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같이 울음바다
우리는 결혼식을 두 번 했다.
중국에서는 서양식 결혼을 하고, 한국에서는 전통 혼례를 치렀다. 덕분에 드레스도 입어보고 세상 편한 한복도 입었다. 한국은 예비 신부를 위한 피부나 체형 관리가 있는데 한복을 입으니 그런 걸 안 해도 되어서 너무 좋았다. 사실 할 생각조차 못했다. 독일에서 도착한 지 이틀도 안되어 식을 한 데다, 한국에선 식전날 시부모님 관광도 시켜드려야 했기에 관리는 둘째치고 잠잘 시간조차 없었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하면 다 추억이다.
중국에서는 흔히 식당/호텔에서 가족과 친지들에게 식사를 대접하는 방식의 결혼식을 하거나(중국 지인들과 절친한 친구도 그렇게 했다), 한국처럼 홀예식을 한다. 우리는 야외 식이라 그런지 남편 고향에 있는 공원 하나를 전체 대여했다. 그냥 시부모님께서 준비해 주신 대로 따랐기에 식장 픽스 전까지 내가 야외 결혼식을 하게 될 거란 상상조차 못 했다. 파워 J인 나는 불안했지만 내심 서프라이즈 선물같기도 하여 두근거렸다.
우리는 일반 중국 결혼문화를 상황에 맞게 일부만 따랐다. 일단 '신랑이 신부 집에서 신부를 데려가는' 절차는 생략하고, 홍바오(红包)와 가이코우(改口: 결혼 후 남편 부모님과 친인척의 호칭을 바꿔 부르는 것)는 진행했다. 전통복은 빨간색 말고 직접 고른 색상으로 입었다. 예식날 아침 우리와 친인척 전용 차량들이 와서 식장까지 이동을 도와주셨다. 차량은 10대 정도 왔다.
다행히 결혼식 당일 날씨가 정말 좋았고, 잔디도 푸르렀다. 사회자분도 날을 정말 잘 잡았다고 하셨다. 나는 당일 너무 긴장을 했고 절차가 한국과 달라서 정신이 없었는데 하객은 약 250-300분 정도 오셨다고 한다. 태어나서 이렇게 많은 중국사람들 앞에 서보긴 처음이다.
식 자체의 과정은 한국과 크게 다르지 않았으나 한국보다는 좀 더 '오랜 시간 여유 있게 즐기는' 느낌이었다. 공원과 식당까지 같이 대여했기에 하루에 한 팀만 가능했고, 그래서 더 천천히 진행한 것 같기도 하다.
신랑입장, 신부와 신부 아버지 입장, 그리고 신랑신부가 부부가 되었음을 선약하고 다짐을 담은 짧은 편지를 모든 하객분들 앞에서 직접 작성한다. 반지를 나눠 끼고, 신랑이 축가를 불렀다. 그리고 양가 부모님 모두 무대로 나오셔서 와인을 마시고 덕담을 나누었다. 중간중간 사회자분의 유머도 가미되어(다 이해할 수 없었지만) 지루하지 않고 모두가 즐거웠다. 결혼증을 낭독하기도 한다는데 우리는 식후 혼인신고를 해서 이 절차도 생략되었다.
나는 축가대신 중국어로 작성해 간 편지를 낭독했다. 내용을 다 외우지 못했는데 대본을 놓고 와서 등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긴장을 풀기 위해 혼주석에 계신 엄마를 보니 눈물을 훔치고 계셨다. 그걸 보니 나도 결국 울음을 참지 못했다. 화장이 번질까 얼른 즐거운 생각을 하며 객석을 보니, 몇 분은 사진을 찍으시고, 몇 분은 심지어 나보다 더 울고 계신 게 아닌가. 이런 정서는 한국이나 중국이나 비슷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본식을 마치고는 다시 옷을 연회복으로 갈아입어야 돼서 너무 바빴다. 오전에 입었던 것만 전통복이고 본식과 연회는 모두 서양식 드레스를 입는다.
나중에 남편을 통해 하객분들의 얘기를 들으니 우리 결혼식이 꼭 한국 드라마 같았다고 한다. 오신 분들 중에서 K-드라마 팬이 많은데, 한국인 결혼은 처음이기도 하고 신기해서 마치 TV 드라마 보듯 감상하셨고, 그 과정에서 감정이입 제대로 된 분들은 우셨다고 한다. 중국까지 가서 한국 드라마 주인공이 되어버렸다. 내 평생 언제 드라마 주인공을 해볼까, 기분 좋은 경험이었다.
영화 같은 장소에서 포토샵도 필요 없는 화창한 날씨에, 코로나의 존재조차 몰랐던 시기에 한 결혼식. 그렇게 모든 게 수월했던 건 두 사람이 앞으로 잘 살아가라는 신의 선물인 것 같아(종교적 의미 아님), 정말 감사했고 지금까지도 참 감사한 기억이다.
가끔 남편과 투닥거릴 때, 양국에서 어려운 시간 내서 와주신 분들을 생각해서라도 서로 더 이해하고 존중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제목 및 본문 사진출처: 직접촬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