다. 


바로 옆 테이블에 앉아 있던 나는 깜짝 놀라 그들 테이블 쪽으로 자연스럽게 시선이 갔다. 얼핏 봐도 같은 직장 선 후배 사이인 거 같았다. 주위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했는지 호통치던 남자는 목소리 톤이 갑자기 확 내려갔고 그다음부터는 소곤소곤 얘기를 나누는 모습이었다. 


전제군주 계급사회의 조선시대도 아니고 21세기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현시점에서 저런 대화를 젊은 회사원 입을 통해 들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감히’라는 단어는 일상적으로 많이 쓰는 말이기는 하지만, 그게 ‘어디서’ 또는 ‘어딜’이라는 단어와 합쳐져서 즉, ‘어디서 감히’ 또는 ‘어딜 감히’라는 말로 나오게 될 경우 그 충격파는 가히 기하급수적으로 커진다. 


자, 그럼 ‘어디서 감히’라는 말의 뉘앙스를 한번 본격적으로 풀어 보자. 

‘하찮고 보잘것없는, 나보다 한참 아래인, 나와는 비교 자체가 불가한, 쨉도 안 되는 네가 

주제파악, 상황파악, 분위기파악도 못하고 아무 생각 없이 함부로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존귀하고 존엄한 나에게 

언감생심 감당하지도 못할 엄청난 잘못을 저지르고 있는 

말도 안 되는 상황에서 불쑥 솟구쳐 오르는 분노를 참지 못해서 터뜨리는 감탄사’ 정도로 

정리해 볼 수 있지 않을까? (너무 오버인가? ㅎㅎ)

우리말 한글의 위대함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된다. 이 짧은 한마디로 저토록 많은 느낌을 표출해 낼 수 있다니… 

정말 훌륭한 언어임이 분명하다. 


이를 TPO 접근을 통해 분석해 봐도 문제가 많은 망언이었음을 다시 한번 확인해 볼 수 있다. 첫째, 시간(Time)을 보자면 평일 오후 3~4시경이었다. 즉, 일반 회사의 경우 근무시간에 해당하는 시간대에 사적으로 밖에 나와서 나누는 대화 중에 나온 말이었다. 둘째, 장소(Place)를 보자면 둘만 있는 회의실도 아니고 일하는 공간도 아닌 일반인도 많이 찾는 평범한 카페였다는 점. 셋째, 상황(Occasion)을 보자면 주위에 다른 테이블에도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주위 사람들에게도 충분히 피해가 갈 수 있는 상황이었다. 이와 같이 여러 다양한 각도로 분석하고 생각해 봐도, 상대방에게 어쩌면 심각한 상처를 줄 수도 있는 그런 말을 주위 사람들도 충분히 들을 수 있는 큰 목소리로 했다는 것은 용납이 안 되는 일이다.


필자의 기억으로는 20세기 후반까지만 하더라도 이런 말은 일상생활에서 혹은 직장 내에서 쉽게 들을 수 있는 막말 중의 하나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말도 안 되는 거지만, 그 당시만 해도 기득권층의 권위주의에 찌든 말이나 태도는 그냥 당연한 거라고 받아들이는 분위기였다. 오랜 세월 동안 이어져 온 군부 독재정권의 폐단이 사회 곳곳에 스며들어 알게 모르게 그 뿌리가 깊이 박힌 폐해였는지도 모른다. 필자도 대학 졸업 때까지 “어디서 감히 말대꾸야!” 소리를 수십 번, 아니 수백 번 들었던 것 같다. 학교 선생님이나 선배 그리고 군대에서는 선임이나 장교에게 수도 없이 듣던 말이다. 



언제부터 인가 이런 말이 들리지 않게 되어서 세상 참 좋아졌음을, 서로서로 존중해 주는 수준 높은 사회가 되어가고 있음을 실감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이런 말을 공공장소에서 듣게 되어 상당히 낯설고 불쾌한 감정까지 들었다. 그래서 이렇게 구구절절이 떠들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대학교 때 선배가 해줬던 말을 다시 한번 마음속에 새기며 못난 글을 마무리하려고 한다.


말은 그 사람의 인격이며 향기다



사진 : UnsplashJessica Del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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