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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을밤 Nov 17. 2023

3개 국어로 상견례하기

양가 부모님께 연인을 소개해 드리고 결혼을 허락받는 자리인 상견례. 

사실 '상견례'라는 것 자체로 이미 엄청난 부담과 격식이 느껴지는데 우리 양가의 상견례는 그런 걸 느낄 겨를 조차 없는 정신없음 그 자체였다.




우리의 상견례는 중국에서 진행됐다. 친정부모님께서 남편 고향과 분위기를 직접 보고 싶어 하셔서 나와 남편이 먼저 중국에 가서 친정부모님을 맞이했다. 나는 남편 동네 사정을 잘 모르니, 남편과 시부모님께서 식당을 예약하셨다. 식당은 제법 크고 좋았는데 그쪽에서 상견례 장소로 유명한 양식 레스토랑이었다고 한다.


다른 커플들이 상견례 때 드릴 선물이나 논의할 사항을 고민하는 것과 달리, 우리 두 사람에겐 선물보다 '당일 어떻게 효율적으로 네 분을 소통하게 해 드릴지'가 관건이었다. 친정부모님은 중국어를 못하시고, 시부모님은 영어를 못하시고, 그렇다고 내 중국어와 남편 한국어도 완벽한 게 아니니 결국 영어를 제외한 한국어, 중국어, 독어 3개 언어를 이용하여 우리가 전담 통역사가 되어드려야 했다. 


내 얘길 내가 직접 통역해야 하는 웃지 못할 상황. 언어의 장벽이 있는 국제커플이라면 어쩔 수 없다. 


대화는 이런 순서로 진행됐다. 

친정부모님(한국어)-> 나(독일어+중국어)-> 남편(중국어)-> 시부모님

시부모님(중국어)-> 남편(독일어+중국어)-> 나(한국어)-> 친정부모님




상견례 시작부터 우리의 입은 쉴 틈이 없었다. 동시통역이지만 문장마다 두 번을 거쳐야 했기에 중간에 의미가 변하지 않도록 남편과 나는 정확히 합을 맞춰야 했다. 내용 전달만 해도 시간이 오래 걸려서 인사나 문장 중간중간에 들어가는 미사여구는 웬만하면 제외하였다. 두 분만 계셔도 4번의 통역을 거쳐야 하는데, 네 분이 계시니 시간도 품도 곱절이 들었다.


식당을 떠날 때 우리 앞에 놓인 음식을 보니 나와 남편 둘 다 반도 먹지 못했다. 원형 식탁에 음식이 가득 놓여있던 장면만 생각나고 정확히 어떤 게 나왔었는지 내가 뭘 먹었는지, 몇 년이 지난 지금도 기억이 안 난다. 알고 보니 약 6개 요리가 나온 특선코스였다고 한다. 친정 부모님은 그때 먹은 음식이 상당히 고급스럽고 맛이 좋아서 요즘도 가끔 말씀하시는데 내 머릿속엔 그저 하루종일 말한 장면밖에 떠오르질 않는다. 사진이라도 찍어둘 걸, 뒤늦게 후회가 된다. 그날 나와 남편은 상견례 후 둘 다 목이 쉬었다. 




3개 국어가 정신없이 섞여 다소 시끄럽고 오래 걸린 상견례였지만 선물 교환부터 식 날짜, 식장, 앞으로 우리의 미래계획 등 사실 따지고 보면 하나도 빠짐없이 모든 내용을 얘기하셨고 양가 부모님 모두 만족스러워하셨다. 그날 우리는 서로 문화와 언어가 다른 외국인이라는 것에 새삼 이질감을 느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족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입증한 자리였던 것 같다. 



제목 사진출처: Zakaria Zayane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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