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해가 뭐길래
영국을 포함하여 중부, 북부 유럽을 경험해 본 분들이라면 아시겠지만 독일도 날씨의 변덕이 심하다. 그나마 북부를 벗어나서 이 정도인거지, 북부에 살았을 땐 태어나서 처음으로 내가 우울증이 아닐까 심각하게 고민한 적도 있다.
아무튼 독일은 전체적으로 해가 참 야박한 나라다. 여름을 제외하면 아침에 1-2시간 비추는 햇빛에도 발코니에 나가 일광욕을 하고 싶을 정도로 해가 드물게 난다. 특히 요즘같이 겨울로 넘어가는 과도기엔 하루종일 비만 오는 날도 흔하다. 최근 2주 동안 해를 본 게 336시간 중 5시간도 채 안 되는 것 같다. 사람이 빛을 받지 못하면 어떻게 될까? 나는 이 생각을 한국에 살면서 단 한 번도 한 적이 없다. 아무리 영하 10도 이하의 강추위에서도 항상 해가 뜨고, 아침과 낮이라는 놈의 정체성이 확실한 나라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독일은 그렇지 않았다. 나보다 독일생활을 더 일찍 시작한 친구가 준 꿀팁이다.
[독일사람에게 부탁할 일이 있으면 반드시 해 뜬 날에 할 것]
친구는 이 말을 몇 번이고 강조했다. 그리고 내 독일생활 약 5년이 넘어갈 무렵, 나는 이 말을 완벽하게 이해했다. 해가 없고 회색빛의 날엔 독일사람들의 얼굴도 회색이었다. 얼굴에 웃음기가 없고 미간 주름이 선명했으며, 외부 인적조차 드물었다. 도시전체 아니, 나라 전체가 회색인 느낌이었다. 이런 분위기에선 누가 말이라도 걸면 싸움이 날 것 같았다.
해가 화창한 날엔 삼삼오오 산책과 쇼핑을 나온 사람들도 많고, 심지어 어깨를 부딪혀도, 긴 줄에 장시간 서있어도 미소를 띠는 사람들이 많았다. 모르는 사람에게 반갑게 인사하는 것도 매우 흔한 일이었다. 모두의 얼굴엔 빛이 비치고, 환한 미소를 보니 부탁하면 안 될 일조차 해도 될 것 같았다. 친구의 말이 바로 이런 의미였던 것이다.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시간이 갈수록 나도 그들과 같이 변해갔다. 흐린 날에는 마음도 표정도 흐렸다. 누구를 만나거나 말을 걸고 싶지 않았다. 반대로 날씨가 좋으면 길가는 사람을 붙잡고 함께 산책이라도 하고 싶었다.
태양에너지는 모든 만물의 에너지라고 했던가. 그 말의 의미를 독일에서 온몸으로 느꼈다. 문제는 해가 뜨는 날이 일 년에 며칠 안 되기 때문에(가을 겨울엔 거의 전멸이다), 일 년 중 반은 몸을 '마치 햇빛에 노출시킨 듯' 만들어줘야 했다. 그렇게 병원에서 고용량 비타민D를 처방받아먹기 시작한 게 벌써 3년이 넘었다.
인간의 생명유지와 감정에 가장 원초적인 영양소가 햇빛인데 한국에 있었을 땐 매일 해가 뜨니 그 소중함을 잊고 살았던 것 같다. 그러니 독일사람들에게 무언가를 부탁해야 한다면, 반드시 날씨를 먼저 확인하시라!
제목 사진출처: unsplash
본문 사진출처: 직접촬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