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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을밤 Nov 13. 2023

눈앞이 하얘지는 순간들

갑자기 모든 게 낯설어질 때

인생에서 누구나 한 번쯤은 이런 순간이 있다.


'혹시 지금 내 눈앞에 펼쳐진 상황이 가짜는 아닐까?'

'이 일이 일어나기 전으로 되돌아가고 싶다.'


타지에 살며 현지회사에서 일하다 보면 이런 순간들이 더 자주 찾아온다. 일상에서 갑자기 느껴지는 낯선 순간들, 직장에서는 어디서부터 손대야 할지 모르는 꼬일 대로 꼬여버린 일이 나에게 넘어올 때. 이메일에 쓰여있는 꼬부랑 글씨들이 눈앞에 퍼지며 지금 여기가 현실이 아니라 가상공간이었으면 싶은 마음이 간절해진다.




연차가 쌓인 지금은 빈도가 낮아졌지만 가끔 그런 상황이 오면, 이젠 내 나름의 대처법이 생겼다.


문제에 직면하기.


어려운 테마일수록, 도저히 손을 못 댈 것 같을수록, 내 안에서 밀려오는 두려움이 클수록 문제를 더욱 똑바로 봐야 한다. 그렇지 않고 회피하면 나중에 손댈 수 없을 만큼 커지거나, 억울하게 내가 책임을 뒤집어쓸 수 있다.


그 다음은 객관화하기.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 얼른 관련 메일이나 데이터를 찾아보고 처음 문제를 제시한 사람이 원하는 '팩트만 추려내야'한다. 보통 이미 일이 터졌다면 관련 사람들 중 분명 누군가는 감정적으로 화가 나 있을 것이고, 이는 작성자의 메일에서 어렵지 않게 읽어낼 수 있다.


그렇지만 상대방이 화를 냈든, 받는 사람이 기분 상할 수 있는 단어를 사용했든 거기에 초점을 맞추지 말고 그저 '문제해결'에만 집중하는 게 서로에게 좋다. 일로서 만난 사이에서 감정을 감정으로 대응하면 해결책 없이 에너지만 낭비하고 서로 불쾌한 싸움으로 번질 수 있다. 정상적인 회사에 좋은 동료라면 이러한 객관화를 지지하고 기꺼이 동참해 줄 것이다.




분명 책임소재는 나인데 도저히 방법을 모르겠다면 적극적으로 SOS를 청한다. 특히 독일회사는 혼자 문제를 끌어안고 입 꾹 다물고 있는 사람을 '정말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러고 있다고 누가 알아주지도 않는다. 부장 사장도 질문을 하는데, 나라고 왜 질문이 없겠나. 나의 첫 독일 회사 매니저가 입사 첫날 해준 말이다.


Es gibt keine dummen Fragen.
바보 같은 질문(들)은 없다.
=어떤 질문이라도 괜찮다.


직속 매니저한테 도움을 요청하거나, 그게 불편하다면 친한 동료에게라도 물어서 proaktiv(주도적으로)하게  문제를 해결하려는 모습을 보여주는 게 중요하다. 독일회사에서는 이러한 태도의 직원을 높게 평가한다.




장기 타지생활과 현지회사에서 근무하며 터득한 것들 중 딱 한 가지만 얘기하라면, '문제에 직면하는 자세'라고 답할 것이다. 힘들다고 주저앉고 모른다고 눈감아도 아무도 나 대신 그것을 해결해주지 않고, 아무리 주저앉아 울고 있어도 아무도 무슨 일이냐고 묻지 않는다. 내 손을 잡아줄 첫 번째 사람은 나 자신이다.


그리고 막상 문제와 마주하면 생각보다 어렵지 않게 풀리는 것들도 꽤 많기에, 어떤 것이든 회피보다 직면하는 게 자신을 단단하게 만드는 길이다.

 


제목 사진출처: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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