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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을밤 Nov 14. 2023

독일회사의 무엇이든 물어보세요

독일회사의 경영평의회

내 월급은 언제 오를까?

휴가를 15일 연속으로 쓰고 싶은데 사칙에 어긋나는 건 아닐까?

우리 회사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비율은 얼마나 될까?

회사 출퇴근에 자전거를 쓰고 싶은데 회사에서 지원 안 해주나? 


회사를 다니며 떠오르는 수많은 크고 작은 질문들은 누구에게 물어봐야 할까. 그렇지 않아도 바쁜데 매번 담당 직원이나 부서를 찾고 답변을 기다리는 과정은 길고 귀찮다. 그래서 중요한 게 아니면 미뤄두는 것들이 있다. 이런 질문들을 한 번에 해결할 수 있는 기회가 있으니, 바로 'Betriebsratsversammlung(경영평의회 모임)'을 이용하는 것이다. 




규모가 있는 독일회사 및 독일의 대기업에는 대부분 Betriebsrat(베트립스라트: 경영평의회)가 존재한다. 경영평의회(단)는 실제 해당 회사를 다니는 직원들로 구성되며, 이 직원들은 회사의 모든 직원을 대표하여 회사 경영 및 운영에 관해 목소리를 낸다. 즉, 일부 경영참여권을 가진 근로자들이다. 등록된 근로자가 5명 이상인 회사라면 경영평의회를 설립할 수 있지만 반드시 있어야 하는 건 아니고, 아직 자리가 완전히 안 잡힌 회사라면 임원단이 주도적인 힘을 갖기 위해 일부러 경영평의회단을 꾸리지 않는 경우도 많다. 


내가 이전에 다녔던 한국회사 중, 직원이 약 40명 남짓이었던 한국회사는 평의회단이 없었다. 그 뒤에 다녔던 직원 약 300명의 회사(한국대기업 유럽본부), 그리고 약 27000명의 직원이 있는 지금 회사(독일기업) 모두 평의회단이 있다. 즉, 독일 회사만 있는 게 아니라 외국회사라도 독일 노동법을 따르고 규모가 있다면 거의 존재한다. 




이 기업평의회단은 정기적으로 '평의회모임(Betriebsratsversammlung)'을 개최하는데, 이전에는 회사의 대형 회의실에서 했다면 요즘은 비대면 온라인 미팅으로 진행된다. 이 모임은 인턴 및 비정규직을 포함하여 회사에 근무 중인 직원이라면 누구든 참여할 수 있으며, 보통 평의회단 직원 중 한 명이 사회를 본다. 


경영진(임원)은 모임 초반에 회사의 실적 및 방향성을 발표하고, 평의회단 역시 업데이트가 있으면 이어서 발표한다. 하지만 모임의 핵심은 이게 아니다. 대부분의 직원들은 실적이 궁금해서 참여했다기보다 '무엇이든 물어보세요'에 참여하려고 온 것이다. 


모임이 2/3 정도 진행된 후 시작되는 '질문타임'에 누구나, 어떤 질문이든 던질 수 있다. 심지어 나 한 사람에만 해당될지라도, 여태 그 누구도 답해주지 않았다면 이 시간에 물어볼 수 있다. 모든 질문은 익명이며 경영진에게 질문자의 정보가 공개되지 않는다.




재미있던 건, 이 질문타임의 독일회사와 한국회사의 모습이 180도 달랐던 점이다.


한국회사는 '최대한 질문을 적게 하거나 안 하고 빨리 올라가서 일하려는' 직원들이 많아서 질문시간이 남아돌았다. 특히 그중에서도 한국인 직원들은 시계를 보고 초조해하거나 아예 먼저 올라가 버리거나, 온라인에서도 침묵하는 게 대부분이었다. 반면, 독일회사나 외국인 직원들은 '여태까지 모아둔 질문 죄다 하려고 회의가 끝나질 않는' 모습을 보였다. 현장 온라인 할 것 없이 손 든 사람이 정말 많았고, 채팅창의 질문이 끊임없이 올라왔다.


독일 직원들은 이 기업평의회에 대해 정확히 이해하고 십분 이용하려는 것 같았다. 나도 이점에서는 독일 직원들의 손을 들어주고 싶다. 일반 직원들이 경영진들과 평등하게 앉아서 질문을 주고받을 수 있는 기회가 얼마나 있을까.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임원들이 일부러 질문에 답해주기 위해 만든 시간인데, 이 자리를 빌어 직원이 강하게 목소리를 내지 않으면 경영진도 직원들의 불만을 알기 어려울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대부분의 질문에 답변을 기대할 수 있다. 경영진 눈에는 별 것 아닌 것 같이 보이는 '회사 자전거 빌릴 수 있나요'와 같은 질문도 직원들에게는 중요하기 때문이다. 답변하지 못한 질문은 따로 모아서 기업평의회 게시판에 올려주기도 한다. 


이렇게 직원의 작은 질문까지 답변해 준다는 것은, 경영진들은 직원 없이 회사가 운영될 수 없다는 점을 명확히 이해하고 있고, 어쩌면 그냥 무시할 수 있는 직원단체인 기업평의회가 실제로 꽤 많은 권한을 갖고 있다는 증거이다. 



이전 회사에서 내 계약서에 불리한 조항이 있었는데, 평의회 단원이었던 같은 부서 동료가 우연히 알고 평의회단 대표와 미팅자리를 주선하여 그 조항을 함께 살펴봤던 적이 있다. 평의회단은 직원들을 대표하기 때문에 우선적으로 직원의 입장에 서 주고, 직원을 보호해준다. 반면 인사과는 회사입장이 우선이기 때문에 직원 개개인의 '유/불리함'에는 큰 관심이 없다. 


따라서 독일 기업에서 사칙에 대한 문제, 계약서 상 분쟁이 우려되는 부분이나 혼자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가 있다면 인사과 말고 '기업평의회단'에게 메일을 써보자. 그들은 두 말 없이 당신의 입장에서 함께 고민해 줄 것이다. 



제목, 본문 사진출처: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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