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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을밤 Nov 01. 2023

국제커플들은 이 언어로 대화한다

국제커플의 의사소통

모르는 사람에게 나와 남편의 국적을 밝히면 열에 아홉은 똑같은 질문을 한다. (밝히기 전까진 국제커플인 줄 모른다). 


"무슨 언어로 대화해요?" 


그도 그럴 것이, 여기는 독일이고 내 모국어는 한국어, 남편의 모국어는 중국어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처음 만났을 때 거의 독일어를 사용했다. 둘 다 가능한 언어가 영어와 독어였는데, 일상에서 독어를 쓸 일이 많기 때문에 자연스레 독어를 했던 것 같다. 나는 독일에 유학오기 전 한국에서 HSK4급까지 취득해 두었는데 (개인적인 흥미로 공부했다), 막상 실제로 중국인을 만나 대화하려니 도저히 입이 떨어지지 않던 것이다. 독일에서 중국인 남자친구를 만날 것이라고 누가 예상했을까. 부모님은 처음에 정말 놀라셨다. 아무튼 호기롭게 딴 나의 중국어 자격증이 무색해지며 실전 빠진 책상공부의 맹점을 절실히 느끼는 순간이었다. 


그와 계속 만날수록 나는 아무래도 한쪽이 모국어인 편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당시 남편은 독어나 영어도 괜찮다고 했지만, 언어에 민감한 편인 나는 모국어로만 표현할 수 있는 한 끗 차이를 표현하거나 듣고 싶었다. 한 사람이 모국어면 번역 없이 자유롭게 표현이 가능하고 상대방이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을 정확히 설명해 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남편은 한국어를 배워본 적이 없고(근데 Y2K 한국 노래는 나보다 더 잘 안다), 나는 중국어를 공부한 적 있으니 내가 중국어를 하는 편이 더 가성비(?)가 좋았다. 그리고 그때부터 나는 최대한 중국어를 쓰려고 노력했다. 외국어 배우는 것을 워낙 좋아하는지라, 데이트할 때마다 두뇌가 풀가동 되는 것 같아도 내가 손해 보는 느낌은 없었다.




그렇게 우리는 현재 중국어 80%, 독일어 10%, 한국어 5% 그리고 무국적 언어 5%로 대화한다. 국제커플인 분들은 아실 거다. 어떤 언어를 쓰든 소통이 익숙해지면 둘만 아는 출처 없는 단어들이 등장한다. 분명 중국어인데 중국인은 못 알아듣고, 독일어인데 독일인은 못 알아듣는 그런 단어나 문장들이 있다. 


두 사람의 모국어가 달라서 불편한 점도 있지만 같았다면 경험하지 못했을 소소한 재미도 있다. 


남편은 그전까지 한국어는 거의 노래를 통해서만 듣다가, 나를 만나고 '제대로 듣기' 시작했다. 온갖 예능부터 시작해서 유튜브, 영화, K-드라마까지 함께 섭렵했다. 서당개 삼 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더니, 한국어 강좌를 정식으로 들은 것도 아닌데 어느새부턴가 그는 나와 부모님의 대화를 줄곧 알아듣고, 쇼핑을 할 땐 점원의 말을 거의 이해하고 있었다. 나 또한 남편과 함께 보는 콘텐츠, 그리고 시댁 가족들을 만나 어질어질한 중국어늪에 빠지며 눈칫밥으로 실력이 조금씩 늘고 있는 것 같다. 최근에는 자격증 시험을 다시 보려고 준비 중이다.  


성인이 되어 외국어를 학습하는 건 절대 쉬운 일이 아니다. 어떤 언어를 배우든 모국어를 거치지 않고 이해하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그렇지만 배우자를 통해 새 언어를 배우고, 그 언어를 통해 내가 몰랐던 세계를 알아가는 건 국제커플이 가질 수 있는 가장 큰 장점이자 재산인 것 같다. 


이전까지 상대방의 언어에 관심이 없었다 할지라도, 결혼을 했다면 기본적인 것은 배우는 게 서로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한다. 외국인과 결혼을 한다는 건 배우자뿐 아니라 배우자의 가족, 친척, 친구들과도 인연을 맺고 배우자의 문화를 이해해 나가겠다는 결심이기 때문이다. 



제목 사진출처: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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