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을 보고 들어오신 독자님들은 물음표를 던지실 것 같다.
결혼식이 두 사람을 위한 게 아니면 대체 누구를 위한 행사란 말인가?
한국과 중국, 넓게는 아시아권 내에서는 여전히 결혼과 결혼식을 두 사람만의 일이 아닌 '가족과 가족의 결합' 그리고 '생판 남이었던 가족이 다른 가족과 관계를 맺는' 과정으로 여기는 성향이 강하다. 독일은 한국에 비해 두 사람의 의견이 더 존중되는 편이다. 이는 유교문화가 없고, 결혼을 하지 않고 평생을 사는 커플도 많기에, 굳이 두 가족이 긴밀하고 깊게 관여하는 게 아시아보다 확실히 약하다. (다만 시댁/친정에 가는 빈도는 아시아보다 더 잦을 수도 있다. 주말을 함께 보내거나 여행을 같이 다니는 게 굉장히 흔하다.)
우리는 국제커플이지만 둘 다 아시아권에서 왔고, 결혼 전 한국커플들과 똑같이 부모님의 허락, 상견례 과정을 거치며 결혼이 둘 만의 일이 아닌, 가족 간의 토픽이라는 것을 확실히 인지하고 있었다.
중국 역시 한국과 마찬가지로 결혼식엔 부모님의 친인척과 지인들이 압도적으로 많이 오시기에, 우리는 처음부터 '결혼식은 부모님의 행사'라 생각했고, 행사의 주인공이신 부모님께서 만족하시는 식을 하고 싶었다. 게다가 나는 어릴 때부터 결혼식에 대한 환상이 하나도 없었기에 어떤 모습으로 하든 '낭비 없이 순탄하게 진행만 되면' 괜찮다고 생각했다. 지극히 현실적이고 실용적인 성격의 부모님을 닮아서 그런지 '식이 아니라 결혼 후 어떻게 사는지가 훨씬 중요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살아왔다.
남편에게 혹시 결혼식 환상이 있다면 채워줄까 하여 슬쩍 물어봤지만, 다행히 남편도 이견이 없었다. 그래서 우리는 모든 선택을 부모님의 의견에 따르기로 했다. 목돈 들어가는 첫 번째 항목인 스드메(스튜디오+드레스+메이크업)를 전체 생략했고, 요즘 유행하는 브라이덜 샤워니 하는 미국식 행사도 안 했다. 그런 게 두 사람의 미래에 대체 무슨 역할을 하는가?
딱 한 가지, 우리가 만난 독일을 배경으로 사진을 남기기 위해 간이 스냅촬영을 했다. 전체 300유로(42만 원)도 들지 않았지만 퀄리티와 만족도는 스튜디오 촬영 그 이상이었다. 당연히 피부관리니, 체형관리니 하는 것도 단 하나도 받지 않았다(결혼 전후로도 받아본 경험이 없다). 뭐든 단발성으로 반짝하는 것보다 꾸준히 하는 게 더 효과적이고 중요하므로 돈을 쓰고 싶지 않았고, 차라리 그 돈을 신혼살림에 보태고 싶었다.
그리고 식장선정, 날짜선정, 식사 등 모두 부모님의 의견을 따랐다. 자식 결혼하는데 어쭙잖은 장소를 고르지 않으실 걸 알았기에 오히려 더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그렇게 선택된 식장이며 식사까지, 실제로 어느 하나 빠지는 게 없었다. 딱 한 가지, 한국 식은 전통혼례라 한복이 이미 정해져 있지만, 중국 식은 직접 드레스를 골라야 했다. 나머지는 몰라도 드레스만은 당사자인 내가 입는 것이기에 시어머니께선 와서 고르라고 하셨다.
중국 결혼식 정확히 이틀 전, 나는 독일에서 중국까지 9시간 비행을 마치기가 무섭게 그 길로 바로 드레스샵에 가서 옷을 골랐다. 드라마에서 신부가 옷을 입고 나오면 예비 신랑이 감탄하는 모습이 내 현실에서는 3배속 비디오 같았다. 하나 입어보고 별로면 패스, 다음 거 입고 패스, 맘에 들면 픽스. 정말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진행됐는데 신기하게도 3번째에서 결정되었다. 본 적도 상상해 본 적도 없는 드레스를 입었는데, 예쁘고 맘에 들었다. 역시 뭐든 수 천 번 상상하면서 시간 낭비하느니 그냥 한 번 해보는 게 낫다.
우리의 결혼식은 한/중 모두 문제없이 완벽하게 진행되었고, 하객분들의 칭찬도 끊이지 않았다. 특히 한국 전통혼례는 무대가 없고, 풍물놀이나 판소리 등의 이벤트도 있고, 일반 식보다 길어서 식장에 있는 모든 분들이 '공연을 즐기는' 느낌이 드셨다고 한다. 혼례장소도 개방되어 있어서 지나가던 외국인 관광객 분들도 들어와서 함께 축하해 주셨다. 낯선 얼굴들이 객석에 있던 게 기분 나쁘지 않았고, 오히려 더 많은 분들께 축하받는 것 같아 정말 행복했다.
우리는 지금까지도, 당시 하지 않았던 것들 그리고 식은 부모님의 의견을 전적으로 따른 것을 너무너무 잘했다고 회상한다. 양가 부모님께서는 일생일대의 자식 결혼을 아주 만족스럽게 치르셔서 만족해하시고, 당사자인 우리는 잘 사는 모습을 보여드리는 게 화려한 결혼식보다 훨씬 가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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