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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을밤 Nov 22. 2023

나는 뮐러입니다

독일에서 뮐러 찾기

독일을 포함해 서양사람들의 이름은 다채롭지 못하다. 

성과 이름으로 이루어진 구성은 우리와 같지만 이름의 종류가 매우 한정적이고 대부분 성경으로부터 유래된 게 많아서, 언어가 달라도 어디선가 들어본 것 같은 이름들이 겹친다. 게다가 시대에 따른 유행까지 있으니 부모들은 그냥 리스트에서 적당한 걸 하나 골라서 자녀에게 주는 식이다. 얼마나 한정적인지 소품샵에서 파는 '이름 쓰인 컵'에서 자신의 이름을 찾을 수 있을 정도다.


정말 독특한 이름은 뜻을 물어보기도 하지만 열에 아홉은 미햐엘(마이클), 안드레아스, 크리스티안, 슈테판, 막스, 카트린, 레나, 한나 등 평범하기 그지없는 이름이다. 여기까지 들으면 우리나라의 이름이 독일보다 다채롭다고 생각하실지 모르나 그렇지도 않다. 독일의 이름은 성씨에 고유성이 있다. 즉 성이 거의 겹치지 않아서 성으로 사람을 구분할 수 있다. 가정집 벨에도 이름을 뺀 성만 적혀있다. 한 건물에 수 십 가구가 있어도 같은 성을 가진 사람을 보기가 쉽지 않다.




반면 우리나라 이름은 성씨만으로 사람을 구분할 수 없다. 만약 독일처럼 성으로 사람을 구분했다면 한 건물에 같은 성씨를 가진 사람이 최소 10명 이상일지도 모른다. 심지어 이름 세 글자 모두 같은 사람도 많다. 그래서 우리나라에서는 사람을 찾을 때 성과 이름을 같이 부르며, 기업이나 상호명에도 사람 이름을 거의 넣지 않는 것이다. 


독일의 우편함 예시. 거주민의 성씨가 쓰여있다.


한국문화를 모르는 독일인들은 이를 잘 이해하지 못한다. 성씨는 가문의 직업이나 사람의 생김새를 따서 지어 대대로 '고유하게' 내려오는 것인데 생판 모르는 남과 성이 같다니 상상하기 어렵다. 특히 한국 유학생들이 많은 대학 기숙사 우편함엔 예를 들어, Kim 2명, Lee 3명, Park 2명이다. 이것을 처음 본 독일인은 '한 건물에 가족이 이렇게 많다니'라고 의아해 한다. 


특히 독일 택배기사와 우체부들이 큰 혼란을 겪는다. 이때는 Vorname(이름)도 함께 봐야 하는데 귀찮고 우편함에 풀네임을 안써놓은 사람도 많으니, 그냥 처음 눈에 들어온 Kim의 우편함에 편지를 넣어버린다. 잘못 배달받은 사람은 편지 주인을 찾아 온라인이며 기숙사 여기저기 수소문을 해야 한다.  


우리나라 이름의 영문표기가 통일되지 않아 가끔 Keem(김), Yi(이), Kweon(권) 등으로 일반적이지 않은 철자로 쓰는 사람도 있는데 의도치 않게 Kim, Lee, Kwon과 구분되므로 이 분들은 편지를 잘못 받을 일이 현저히 적을 것이다.

 



굳이 비유를 하자면 한국의 김씨는 독일에서 가장 흔한 성씨인 '뮐러(Müller)' 정도 된다. 뮐러 성을 가진 독일인은 약 26만 명이라고 한다. 그다음으로 흔한 성씨는 '슈미트(Schmidt)'와 '슈나이더(Schneider)'다.


만약 독자분 성함이 이철수라면, 독일식으로 '철수 슈미트'인 것이다. 


"나는 김씨니까 너네식으로 뮐러야."라고 설명하면 독일인들은 한국인들의 성이 겹치는 걸 이해한다. 그러나 김씨의 숫자가 천만 명이라고 구체적으로 말해주면 다시 놀라움을 감추지 못한다. 뮐러가 제1순위 성씨라 해도 독일 인구대비 매우 적은 숫자이기 때문에 막상 주변에서 뮐러를 보기가 쉽지 않다. 그러고 보니 정말로 내 친구나 동료 중에도 뮐러 씨가 한 명도 없다. 




가끔 Stollenwerk(슈톨렌베어크: 슈톨렌공장), Barfuß(바푸쓰: 맨발), Schweinsteiger(슈바인슈타이거: 돼지축사)와 같이 재미있는 성을 보면 평생 저 성씨로 살며 대대로 물려줘야 하니 고민이지 않을까 싶다가도, 한편으론 성씨만으로 정체성과 고유성을 나타낼 수 있는 게 부럽기도 하다. 



제목 및 본문 사진출처: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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