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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을밤 Nov 30. 2023

현관문 반쪽만 제 것입니다

내거아닌 내거같은 너

독자님들께서 독일에 자가를 소유하고 있는데, 최근 좀도둑이 기승하여 현관문 및 열쇠교체를 고려하고 있다고 가정해 보자. 교체 전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튼튼한 문이나 열쇠 종류 검색하기?


정답은 건물 모든 집주인의 동의받기이다. 


'자가'인데 내가 바꾸겠다면 바꾸는 거지 무슨 동의를 말하는 건지 의아하실 거다. 하지만 독일에서는 집이 자가이더라도 온전히 등기인의 것이 아니다. 내거인듯 내거아닌 내거같은 너 - 내집이다. 




독일에서 아파트(Wohnung: 보눙) 소유주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범위는 '오직 나만 보고 사용할 수 있는 공간' 뿐이다. 즉 현관문 안쪽 '집 안'이 시작되는 지점부터 창문이나 벽이 끝나는 지점의 '내부'만 오직 내 의지로 변경할 수 있다. 다시 말해, 글 서두에 적은 현관문 교체, 열쇠 추가설치는 집주인 마음대로 할 수 없다. 왜냐하면 현관문을 바꾸거나 열쇠를 새로 달면 집 밖(현관문 외관)에서 교체사항을 볼 수 있고 다른 집들과 외적으로 통일성을 깨뜨리기 때문이다. 결국 현관문을 세로로 반으로 나눠서 바깥쪽은 공동재산, 안쪽만 개인재산이다. 


독일 구글에서는 이런 질문을 쉽게 볼 수 있다. 


Was darf ich in der Eigentumswohnung sanieren?
제 집(아파트)에 무엇을 리모델링해도 됩니까? 

Wem gehört die Wohnungseingangstür?
아파트 현관문은 누구의 것입니까?


내돈내산 집에 리모델링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이 있다니, 기가 막힐 노릇이다. 또한 '나만 보고 사용할 수 있는 공간'이라고 해도 전부 다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예를 들어, 아파트 건물이 휠체어 배려건물에 해당하면 벽이나 집 구조의 90% 이상은 건들 수가 없어서, 샤워부스 하나 설치하는 것도 쉽지 않다. 휠체어가 들어갈 수 없으면 건축법 위반이 되기 때문이다.




튼튼한 철제 현관문 예시. 아파트에선 달기 쉽지 않다. 비용도 시공비 제외 250만 원이 넘는다 (사진출처=machermann-germany.de)


독일 아파트에서 집 안을 제외하고 건물 내부의 엘리베이터, 계단, 주차장, 단지 내 정원(여기까지는 이해가 된다) 그리고 현관문 바깥쪽, 발코니까지 모두 공동재산(Gemeinschaftseigentum)에 해당되어 이 부분의 수정/변경을 원한다면 정기적으로 열리는 '소유주모임(Eigentümerversammlung)'을 통해 다른 집주인들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 


소유주모임은 1년에 적게는 2회, 많게는 4회가량 열리며 일반적으로 관리회사 및 건축사에서 주관한다. 관리회사 담당자와 건축담당자(개런티 기간 내)가 참여해야 하기 때문에 그들의 일정에 따라 모임이 잡힌다. 모임에서는 아파트 단지 전체에 해당되는 사항 및 동 별 건의사항이 논의되며, 현관문 변경과 같이 소수의 집에 해당되는 것은 동별로 찬반투표가 진행된다. 


당장 안전문제가 시급하여 집 앞에 카메라를 달거나 열쇠를 교체해야 하는데, 언제 모임을 기다리고 있단 말인가? 일단 설치를 하고 나서 투표하면 안 되나 하실 수도 있지만, 만약 반대표가 많아서 거절이라도 되면 설치했던 것을 다시 떼야한다. 그렇지 않으면 개인적으로 찬반용지를 만들어 이웃들의 사인을 받아 진행할 수도 있는데 이 또한 쉽지 않다. 월세입자들의 동의는 효력이 없기 때문이다. 무조건 집주인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 그런데 집주인이 어디 사는지 알 수 없고, 만나기도 쉽지 않다. 그래서 결국 울며 겨자 먹기로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소유주모임만 넋 놓고 기다려야 하는 것이다. 


관리회사에 따르면, 모임 이전 기간에 도둑이 드는 문제가 발생하면 그냥 '사후처리'하라고 한다. 즉 집이 다 털리는 한이 있더라도 동의 없이는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뜻이다. 이쯤 되니 내 집을 갖는 행복이 반쯤 줄어드는 느낌이다.




많은 주민들이 단톡방을 만들고 개별 투표를 진행하려고 시도하지만 이 또한 관계자가 참여하지 않았고 온라인상에서는 신상을 특정할 수 없으므로 효력이 없을 확률이 높다.


같은 맥락으로 에어컨 설치(건물 외벽을 뚫으므로)도 동의 없이 불가하다. 독일 집에 에어컨을 찾아보기 힘든 이유 중 하나이다. 사족을 덧붙이면, 제품 값 제외한 설치 비용만 100만 원이 넘기에 비용적으로도 부담이다.


발코니에 치는 차양막 설치, 바람을 막기 위해 두르는 천은 심지어 색상까지 맞춰야 한다. 모두 건물 외관에서 보이기 때문이다. 이토록 통일성에 미쳐있는 곳이 있을까. 이쯤 되니 독일인들이 왜 여전히 단독주택(Haus:하우스)을 선호하는지 백 번 이해가 된다. 하나부터 열까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건 단독주택뿐이다. 


원체 CCTV가 거의 없는 독일 문화에 이러한 동의문화까지 겹치니, 그야말로 진퇴양난 웃픈 상황이다. 주민들의 안전이나 집주인의 자율성보다 통일성이 우선시되는 곳, 바로 독일이다. 


유머가 아니라 실제로 이렇다. (사진출처=reddit.com)

제목 사진출처: pixabay

본문 사진출처: 직접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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