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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을밤 Nov 19. 2023

어디도 갈 수 없지만 어디든 괜찮아

그래서 해결책이 뭔데?

타지생활을 하며 종종 예고도 없이 찾아오는 향수병은 결혼 후에도 사라지지 않았다. 특히 독일에서 납득할 수 없는 일을 겪거나 가끔 일상이 편안하지 않을 때면, 감기처럼 찾아왔다.


예를 들어 난방비 때문에 다운점퍼를 껴입고 미니히터를 틀며 영하의 겨울을 보냈을 때(난방비 폭등으로 최소한의 온수만 써도 1년 난방비만 200만 원이 넘어서 실내 난방을 포기했다), 주방에 석회가 낀 것을 트집 잡혀 보증금을 뜯겼을 때, 몸이 아플 때 뜨끈한 찌개를 먹고 싶은데 해 먹을 수도 살 수도 없었을 때 등 - 어떠한 방법으로도 속시원히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을 맞닥뜨렸을 때 그 병은 더욱 심해졌다.


한국이었다면 아예 일어나지 않았거나 쉽게 혹은 적은 비용으로 해결이 됐을 부분들이 독일에서는 너무 복잡하거나, 해결이 불가능하거나, 매우 고비용이 드는 문제들이 많았다. 이게 바로 해외생활의 고충이라는 걸 머리로는 너무 잘 알면서도 받아들이기가 힘들었고, 그럴 때마다 나는 환경을 통째로 바꿔버리고 싶었다. 




우리에겐 한국과 중국이라는 선택지가 있는데, 어째서 '둘 다 이방인 신분인'이곳에서 살아야 돼? 적어도 둘 중 한쪽의 모국이었다면 일단 언어와 비자에서 완전히 자유롭고, 인종차별도 없고, 가족 친척 친구 등 인간적으로 기댈 구석도 있으니 지금보다 훨씬 편하지 않을까?


남편도 이러한 불편함을 너무나 잘 알고 이해하지만 그는 내 말미에 매우 현실적인 질문들을 던졌기에, 우리의 대화는 가끔 말다툼으로 이어지곤 했다.


"갑자기 거주지를 옮겨버리면 현재 직장은 어떻게 할 건데?"

"한 사람이 일을 한다 해도 맞벌이가 되려면 언어공부하고 적응하는 시간이 필요한데, 얼마나 걸릴지 모르는 그 시간 동안의 수입 감소를 받아들일 수 있을까?"

"기약 없이 커리어가 뚝 끊기는 건 좋지 않아."

"만약 돌아갔는데 생각보다 생활이 만족스럽지 않다면 다시 독일로 올 거야?"

"자녀를 갖는다면 과연 장기적으로 중국이나 한국이 독일보다 좋다고 할 수 있어?"

 



그의 질문은 대부분 일, 직장에 연관되었으나 하루에 적어도 8시간을 보내는 게 일터이기 때문에 이는 곧 인생 전반에 대한 질문과 같았다. 게다가 나중에 아이라도 생기면 잠시나마 외벌이가 될 수도 있고, 중국이나 한국의 교육환경이 독일과 매우 다르기에 남편의 말도 일리가 있었다. 한창 커리어를 쌓을 나이인 3-40대에 개인적인 욕심으로 커리어에 공백이 생기는 것도 좋은 모양새가 아니다. 


사실 나의 불만과 불편함이 생활을 못할 정도로 병적이었다면 이런 의문을 뒤로하고서라도 한국이나 중국으로 가야 했지만 어느 정도는 극복할 수 있는 것들이었고, 세상 어디든 장단점이 있기에 나는 더 이상 강력하게 주장할 수 없었다. 남편은 독일을 떠난다고 해서 불편한 것들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고 다른 형태로 존재할 것이라 했고, 이점 또한 나는 동의했다. 



내 마음이 편안하지 않으면 대상이 무엇이든 장소가 어디든 불만과 불안함이 쌓이는 것이고 반대로 내 마음이 안정되면 평범한 것도 예뻐 보이고 불편한 것도 기꺼이 감수하고 개선책을 찾을 의지가 생기는 것이다. 남편과의 긴 대화 끝에 독일을 뜨는 것이 해답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비록 이방인이지만 두 사람 모두 직업적 언어적 문화적으로 완전히 적응되어 한 사람이 힘들 때 다른 한 사람이 단단히 붙잡아줄 수 있는 곳은 독일임이 분명했다. 오히려 다행이었다. 두 사람 모두 공부를 마치고 경제적 심리적으로 안정된 상태에서 만났으니, 어쩌면 우리의 인연은 오직 독일이었기에 가능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우리의 최종 목적지가 독일이라는 의미는 아니다. 여전히 우리에겐 한국, 중국, 독일 혹은 제3의 국가로 갈 수 있는 가능성이 있으며 조건이 허락하는 한, 그 문은 언제나 열려있다. 국제커플이기에 극복할 것도 논의할 것도 너무나 많지만 그만큼 다채로운 인생을 살 수 있는 건 크나큰 선물이자 장점이지 않을까.



제목 사진출처: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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