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가을밤 Nov 10. 2023

독일집엔 방충망도 없다

독일집 창문의 방충망

얼마 전 <독일집엔 주방이 없다>는 스토리를 많은 분들께서 읽어주셨는데, 유감스럽게 또다시 독일에 없는 것을 적게 되었다. 이번에는 '방충망'이다. 독일집엔 방충망도 없다. 주방도 없어, 방충망도 없어, 전등도 없어.. 이거 '없다 시리즈'라도 연재해야 하나? 도대체 있는 게 뭐야?


독일자동차를 8년째 타고 계시고 독일만 4번 오신 친정엄마의 말씀이다.

"독일을 가만히 보면, 없으면 안 되는 건 다 있는데 '있으면 참 편리하겠다' 싶은 건 죄다 없어."


맞다, 그게 독일이다.



한국의 신축아파트는 보통 '방충망 공동구매 및 시공'이 이루어진다. 우리 친정집을 봐도 이사를 그렇게 많이 다녔지만 방충망이 없던 집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가금 방충망 교체한다는 말은 들어도 '방충망 없이 산다'는 건 어불성설이다.


그러나 독일은 사정이 다르다. 기본적으로 방충망이 없을뿐더러 아파트 주민들이 공동구매하고 시공을 맡기는 일도 거의 일어나지 않으며, 필요하면 본인이 사다가 달던지 업체에 맡겨야 한다. 그러면 이렇게 생각하는 독자분도 계실 것 같다.


'독일에는 벌레가 없나?'

'유럽날씨가 선선하니 벌레가 못 사나 보다.'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Jain(ja+nein을 합친 말. 네+아니요)"이다. 독일도 해충과 곤충이 있으며 기후변화로 인해 최근에는 점점 늘어나는 추세다. 특히 파리는 한국보다 두 배는 크고, 모기, 거미 등 정체를 알 수 없는 생명체들이 당신의 창문 틈을 노리고 있다.




독일인들은 창문에 방충망이 '왜 없냐'가 아니라, '왜 있어야 하냐'라고 묻는다. 없는 것을 기본으로 평생 살다 보니 집 안에 벌레가 들어오는 것도 자연스럽고, 온돌문화도 아니고, 집에서 실내화를 신으니 지나치게 청결할 필요도 없어서 해충만 아니라면 벌레와 공생(?)한다. 그리고 날씨가 건조하고 선선하니 굳이 돈과 노동을 들여 설치할 필요성을 못 느낀다. 물론 그 와중에 방충망을 선호하는 사람들도 있으므로, 이 또한 주방과 마찬가지로 "개인의 자유영역"이 된 것이다. 


다른 이유로는 방충망을 달면 최소한 끈적한 테이프자국에서 구멍을 뚫는 것까지 다양한 흔적을 남길 수 있으므로, 세입자가 임의로 설치할 시 반드시 집주인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 월세비율이 독일인구의 반에 달하는 독일에서 이런 절차를 귀찮아하는 사람이 많기 때문에 사는데 지장 없으면 그냥 두는 것이다.




주방과 마찬가지로 방충망도 소위 저렴이부터 고렴이까지 상품의 스펙트럼이 크고 다양하다. 독일에서 방충망은 Fliegengitter(직역: 파리창살)이라고 부른다. Gitter가 창살(방범창)을 뜻하기 때문에 '파리'를 붙이면 방충망이 된다.


저렴한 방충망은 Baumarkt(건축자재마트)나 dm(독일 드로게리스토어)에서 파는 접착형이다. 3-10유로 내외로 살 수 있으며 크기가 다양하므로 창의 크기에 따라 구매개수를 조정한다. 창틀에 벨크로를 빙 둘러 붙이고 거기에 방충망을 붙인 뒤, 남는 망은 가위나 칼로 잘라낸다. 창틀을 깨끗이 하여 벨크로가 잘 붙도록 하고 방충망이 너무 당겨지지 않도록 시공하는 게 핵심이다. 독일 창틀은 두껍고 여닫이 방식이기 때문에 방충망이 안 맞으면 창문이 안 닫힌다. 또한 망이 얇고 약해서 한 번에 잘 붙여야 한다.


나는 이러한 접착형 방충망을 유학시절부터 지금까지 최소 20개는 달아봤는데 이제는 제법 요령이 생겨 손도 빨라지고 시공 퀄리티도 발전했다.


접착형 방충망 (출처=직접촬영)



접착형 방충망 시공모습 (출처=직접촬영)




한국 방충망과 유사한 중가 이상의 방충망은 50~200유로 선이며 알루미늄, 플라스틱 혹은 자석 틀이 있다. 이 또한 자가시공이 가능하다. 능력이 된다면!


나는 자가로 이사 후, 제대로 된 방충망을 달고 싶어 중가제품을 사서 호기롭게 자가시공을 시도했다.


다 만들고 쓰지 못한 고정형 방충망 (출처=직접촬영)


확실히 접착형보다 난이도가 높은 탓에 혼자 하기엔 무리이고 포장에도 '2인 조립'이라고 적혀있다. 고정형 방충망 조립은 처음인지라 초보인 우리는 꼬박 40분이 걸렸다. 방충망 틀을 창틀에 맞게 자르고, 망을 끼우고 조립이 끝나니 허리가 너무 아프고, 자재의 냄새 탓에 머리가 깨질 것 같았다.


그리고 대망의 마지막 단계! 창틀에 끼워보는데, 아뿔싸! 도저히 들어가지가 않았다. 방충망이 약 5mm 크게 만들어진 것이다. 다시 해체하고 톱질부터 새로 해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이미 너무 많은 에너지를 쓴 탓에 방충망 근처에도 가기 싫었다. 결국 비싼 방충망은 창문에 걸려보지도 못하고 쓰레기통 신세가 됐다. 용기가 너무 지나쳤다.



자가시공의 실패를 겪지 않으려면 두 가지 방법이 있다. 방충망을 구매한 곳에 시공을 맡기거나, 사설 전문가를 부르는 것이다. 어떤 방법을 쓰든 출장비+추가 자재비+시공비는 별도이므로, 방충망 가격을 제외하고 최소 50유로 이상 더 든다. 즉, 창문 하나당 100~150유로가 든다.


독일 집은 한국에 비해 유난히 창이 크고 많은 편이므로 약 10개의 창이 있는 우리 집의 경우 1500~2000유로를 잡아야 할 것이다. 생각지 못한 목돈이 또 깨지는 순간이다. 이처럼 번거로움 외에 경제적인 이유로 질 좋은 방충망을 포기하는 독일인들도 많다.



같은 건물 이웃들의 사정도 다르지 않았다. 돌돌 말아 올리는 형태, 자석형태 등 다양했지만, 결론적으로 접착식을 택했다고 한다. 마음 같아선 집주인 모임에서 공동구매 및 시공을 제안하고 싶지만 과연 몇 명이나 동의해줄지 의문이다. 또한 같은 건물이라도 집마다 구조가 다를 수 있으므로 의견을 모으는 것도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결국 나도 접착형에 정착하게 될 운명인가 보다.



제목 사진출처: unsplash

본문 사진출처: 직접촬영



매거진의 이전글 독일사람 집에 갈 때 뭘 가져가면 좋을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