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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을밤 Nov 08. 2023

일단 얘기부터 하자는 독일회사

독일직장의 회의

독일에 있는 독일회사를 다니면서 처음부터 가장 많이 든 생각은 '말이 참 많다'이다. 말 많은 성격의 직원들이 많다는 뜻이 아니라, 농담으로 방귀만 뀌어도 일단 얘기부터 하잔 소리를 한다. 


"Lass uns einmal ein Teams Meeting zum Kennenlernen haben." (서로 알아가는 팀스 미팅을 갖죠.)

"Hast du vielleicht 5 Min. Zeit?" (너 혹시 5분 시간 있어?)

"Darüber lass uns einmal diskutieren." (그것에 대해 한 번 토론합시다.)




참으로 말하기와 토론을 좋아하는 영락없는 독일인들이다. 내가 외국인이라 그런지, 이렇게 독일느낌 넘치는 문화를 경험할 때면 새삼 그들의 문화가 생소하게 느껴지며 다시 한번 깨닫는다. '아 여기 독일이었지.'


효율과 속도를 중시하는 한국인의 시각으로 '굳이' 얘기하지 않아도 충분히 해결 가능한 일에도 일단 미팅약속을 잡고 본다. 미팅은 15분짜리부터 2시간이 넘는 것까지 다양하다. 그렇다고 그 시간 안에 모든 문제가 해결되냐면 그것도 아니다. 그래서 결국은 1년짜리 Terminserie(약속시리즈)를 만들어버리기도 한다. 그렇게 할 말이 많을까? 다소 귀엽기도 하다. 


최근엔 많이 줄고 있지만 상명하복식 기업 문화와, 상급자가 말하면 하급자가 토 달지 않는 문화는 우리나라 교육에서부터 시작되어 꽤 깊이, 뼛속 깊이 새겨져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처음에 독일회사가 참 어려웠다. 상사는 일단 "네"라고 하는 나의 '진짜 생각'을 궁금해했고, '어려운 점 있으면 언제든지 말하라'라고 수시로 얘기했다. 그리고 그건 진심이었다. 


*물론 이상한 상사도 있다. 모든 회사를 말하는 게 아니라는 점을 알아주셨으면 한다.




한국회사에서도 '어려운 점 있으면 말해'라는 얘기를 분명 들었지만, 진심이 아니었다. 말하면 왜 말하느냐고, 물으면 왜 묻느냐고 면전에서 면박을 당했다. 그들이 말하라는 얘기는 "내가 정한 면담 시간에만 말할 수 있고, 나한테 불리하거나 귀찮은 건 말하지 마"라는 뜻이었다. 


독일회사로 와서 처음으로 발언의 자유라는 것을 느꼈다. 참 말이 많고 쓸데없는 미팅도 많지만 그 속에선 누구나 자유롭게 말할 수 있었다. 신입이나 인턴이 먼저 미팅약속을 잡는 경우도 흔했다. 이처럼 발언이 자유로운 건 토론을 좋아하는 독일문화도 있겠지만 '일은 일로서 받아들이는' 게 확실했기 때문이다. 독일 구어 중 이런 말이 있다.


Dienst ist Dienst, und Schnaps ist Schnaps
일은 일이고, 술은 술이다.

일과 사적영역은 엄격히 구분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회사에 있는 모두가 오직 일이라는 목적 하나로 모였으므로, 일을 해결하기 위한 목표라면 누구든 얘기하고 제안할 수 있는 것이다. 그 외에 사적인 것이나 계급놀이는 개입시킬 필요가 없다.




얼마 전, 오랜만에 사무실에 출근했는데 나이 지긋한 독일 분이 나에게 먼저 악수를 청하며 '다 잘 되고 있냐'라고 물었다. 그렇다고 짧게 대답하고 누군지 생각해 보니 최근 취임하신 CEO였다. 그 누구도 대동하지 않고 혼자서 사무실을 돌며 직원 한 명 한 명과 눈을 마주치며 묻는 모습이 상당히 인상 깊었다. 악수를 청할때 그는 나의 직급을 묻지 않았다. 당시 그의 한마디가 상당히 힘이 되었던 기억이 난다.


그 말이 진심이었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제목 사진출처: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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