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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을밤 Oct 17. 2023

새나라의 30대 어린이

단조로움의 건강함

나는 30대다.


20대 시절에는 앞자리가 바뀐다는 게 기묘했다. 마치 여태까지 어린아이였다가 중간도 없이 중년의 여성이 되는 느낌이었다. 나의 20대는 치열했다. 돈 벌기에 열중했다면 아마 꽤 큰돈을 만졌을지 모르지만, 아쉽게도 돈이 아니라 공부에 미쳐있었다. 더 배우지 못해서, 더 알지 못해서 항상 목마른 시간이었다. 여기에 연애도 하고, 동아리도 들어가고, 해외경험도 쌓아야 했으니 정말 바빴다.


무엇이 그렇게 나를 책상으로 끌어당겼는지 모르겠다. 밤을 이틀씩 새도 몸이 버텨주어서 체력이 타고난 줄 알았고, 늦잠이라도 자는 날이면 죄를 짓는 느낌이었다. 그렇게 살면 몸이 상한다고 주변 어른들이 말해도 나는 예외인 줄 알았다.


물론 그 덕에 20대는 절대 돌아가고 싶지 않을 만큼 후회 없이 살았고, 계획한 대부분의 것들을 이뤘다. 29살 말미에 쓰인 일기장을 보면, '30대는 20대보다 더 치열하게 살자'라고 쓰여있다. 지금 보니 무섭다. 막상 30대가 되어보니 그렇게 하면 죽을 것 같은 경험을 몇 번 했다.ㅎㅎ 밤을 새기는커녕 새벽 2시를 넘기기도 힘들고, 10대 때부터 만나기만 하면 밤새 수다를 떨던 절친 멤버들도 1시가 넘으면 시들시들 해 지는 게, 우리가 30대라는 걸 피부로 체감한다. 없던 잠이 많아져서가 아니라, 밤새면 다음날 생활이 안 되니 억지로라도 눈을 붙여야 한다.


서른을 목전에 두고 만난 지금의 남편은 새나라의 어린이 그 자체였다. 연애할 때도  12시에는 잠이 들어 그 뒤엔 연락이 되지 않았다. 결혼을 해보니 실제로 그런 생활을 하는 사람이었다. 지금도 내가 몸이 좀 안 좋다고 하면 잠이 부족해서 그렇다고 말한다. 처음엔 부인했으나, 한 시간이라도 더 잔 날은 몸이 확실히 가볍다. 운동보다 보약보다 좋다고 하니 이젠 남편의 말을 부정하기보다 그냥 일찍 자기를 택하고, 운동도 가자고 하면 못 이기는 척 따라간다.


20대보다 치열하자고 다짐한 나의 30대는 좀 덜 치열할지는 모르나, 책장에 어지럽게 널려있던 책들이 가지런히 정리되는 느낌이다. 어쩌면 그런 나의 질주(?)를 붙잡아주기 위해 남편이 나타났는지도 모르겠다.



제목 사진출처: 직접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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