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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을밤 Oct 15. 2023

근데 왜 거기 살아요?

독일에 사는 장점

지난 글에서 독일생활 스트레스의 원인을 열심히 나열해 보았다. 글이 너무 길어질 것 같아 다 적진 못했지만 다른 부분들은 어느 정도 예상하실 거라 생각해서 생략했다. 


그럼 당연히 이런 질문을 하실 것 같다. "근데 왜 거기 살아요?" 


나라도 그렇게 물을 것 같으니까. 




이러저러한 단점이 있는데도 왜 독일에 사냐고 물으면, 


단점을 감수할 만큼 여기가 좋아서가 아니라, 그냥 스스로 선택한 길을 따라 인생을 열심히 살다 보니 배경이 독일이 되었고, 자리를 잡고 보니 그게 독일이었을 뿐이다. 


방향도, 선택도 모두 내가 했기에 힘들 때 남 탓조차 할 수 없어서 슬럼프가 올 때마다 더 괴로웠던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일을 찬찬히 보면 봐줄만한 부분도 있는데, 독일이라는 나라를 콕찝어 이민이나 유학을 고려하시는 분들께 도움이 될까 하여 적어봤다.  




# 공부하기 좋은 나라다.

독일은 학생으로서 참 좋은 나라다. 사립대와 일부 학과를 제외하고 국립종합대들의 일반 문/이과는 기본적으로 학비가 없으며, 학비 명목으로 내는 돈은 학생증+교통권 역할을 하므로, 소액으로 학교가 있는 주(혹은 시)의 대중교통 전체를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주말에 공짜여행하기 딱 좋다. 

한국처럼 24시 오픈된 도서관은 없으나 학교 곳곳과 야외 풀밭 어디든 학습장이 될 것이며, 문화시설 중 학생이 가는 곳이라면 어디든 단 1유로라도 할인이 있을 것이다. 또한 강의시간에 허튼소리란 없다. 자기주장만 해도 괜찮다. 발언의 자유라는 게 무엇인지 피부로 느낄 것이다. 매 학기 선착순 수강신청 불클릭의 늪에서도 벗어날 수 있다.


 

# 직장 다니기 좋다. 

직장인으로서도 독일은 나쁘지 않다(사업자 아니고 피고용주일 때다). 물론 세금이 매우 높고 돈 모으기가 상당히 어렵지만, 독일의 직장문화는 전반적으로 근로자가 편안하게 일하도록 되어있다 (돈 모으기 어렵다고 말한 이유는 도시 월세와 생활비가 높고 재테크 수단이 너무 한정적이기 때문이다). 

휴가는 회사에 따라 다르지만 최소 25-30일을 '확실히 보장'해준다. 거의 모든 직원이 이슈없이 휴가를 쓸 수 있고, 10일 이상 연속휴가를 권고하기 때문에 1년 내내 항상 누군가는 휴가 중인 모습을 볼 수 있다. 

아프면 병가도 매우 자연스럽다. 어디가 얼마나 아프냐는 건 개인정보이기에 직장상사도 인사과도 물을 수 없다. 아이가 있는 직원은 반일근무나 플렉서블 근무가 가능하며 아이가 아플 때 부모가 병가를 쓸 수 있다. 일반적으로 직원의 실력, 결과, 그리고 믿음에 근거하는 시스템이다. 



# 평생 집 안 사도 된다.

독일인구의 반은 집이 없다고 하면 한국인들은 '어머나 안쓰러워. 어쩌다.'라고 할지 모르지만, 독일에선 집을 안 사도 괜찮다. 전세시스템이 없으므로 월세 아니면 자가인데, 월세로 평생을 살아도 누가 뭐라고 하는 사람이 없다. 집이 없다고 비교해서 사회적 루저로 보는 시선도 없고, 월세입자라고 서러운 일도 거의 없다. 집주인이 맘먹고 쫓아내려고 해도 세입자가 새 집을 알아볼 수 있도록 최소 3개월, 장기거주한 세입자에겐 8개월의 충분한 시간을 보장해줘야 한다. 시마다 세입자들의 분쟁을 해결해 주는 세입자 협회(Mieterverein)도 있다. 협회에는 전담 변호사가 있어서 저렴한 비용으로 법률상담을 받을 수 있다. 

집주인과 죽이 잘 맞아서 몇 십 년간 월세인상 없이 사는 사람도 많다. 물론 법적 소유자가 아니므로 집주인과 완전히 동등한 권한을 갖는 건 아니지만, 한국에서 드물지 않게 보이는 '월세 사는 서러움' 따위는 안 겪게 될 것이다. 



# 애 키우기 좋다.

애가 있는 가정들의 입을 빌리면 독일은 애 키우기가 꽤 괜찮은 편이라고 한다. Elterngeld(부모수당), Kindergeld(아이수당)과 같이 매달 나오는 정부 지원금도 한몫 하지만, 그보다 부모 둘 다 마음 편히 육아휴직을 쓰고, 애들을 애들답게 키울 수 있고, 아이를 불편해하는 시선과 장소의 수가 적다고 한다. 독일 어느 도시든 공원, 하이킹 코스, 자연 등 아이와 반려동물이 함께 할 수 있는 곳들이 정말 즐비하다. 여태 노키즈존도 본 적이 없다. 오히려 아기의자가 없는 식당/카페를 못 본 것 같다. 아이가 내는 소음 중 실외소음은 아예 항의대상이 아니며 실내소음은 너그럽게 이해해 주는 분위기가 있다. 

  



누구에게 장점이면 다른 누군가에겐 단점이므로 위 사항들이 100% 좋다고 말하긴 어렵다. 그러나 어쩌면, 언젠가는 나에게도 해당되어 '독일이니까 용인 가능한' 장점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이 세상에 완벽한 곳은 없으니까.



사진출처: 엘라 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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