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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을밤 Oct 10. 2023

머무르는 것 조차 전쟁이다

독일 비자청의 악명

무더운 여름이든 쌀쌀한 겨울이든 독일 비자청은 외국인들의 사정을 봐주지 않았다. 비바람에도 영하의 추위에도 새벽 2-3시만 되면 삼삼오오 모여들기 시작하는 곳, 바로 독일의 비자청이다. 내가 방문했던 비자청만 약 10곳, 즉 10개 도시의 비자청을 방문 해봤지만 지금까지도 가장 인정머리없고 혹독했던 곳을 꼽으라면 단연 프랑크푸르트다 (모든 비자청이 이런 건 아니다).


유럽에서 가장 큰 국제공항과 유럽금융의 허브로 꼽히는 도시이기에 외국인에게 친화적이고 두 팔 벌려 환영할 것이라는 것은 나 그리고 그곳에 머무르려는 모든 외국인의 큰 착각이었다. 


프랑크푸르트 뢰머광장


프랑크푸르트는 내가 독일에서 학위를 마치고 첫 직장생활을 시작한 도시였다. 직장생활의 쓴맛과 동시에 그곳은 나에게 외국인의 서러움을 정기적으로 느끼게 해 주었다. 비자청 예약을 잡으려면 보통 3~6개월 이상 대기해야되서 비자가 급한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선착순 당일처리를 감행해야 한다. 


새벽 2시에 트램을 타는 외국인들은 거의 다 외국인청을 가는 사람들이다. 트램에 내리자마자 서로 눈치싸움을 하며 한 명이라도 앞서가려고 어둠 속에서 빠른 발걸음을 옮긴다.  




비자청 오픈은 7시 반. 5시간이나 이른 새벽 2시부터 사람들이 하나 둘 씩 줄을 선다. 그렇게 지붕도 없는 곳에서 무한 기다림이 시작된다. 견딜만 한 날씨라면 담요를 가지고 와서 밤을 새는 것도 다반사다. 한겨울엔 가족이나 지인들이 따뜻한 차와 커피를 갖다주는 진풍경도 펼쳐진다.


새벽잠을 설쳐가며 오는 사람들도 대단하지만 눈비에 폭풍우가 쳐도 지붕하나 안 쳐주는 이 도시의 비자청도 가히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갈 때마다 비자청 내에 새 기기가 생기던데, 지붕쳐줄 돈은 없나보다. 


아무리 외국인으로 사는 서러움이라 하더라도 해가 지나도 변하지 않는 처사와, 한겨울 영하의 추위에도 꼼짝없이 기다려야 하는 고통은 받아들이기 힘들었고 현장에 있던 사람들의 분노는 그라데이션처럼 짙어졌다. 나 역시 참지 못하고 직원에게 한마디 했다. 


"밖에 이 많은 사람들이 눈비를 맞으며 추위에 떠는데, 적어도 지붕을 쳐주거나 실내대기 정도는 할 수 있게 해줘야 하는 거 아닙니까?"


돌아오는 비자청 직원의 대답은 비수와 같았다. 


"예약을 기다리면 되는데 당신들이 급해서 오는 거잖아요. 언제 우리가 와서 줄서라고 했어요?"


그는 내가 이방인이라는 것을 다시한 번 확실히 일깨워 주었다.



비자발급 절차가 복잡하고 제출 서류가 많은 건 백 번이고 받아들일 수 있다. 자국민을 보호하고 제대로된 나라라면 함부로 외국인에게 비자를 줘선 안 된다. 그러나 인간 기저에 깔린 연민과 안타까움이란 게 있다면 사람을 이토록 쌩추위에 세워놓진 않을 것이다. 


한국에는 우는 놈 떡 하나 더 준다는 말이 있는데, 이곳은 줬던 떡도 빼앗아서 통곡하게 만드는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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